사법부의 판결과 여론과의 상관관계
- 사법개혁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한다
다수의 대법관 및 헌재 재판관들의 교체를 맞이하게 되는 사법부는 계속해서 국민 정서에 반하는 수구적 판결을 잇따라 내놓음으로써, 스스로의 권위를 땅바닥에까지 실추시켜 여론의 질타를 받는 가운데, 정치권이나 여론의 견제를 사법부 독립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발언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간단히 적어 보겠습니다.
▲ 동일한 재판관으로부터 판결을 받은 복기왕 의원과 류근찬 의원
ⓒ 데일리서프라이즈
1. ‘사법적 판단의 객관성’이란 허구에 대하여
법관들 스스로 착각하기 쉽고, 국민들 스스로도 속기 쉬운 것중에 하나는, 법원의 판결이나 검찰의 기소가, 자명하고 객관적인 법적, 양심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고방식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정치인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나, 행정수도 이전 등을 둘러싼 헌재의 판결등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사법부의 법적인 판단은, 헌법, 법률, 및 법관 개인의 양심에 근거하여 내려야 한다는 기본 명제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환경이 상호작용하여 갖게 된 법관 자신들의 주관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가 법률 해석과 판단의 근거가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판사(혹은, 검사)의 법률 해석은 객관을 지향하지만, 결국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법률 적용에 있어서 그 대상과 범위 등은 보다 더 기술적인 문제에 해당하겠지만, 법률 해석이라는 문제는, 판사의 경험과 주관, 신념 등이 어우러진, 최대의 객관을 지향한 주관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법의 해석이란 철저하게 객관적이다’라는 생각에 누군가가 사로잡혀있다면, 우리 사회에 있어, 판사라는 인간보다는, 모든 조건을 조합하게 될 때 같은 조건에서 같은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컴퓨터(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대안이 될 것입니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을 인간의 ‘주관’이 법률을 근거로 해석하고 판단하여,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아직까지 기계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법해석 및 판결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란 “그 판결이 객관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판결이 얼마만큼 덜 주관적이냐, 더 주관적이냐”라고 하는 “주관성의 정도”의 문제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민주사회에서 사법부의 독립에 대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삼권 분립입니다. 즉, 입법, 사법, 행정부가 기능적으로 독립하여, 그 권력의 사용 시(時) 타 기관으로부터의 영향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겠죠.
여기서, 삼권분립에 맞서, 각 기관의 독재적 권력 사용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즉, 각 부서는 타 기관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그 기능을 수행해야 하지만, 권력이란 것이 뭉치고 견제를 받지 않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기능의 수행을 항상 점검하고 제도적으로 보완을 해나가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법부가 특정 법률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 부당한 판결을 하게 될 때는, 입법부에서 그 법률 자체를 개정함으로써, 기존 판단의 근거를 제거하고 새로운 근거를 바탕으로 새롭게 판결을 하게 만드는 것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제가 첫 번째에서 제기한 사법부 판결의 주관성 문제입니다.
사법부에서는 헌법과 법률과 판사 개인의 양심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판결을 내린다면서, “정치권이나 국민 여론의 개입을 판사가 객관적 판결을 내리는데 방해요소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판사의 판결 자체가 객관을 지향하는 주관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은, ‘정치권이나 여론의 개입이 판사의 주관적 해석과 판단을 얼마나 더 주관적이게 하는가, 얼마나 덜 주관적이게 하는가’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달리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법률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판사의 주관(양심)은 주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가, 받으면 어떠한 영향을 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을 먼저 말씀드리면, ‘영향을 받는다’이며, 이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판사의 법률 해석과 사회 환경의 영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 제도 및 사법 체제의 영향입니다. 달리 말해서, 판사가 되기 위해, 어린 학생이 중고등학교의 교육을 받고 성장하여, 대학교육을 받은 이후,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강의를 듣고 법을 연구하는 동안, 또한 ‘판사’라고 하는 직업의 집단에 속하게 된 이후에도, 그 사람이 속한 주변 환경(즉, 가족, 중고등학교 친구나 선생님, 대학 교수나 친구, 등등)이, 현재 판사의 법률 해석 능력 및 기술과, 그 사람의 이데올로기, 양심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아닌가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개인(그 사람 자체, 인격, 양심, 사고방식, 기호, 지식 등등)은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형성되기 때문에(인간은 사회적 동물), 개인의 법률 해석능력(즉, 그가 배우고 공부한 교육체제에 의해), 이데올로기 및 양심 등은 (그가 속한 사회, 경제, 정치적 환경에 의해), 그가 속해온 집단 및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는가”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모 하버드 법대 교수의 저서에서 인용된 미시건 법대생의 입학성적과 졸업 후 사회활동을 조사한 연구를 요약함으로써 (구태여 인용은 안하겠습니다)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저서에 인용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말해서, “객관화된 시험을 치를 때, 자신의 능력에 의해 좋은 성적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또한 이런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들 (meritocracy란 개념을 말합니다), 사회, 경제적으로 기득권층에 속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람들, 그동안 사회 봉사활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경우, 소외계층을 고려하거나 남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지 않게 된다. 즉, 자신을 형성시켜준 사회에 대한 환원없이, 자기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미국에서의 사회조사 결과를 우리나라에 직접 적용할 수 는 없겠지만, 국제화, 서구화가 한창 진행 중인 우리나라 현실상,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허위사실유포 혐의에 대한 재판부의 다른 판결 (이철우 이규택 의원)
ⓒ 데일리서프라이즈
즉, 모든 판검사들을 일반화시켜 비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위의 사회조사의 대상이 된 사람들과 유사한 환경에서 자라나고, 스스로를 기득권층에 속해있다고 믿는 대한민국의 판검사들이 있다면, 아마도 그들의 주관적 판결이 어떤 것들을 지향하게 될지 추측 가능하게 해줍니다.
특별히, 최근에 수구보수적 판결을 잇따라 내놓은 판사들의 이데올로기와 사회 환경과의 상관관계는 한번쯤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판사의 법률 해석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국민의 여론
두 번째로, 주관적 판결과 환경의 연관관계에서, 정치권이나, 특별히, 국민의 여론의 영향력과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여기에서도 해외의 예를 들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짧게 말씀드리면, 사법부의 주관적 판결은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기 어렵고, 여론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과 20세기 중반까지의 인종차별에 대한 미국 법원들의 판결을 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역시, 자료는 있습니다), 188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각종 인종 차별 유형에 관한 미국 법원들의 판결들을 살펴보면, 엘리트라고 불릴 수 있는 백인 판사들의 판결들은, 이미 미국 헌법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들이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편파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판결들을 잇따라 내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즉, 인종차별 반대를 명시하는 식으로 개정되기 전의 헌법이나 법률이라 할지라도, 만약에 현대의 우리들이 그런 개정 전의 법률을 가지고 인종차별에 대한 케이스들을 심판하게 된다면 당연히 ‘인종차별 금지’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 당시 판사들은 정반대로 법을 해석해서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판결들을 내놓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백인=인간&미국인 이라는 인식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결국, 그 당시 미국 사법부의 주관적 판결은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아 현대의 ‘사회 정의’란 관점에 비추어볼 때, 부당하고 부정의한 판결들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인종차별적인 판결들이 바뀌게 된 것 중에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헌법이 개정된 이유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가, 시대 이데올로기가, 국민의 여론이 바뀌게 되고, 이에 따라 기존의 판사들로서도 더 이상 자신이 가져온 이전 이데올로기를 가지고서는 ‘정의’롭게 느껴질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시대가 바뀌고 되고 이데올로기가 변화하기 될 때, 올바른 국민의 여론이 판사 개인의 주관적 양심보다는 훨씬 더 ‘정의’로운 판단을 하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판사 자신은, 혹시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양심적으로 백인이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내린 판결이란 면에서 보자면, 그가 국민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즉, 여론이라고 하는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은 판결이, 판사 개인의 양심이나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판결보다 훨씬 더 정의로운 판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부 사법부 고위 관계자들이 주장하는 정치권이나, 특히, 여론의 영향력이 사법부의 객관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고 하는 말들은, 반드시 옳은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법부는 자신의 판결에 대해서 정치권이나 여론의 향방에 항상 신경을 쓰고 있으며 (물론, 반드시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특히, 하급심으로 갈수록 여론의 견제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무엇보다 상급심으로 올라갈수록 사법부는 (즉, 대법원이나 헌재로 올라갈수록), 자신들이 주장하는 헌법, 법률, 양심에 근거한 판단보다는, 사법부 ‘스스로가’ 판결 전의 여론의 향방, 판결후의 여론의 향방에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고, '스스로'를 여론의 영향력에 노출 시키는 정도가 커지게 됩니다.
▲ 윤민석씨 홈페이지 송앤라이프(http://www.songnlife.com)에 올라와 있는 ‘그때 그 사람들’ 가사 ⓒ 데일리서프라이즈
또한, 미국 판례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론의 영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 사법부 고위 관계자들의 말처럼 판결에 항상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기보다는, 오히려 보다 더 정의로운 판결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일부 사법부 관계자들이 말하는 사법부의 독립에 관한 여론의 부정적 영향이란 결국, 자신의 부당한 판결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무마하기 위한 현학적 수사법에 불과한 것이며, 또한, 자신들이 법의 전문가란 이름하에, 법해석을 다수 국민들이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만큼 부정의하고 수구 보수적이며 비상식적으로 해놨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런 자신들의 부당한 판결로 인해 스스로 사법부의 권위를 실추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겸허히 자신으로부터 찾지 않고, 남에게로 돌리려는 비겁한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면, 사법부가 보다 덜 주관적이고, 보다 더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고, 이로써, 법 행사의 최종 심판기관으로서 자신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자기반성과 자기 개혁이 필수입니다.
3. 대법관 및 헌재 재판관들의 인선 기준과 대한민국의 미래
특별히,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들이 연이어 바뀌게 될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정의롭고 안정된 미래를 위한 대법관 및 헌재재판관 인선 기준은, 대법관이나 재판관 후보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중도적이고 객관적이고 양심적이며 법률에 충실한 판결을 내린 사람이며, 얼마나 사법부 조직을 안정시킬 수 있는 사람이냐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정의롭고 안정된 미래를 위한 대법관과 재판관들은, ‘그동안 기존 법체계 틀 안에서 얼마나 개혁적인 판결을 내리고, 그동안 얼마만큼이나 소수와 약자를 위한 판결을 내려온 사람이냐’가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판사의 자질을 의심케 했던 노영보 판사의 미니홈피 ⓒ 데일리서프라이즈
왜냐하면, 그동안 사법부는 비민주적이고 독재적인 군사 정권 밑에서 그 영향을 철저히 받아가며 판결을 해왔기 때문에, 후보자가 될 판사의 판결이 그동안 철저히 ‘중도적이고 안정적이었다’는 말 자체가, 비민주적이고 독재적인 정권에 야합하여, 비민주적이고 비인권적인 법률을 독재정권이 원하는 대로 해석해줬다는 말인 것이며, 그들이 부르짖는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철저히 훼손시켜왔다고 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동안 비민주적이고 독재적인 군사정권 밑에서 개혁적인 판결을 내리고, 소외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판결을 내린 사람들이야말로, 오히려 민주적이며, 정의롭고,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대법관 및 헌재 재판관들 후보를 인선하고 추천할 때, 행정부 및 입법부 관계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고, 대한민국의 정의로운 미래와 안정을 위해 올바른 ‘주관’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하고 임명해야만 합니다.
미래 사회는 현재 사회의 비전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것이 필수적이며, 그러한 비전 속의 미래는 현재의 나 하나하나의 결단과 행동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의로운 미래를 위해, 현 정부는 중도적이며 안정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반드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오고 개혁적인 사람들을 대법관 및 헌재 재판관으로 임명해야만 할 것입니다.
상식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