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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매일 `5성급 호텔`에서 잔다.


BY 호텔리어 2005-04-24

다음 아고라 사회방에서 펀글입니다.

http://agorabbs1.media.daum.net/griffin/do/debate/read?bbsId=D110&articleId=20160&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일속 : 난 매일 '5성급 호텔'에서 잔다 [3] 
20160 | 200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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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에 당신은 화가 날 수도 있겠습니다. "약 올리려고 환장했냐"며 짜증이 날 만하지요. 그러나 나 때문에 화가 나서는 안됩니다. 왜냐면, 나도 돌아버릴 지경이니까요. 어쩌면 이 말이 당신을 더 자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 5성급 호텔에서 자면서 돌아버릴 지경이라니, 누굴 놀리고 있냐", 그렇게 욕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당신은 나 때문에 화가 나서는 안됩니다. 왜냐 하면, 당신이 진짜로 화를 내야만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우선 내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난 마흔 살입니다. 아내, 그리고 아이 둘과 함께 살지요. 내가 사는 곳은 분당의 32평 아파트입니다. 이 집이 문젭니다. 난 그 집을 '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놈은 매일 나와 아내의 얄팍한 호주머니를 털어 갑니다. 그놈은 나와 세 식구가 겨우 목구멍에 풀칠할 정도만 남기고 하루도 빠짐없이 주머닐 털죠.

난 직장 생활 12년차입니다. 회사로부터 통장에 매월 입금되는 돈은 채 300만원이 안됩니다. 나는 이 돈이 내 능력에 비해 상당히 적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와 식구 셋이 입고 자고 먹고 놀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쓰고 남는 돈이 있다면 미래를 위해 저축도 합니다.

그렇게 저축한 돈이 평균적으로 1년에 1천만원 정도는 됐을 겁니다. 그러니 지난 세월 동안 1억 원이 조금 넘는 돈을 모았을 터이지요. 나는 이 정도가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평균치는 될 것이라고 믿고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그 집이 최근 3개월 동안 1억 원이 올랐다고 합니다. 개미처럼 일하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저축하였던 게 참으로 허망하더군요. 앞으로도 이 짓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 아들도 그렇게 살라고 해야할 건지, 답이 없더군요.

그래서 계산을 해봤습니다. 개미처럼 일한 나의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기 위해.
내 월급이 300만원이라고 치면, 내 일당은 10만원입니다. 난 이 돈을 아주 훌륭하게 잘 써야 합니다. 먹고 자고 입고 놀고 애들 교육시키고 미래를 위해 대비하고…. 그런데 도통 그 많은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나는 매일 중국의 5성급 호텔에서 자야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중국의 5성급 호텔과 맞먹는 것입니다.

이 집의 시세는 5억5천만원이라고 합니다. 5억5천만원을 은행에서 빌리면 이율을 6%로 계산할 때 연간 3천300만원이군요. 내가 10년 동안 개미처럼 일해 1억원을 모았다고 치면, 4억5천만원을 빌려야 하고, 이자는 연간 2천700만원이 됩니다. 한 달에 200만원이 넘고 하루 7~8만원 정도의 이자를 내야하게 되는군요. 거기다 관리비가 매월 20~30만원 정도 나오니 하루 1만원 안팎을 매일 내야하는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집에 사는 대가로 나는 매일 8만원 안팎의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중국 5성급 호텔 하루 숙박비죠.

생각해보십시오. 위에서 말한 대로 내 일당이 10만원인데 그중 8만원을 하루 저녁 자는 데 쓴다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생활의 기본이 의식주(衣食住)일텐데, 나는 의식주 가운데 住에만 일당의 80%를 써야 하는 셈입니다. 나머지 2만원 가지고 衣와 食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으로서 적당한 문화 생활을 즐겨야 하고 또 미래를 위해 어느 정도는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내가 12년 월급쟁이 생활을 해왔고 1억원이 조금 넘는 돈을 모았다니 참으로 신기할 지경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당신은 나를 바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월급쟁이 12년 정도 했으면 집 한 채는 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한 나의 무능함이 모든 원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나더러 분당을 떠나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분수를 지키며 살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지방에 내려가면 훨씬 싸고 좋은 집이 있을 터이니, 그곳에 가서 자연과 벗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좋습니다.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지요. 나는 나와 같은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무능하고 바보인 것이라면, 동시에 그들 또한 모두 무능하고 바보가 돼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일단 인정하지요.

그런데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과 돈과 시장경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나의 경우는 그렇다치더라도, 이제 새로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결혼도 해야하고, 집도 장만해야 하는, 또다른 모든 나와 당신일 수도 있는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당신의 조카와 내 딸과 아들이 섞여 있을 것이고,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요.

내가보기에 그들이 5억5천만원이나 하는 집을, 그리고 불과 석 달 만에 내가 10년 넘게 저축해야 벌 수 있는 돈 만큼 가격이 올라버리는 집을, 장만하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은행 돈을 빌리면 살 수는 있겠군요. 그리고 일당의 80%를 매일 털어내 은행에 갖다 바치면 그 집을 소유할 수는 있겠군요. 그런데, 정말이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당이 그렇게 위대한 곳인가요. 대학을 나와 12년 동안 죽도록 일한 불혹의 가장이 살면은 절대 안될 만큼 대단한 땅인가요? 그럼 도대체 분당에서는 누가 살고 있는 건가요?

그래서 물어봅니다. 당신은 혹시 나일 수 있지 않나요? 당신도 돌아버릴 지경 아닌가요?

나는 다음 대선 때 집 값을 반토막내겠다고 공약하는 후보가 있다면, 그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것은 물론이고, 만사 제쳐놓고 그의 당선을 위해 운동원이 될 참입니다. 만약 실제로 집값을 반토막 낼 비전을 갖고 있는 후보가 있다면, 내 인권과 자유와 민주를 저당잡히고서라도, 군부독재로 회귀한다 하더라도, 기필코는 그 편을 택하고야 말겠습니다.

집 값 올랐다고 희희낙락하는 당신,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당신의 조카가 울고 있습니다. 당신이 집을 두 세 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그 웃음은 당신의 조카를 울릴 지언정 당신 스스로는 만족스러울 것이고, 그것은 당신의 그 잘난 자유지만, 만약 당신이 집을 한 채 밖에 갖고 있지 않으면서 웃고 있다면 당신은 나보다 더한 바보입니다. '5성 호텔의 감옥'이라는 현실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까막눈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정도면 집이 강도라는 내 생각이 너무 엉뚱한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집이라는 게 스스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닌 한 집이 강도이게끔 한 어떤 놈들이 있을 것이고, 그 놈들을 생각하면 화딱지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현행 법으로는 다스릴 수 없는 그 강도들을 단죄할 방법을 혹시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매일 '5성급 호텔'에서 자는 게 얼마나 지옥 같은지 당신은 이제 아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