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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째의 병상일기


BY 권명희 2005-06-30

오빠가 병원에 입원한지 오늘로 27일이 되었습니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초여름 장미가 붉고 화려하게 필무렵 입원해서
꽃잎이 모두 떨어지고 장마가 시작돼 지루한 빗줄기가 계속되는 지금도
오빠는 힘들게 힘들게 하루하루가 전쟁처럼 느껴질 고통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척수를 다쳐 병원침대에서 옴싹달싹 하지 못하고 있는 오빠를 위해서 오늘부터 제가 대신 오빠의 병상일기를 써가려 합니다.
며칠이 될지.....몇달이 될지......혹은 몇년이 될수도 있지만 병상일기가 너무 일찍 끝나게 되어 오빠가 우리곁에서 아픔만을 남기고 떠나가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점심면회를 갔습니다.
24일저녁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는 수술로 6월 4일 입원한 이후로 네번째의 수술이었습니다.
매번 수술을 할때마다 무너지는 가슴과 절망적인 생각들에 휩싸여 수술내내 가족들은 모두 발을 굴러야했고,늘 아이들때문에 집을 지키며 있어야 하는 나 역시도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이것이 마지막 수술이라고 하는데.....이젠 더는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이젠 정말 회복이 되어야하는데....
마지막 희망입니다.
오빠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주기를.....
힘들더라도 이겨내 주기를.....
지치더라도 제발 가족들 곁을 지켜주기를.....
얼마나 빌고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모릅니다.
이미 네번의 수술로 다해버린 기력으로 지친얼굴이지만 반짝이는 두눈은 아직도 생기로 가득합니다.
목을 뚫고 들어가있는 인공호흡기의 호스를 아무렇지도 않은듯 무시하고 그렇게 오빠의 두눈을 들여다봅니다.
애써 밝은 표정으로 얼굴은 미소를 띄우고.....
제가 가서 할수 있는 일은 고작 이런것들 뿐입니다.

"잠 못잤지?"하는 말에 오빠는 고개를 힘없이 가로젖습니다.
"그럼 좀 잤어?"하는 말에 오빠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대로 좀 서있는데 오빠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을 벙긋거립니다.
벌렸다 오므리는 입모양이 무엇을 뜻하는지 유심히 들여다 보지만 쉽게 알아볼수가 없습니다.
몇번을 되풀이하는 입모양을 보고서야 우리는
"아~~요일?"
오빠는 다시 힘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엄마와 언니,저는 함께 날짜,요일,시간까지 알려줍니다.
"26일,수요일,지금 점심면회시간.12시 좀 넘었어."
그러자 다시 고개를 끄덕이네요.
또 모두가 가만히 있습니다.
오빠의 머리위로는 새빨간 피가 수혈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힘이 없는 왼팔로 손가락은 움직이지도 못한채 오빠는 팔전체를 움직이며 손끝으로 얼굴을 긁적입니다.
기운없는 손짓에 모두 안쓰러운 표정이 되었다가도 얼른 내색않고 얼굴을 긁적여줍니다.
이번에 다시 오빠는 입술을 벙긋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합니다.
몇번을 되풀이하다 이젠 안되겠는지 머리쪽으로 팔을....힘없는 손을 움직여 갑니다.
오래 누워있어 머리를 감지못해서 인지,길게 찢어진 머리부분의 상처가 아물면서 인지 가려워합니다.
전 또 다시
"아~~머리?""긁어주까?"합니다.
오빠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지요.
처음엔 한손으로 다시 나머지 한손을 머리 사이에 넣고 시원하게 긁어줍니다.
오빠는 눈을 감고 있네요.
머리카락속의 꿰맨 상처며 피딱지가 걸릴때마다 제 가슴도 상처가 나듯 쓰립니다.
그만 되었다는 표시로 오빠가 다시 머리를 끄덕여요.
오빠의 몸은 지금 고열로 인해 추위로 덜덜 떨리고 있습니다.
물을 마시지 못해 입안이 말라 늘 물가제를 해달라고 하곤 했는데 오늘은 춥다며 그것마저도 거절입니다.
또 가슴이 아려옵니다.
멀뚱이 서있다가
"오빠야,어제 뉴스 본 거 얘기해주까?"
오빠의 공허하던 눈동자가 일순 반짝이며 내 얼굴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긍정의 의미로 다시 고개를 끄덕여주네요.
"60살 먹은 할머니가 산에 올라갔다가 산삼을 스물 몇뿌리나 캤대.
완전히 로또 당첨된거지."
이말에 엄마도 아는 할머니 한분이 산에 올랐다가 산삼을 많이 캐왔더라는 얘기를 해줍니다.
그 다음은 군부대에서 총기난사 사건때문에 8명인지 9명인지 죽었다는 얘기입니다.언어폭력때문이었다고 부수적인 설명도 곁들였지요.
그 다음 화제는 요즘 한창 인기있는 축구스타 박지성이야기입니다.
"박지성 아인트호벤에서 영국으로 간대.연봉이 50억쯤 되나?"
그 얘기에 오빠는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하려합니다.
다섯글자인것 같은데 여러번을 반복해주는데도 말뜻을 못알아듣자 오빠는 팔을 들어 허공에다 글씨를 씁니다.
"음~~~~ 마지막 글씨는 '구'자 맞지?"
끄덕여지는 고개.
"다른거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써봐."
저의 주문입니다.
허공에 다시 써지는 글씨들....
"음~~~처음에 글씨는 '청'이다.맞지?"
고개를 끄덕끄덕
"그 다음 글씨는?"
다시 써지는 글씨들.
"청소년 축구?"
몇번을 반복해서 휘젓던 팔이 이제서야 아래로 내려옵니다.
"청소년 축구 우승했냐고?"
끄덕끄덕
"그날 우승못했어.졌어.박주영도 국가대표팀에서 뛰고 그 다음날 바로 날라가서 경기하느라 그랬는지.....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진출 확정됐고."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여주네요.
형부가 불쑥
"브라질 하고 해서 2대 0으로 졌어."
해줍니다.
엄마도 웃으시며(우습지 않지만 반가운 마음에,또는 약간 과장스럽게)
"그게 궁금하더나? 누워있으면서 축구경기가 궁금해서....."
그래도 오빠가 생기있어 보여그런지 엄마도 좋아하시네요.

정확지도 않은 얘기들을 주섬주섬,관심없던 화제들도 주섬주섬....
"음~~다른건.....기름값 되게 많이 올랐어.배럴당 60달러 까지 올랐다가 58달러까지 떨어지고...요즘 기름값 되게 올랐어.
그리고 주요기관 지방이전도 확정됐고....."
그러고 나니 얘기꺼리가 떨어졌습니다.
뻘쭘히 모두들 서있고......

"오빠야!! 똥의 성이 뭔지아나? 권명희,권명자,권달형처럼....성말이야."
오빠의 눈이 동그래집니다.궁금함이 일었을까요?
"응가래~~ㅎㅎ"
모두들 어이없는 표정들.....
그래도 오빠는 약간은 웃긴가봅니다.
웃을일 없는 중환자실에서 누구도 이런 얘기를 할꺼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겠지요.
이제 가슴에 '안내'라는 이름표를 부친 아저씨가 중환자실을 돌아다니며 면회시간을 끝내달라고 얘기합니다.
이제 나가야 할시간이지요.
언니와 엄마 형부도 이제 슬슬 나갈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난 늦게 와서 조금 더 있다가 가야지."
했지만 담당 간호사께서 치료도 하고,안정도 취해야 한다고 나가기를 권하시네요.
이제 마지막 인사를 모두들 미소띈 얼굴로 하고 있습니다.
형부는
"처남! 걱정하지 말고 잘 견디고 있어.나 갈께~."
하십니다.무뚝뚝하시지만 오빠일로 여기저기 애많이 쓰시는 형부....
언니도
"달형아!!누나 갔다가 또 올께.힘들어도 잘 참고 있어.한숨 푹 자고.힘든데....."
안쓰러워 오빠의 머리카락을 한번더 쓸어주고,열이 올라 발간 얼굴을 한번더 보듬어 줍니다.
엄마도
"형아! 엄마 쫌 있다가 다시 들어오꾸마.누나하고 명희 보내고 이따 면회시간에 또 보자."
늘 면회끝나는 시간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신 엄마십니다.
그 다음은 나.
얼굴에 미소를 띄고
"오빠야!! 나 갔다가 또 올께.안녕~~"
하며 손을 흔듭니다.
오빠도 기부스한 오른팔을 살짝살짝 흔들며 배웅을 해주네요.
침대에서 조금 멀어지며 다시 한번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줍니다.
오빠는 눈으로 마지막 배웅을 해줍니다.
돌아서 나오며 다시 한번 오빠가 누워있는 침대를 쳐다보고 다시 돌려지는 얼굴에 미소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근심만 가득해집니다.
이 만남이 제발 마지막이 아니기를.....
내일도,모레도,일주일,이주일,한달,두달......허락한다면 우리모두 웃을 수 있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지기를.....
중환자실 자동문을 넘어서면 눈물이 차오릅니다.
차마 이제는 떨구지도 못하고 삼켜버리고 말지만.....
조금이라도 천천히라도 좋으니 회복이 되어
성한몸이 아니더라도 우리들 곁에만이라도 머물러 주기를.....
바래봅니다.
12시가 넘어 이제 오빠의 병원생활이 27일째로 접어들었네요.
9시를 끝으로 오늘의 면회는 마감이 되었고,엄마께 전화를 드립니다.
"오빠 면회는 들어가봤어? 상태는 좀 어때? 열은 계속나고?
아직도 기운이 없어? "
오빠는 열이 아직도 많이 나고 있고,낮보다 많이 지쳐있다고 합니다.
목에 꽂은 인공호흡기 호스로 피가 올라와 치료를 했다고 하네요.
척수를 다친 환자라 자연치료가 되질않고 지혈도 되지않아 수술부위의 출혈이 아직도 많다고 합니다.
담당의사께서는 조금 좋아졌다가도 갑자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고,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얘기를 하지만....
그래도 우리오빠 꼭 나을수 있겠지요?
꼭 다시 건강한 얼굴을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