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대통령입니다.' 2002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이끈 단 하나의 키워드다. 하지만 이 당시에 이미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정치인의 립서비스에 충분히 익숙해져있었고 노무현의 참여정부 30개월 동안 확실히 국민은 대통령이 되어가고 있다.
과연 우리 국민들 중 몇 퍼센트나 이 의미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노무현이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야 이 말이 실현될 수 있을까?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는다면 대통령만큼의 책임도 있어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구구단을 대체 이 국민들은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먹고살기 힘든 국민, 갈팡질팡 경제정책에 개피보는 서민, 저주받은 청년, 서민잡는 부동산 정책, 서민죽이는 소주값 인상, 세금 폭탄...젠장, 전봉준 장군이라도 다시 태어나 이 불합리한 세상을 뒤집어엎어야 할 판이다.
과연 서민은 맘대로 죽지조차 못한 채, 이렇게 괴로운 나날을 견디어야 하는가? 이 가엾은 서민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으로 이끌어줄 영웅은 나타나지 않는가? 노개구리만 사라지면 그나마 광명이 좀 비출 것인가?
웃기지 마라. 국민은 이미 대통령이다. 그 살벌하던 봉건왕조시대에 군왕들이 왜 '민심은 천심이다'라고 했는지 아는가? 5.16 양아치 김종필마저도 12.12 군발이들에게 무장해제되면서 노태우에게 이르기를, '국민은 항상 멍청하고 나약한 것 같지만, 가장 무서운 것도 또한 국민이요..' 라고 했는 줄 아는가?
대중은 언제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최홍만이 아무리 발차기가 안되고 쌈박질 기술이 떨어진다 해도 K-1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이유는 그가 덩치가 크기 때문이다. 밥샙의 살인펀치보다, 후스트의 스피드보다, 크로캅의 하이킥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의 긴 리치와 뻗어도 뻗어도 닿지 않는 큰 키다.
서민대중이라는 것은 언제나 죽겠다고 엄살이지만, 언제나 파리목숨의 연명이라고 한숨짓지만, 어떠한 권력도 서민대중이라는 커다란 덩어리 앞에서는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살인마 전두환이가 왜 감빵가고 절간가서 절치부심했겠는가? 싸움을 피해서 그렇지, 기술이 좀 늦어서 그렇지, 제대로 준비해서 한번 붙어보자면 누가 홍만이의 적수가 될 것인가? 원래 가장 강한 것은 군왕이 아니라 나약한 서민대중이다.
영화 '혈의 누'와 '너는 내 운명'... 시대도 다르고, 배우도 다르고, 내용도 다른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서민의 권력이다. 대중이 얼마나 악랄하고 무서운 존재인지를 잘 말해준다. 그 서민은 누구인가? 그 대중은 누구냔 말이다..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과 이글을 쓰는 나를 일컫는다. 그네꼬의 꼬붕도 서민이고 노무현의 빠도 서민이다. 우리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악랄하고 무서운 권력이라는 생각..정말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다.
'혈의 누'의 서민은 그야말로 나약하고 배고픈 군중이다. 피살사건의 주인공인 '강객주'는 마을사람들에게 저리로 돈을 빌려주고 제지소에 취직시켜 충분한 품삯을 주고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며 가난한 민중들의 자립을 돕니다. 그리고 '능력에 따라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며 힘없는 서민에게 희망을 나눠준다.
그가 천주쟁이로 몰리고 누명이 씌어져 사지가 찢어지는 참형에 처해질 때, 그 나약하기만 한 군중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매몰차고 악랄한 살인자로 변신한다. 강객주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이미 재판받은 상황에 괜시리 나서기가 두렵다. 관에 불려다녀야 하고 조사도 받아야 하는게 귀찮다. 게다가 강객주가 죽으면 싸게 빌린 돈마저 안 갚아도 된다. 그냥 너하나 독빡쓰고 죽으면 에브리바디가 해피다. 그 에브리바디가 혹시 '우리모습' 아닌가?
'너는 내운명'.. 너무도 은하(전도연)를 사랑한 36살 시골노총각 석중(황정민)은 은하가 다방레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평생가약을 맹세하고 아내로 맞는다. 마을사람들은 이미 가볍게 무시한다. 은하가 에이즈에 걸리고 집을 떠나자 석중은 거의 폐인이 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떠났으므로.
에이즈환자의 남편이라는 이유로 그와 같은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 사람도, 악수를 하는 사람도, 술한잔 나누는 사람도...아무도 없다. 그의 찢어질 듯한 가슴을 이해하기는 커녕, 친구라는 자도, 이웃이라는 자도 그의 행색을 비웃고 그의 가슴에 대못질을 한다. 그들이 바로 우리모습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받으려는 꿈을 꾸는 자, 사랑을 위해 석중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꿈을 꿔본적 있는가?
우리는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사는가? 우르르..사람 많은 틈에 숨어, 누군가의 가슴에 못질을 하고 누명을 씌우고, 평생 상처를 주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또한 얼마나 많은가?
만약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6개월만 따라다닌다면 어떻겠는가? 당신은 그리도 누군가를 비난하고 저주해도 될만큼 깔끔한 인생인가? 당신의 말과 행동은 서민이라는 가면을 쓰고 언제나 약자이며, 언제나 힘없는 소수인가?
과연, 우리는 친구들과의 돈거래와 소소한 약속들을 완벽하게 잘 지키는가? 다른 아이들과 싸우는 내 자식이 뚜렷하게 잘못했다고 해도 남의 자식을 먼저 야단치는 편협함은 없었는가? 계약성사를 위해 무리한 접대를 하거나 심지어 부당하게 돈거래하는 것은 정치인들만의 전매특허인가?
당신은 또한 나에게 물을 것이다. 이런 씨바.. 대통령이랑 나랑 같냐? 나야 별볼 일 없는 서민이고, 노개구리는 대통령이자너. 졸라 중요한 사람이자너. 그러니깐 그넘은 훨씬 더 잘해야지. 잘못하면 욕먹는 거고 잘못하면 얼렁 갈아치워야지..
당신, 한번만 새겨보자.
세상에 어떤 권력도 아버지라는 이름보다, 어머니라는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당신은 이미 가정이라는 당신의 국가 안에서 대통령보다 더 중요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지 않은가? 당신의 자녀들에게 5년마다 투표권을 줘서 재신임을 묻는다면, 5년 후에도 다시 한번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될 자신 있는가?
민초라고 불리우는 서민대중의 책임 역시 무한하다. 매일매일 고민하고 판단하고 반성해야 할 소소한 일들이 우리 일생을 가른다. 우리의 권력은 이미 대통령이다. 최소한 달랑 한 가정의 어른으로서, 달랑 한두명뿐인 자녀들에 대한 책임과 권한의 적절한 사용조차도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대통령에게 책임을 다해달라고 요구하자. 똑바로 하라고 눈 부릅뜨자. 그를 자리에 앉힐 수도, 끌어내릴 수도 있는 그 힘으로 우리 자신도 한번 쳐다보자. 진정, 국민이 대통령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