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75

(펌)만약 유시민의원이 복지부 장관이 된다면...(국민연금에 대하여)


BY 효자 2005-12-11

역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연금개혁이 될 텐데, 걱정이 앞섭니다.

연금개혁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거의 이의가 없지만, 어찌 고칠 것인가에 대해서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강의 넓이는 너무 넓은데, 건너갈 사공들조차 '넓은 간격' 속에서 결속이 안되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앞으로 반세기를 좌우할 중차대한 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난제 중의 난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아십니까? 왜 연금개혁이 중요한지? 왜 어려운지? 왜 해결이 쉽지 않은지?

먼저 연금개혁이 중요한 이유 잠깐 말씀드리지요. 이는 사회구조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모두 들으셨겠지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중입니다. 고령화 사회란, 단순히 평균 생존 연령이 높아진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노령화'된다는 걸 의미하지요.

아무리 경험이 중요하다 하여도, 노인들이 청년의 활력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런 자연의 법칙을 감안하면, 사회가 노령화된다는 것은 그 사회의 활력도 저하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추상적 이야기를 접더라도, 고령화 사회는 당장 우리 사회의 생존 원리를 바꿔야 할 정도의 거대한 변화를 야기시키게 됩니다. 연금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원래 연금이란 기본적으로 세대간의 계약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낸 돈을 자기가 돌려받는 식의 운용은 애초에 거의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노동인구의 소득 일부를 은퇴한 인구의 생활 자금으로 융통하는 제도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연금'이라는 사회적 제도로 정착되기 이전에도 이런 원리는 그대로 통용되어 왔습니다. 한국사회 특유의 '효'는 사실 '연금'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효'라고 떠들지만, 실제로 부모를 봉양하도록 만들어진 가치체계이지요. 젊었을 때 자식들에게 '투자'했으니, 나중에 자식들로부터 돌려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는 '효'의 근본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희들도 언젠가는 늙어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니,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고 너희들이 힘닿는데 까지는 늙은 부모를 보살피는 게 당연하다'는 개념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이 '효'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해석하면 '효'가 너무 속물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그 원리 속에 이런 면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어쨌든 연금이란 그 동안 개인이 맡던 '효'를 사회적으로 확장시킨 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낸 것 이상 돌려받는 구조가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되지요. 그 '이상'은 결국 다음 세대가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이구요.

이런 방식은 사회의 인구가 점차 증가하고, 노동가능 연령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증가하는 동안은 비교적 안정적인 방식입니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100명의 청년이 100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유지가 되거나, 점차 110명의 청년, 120명의 청년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잘 돌아갈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 균형이 깨지게 되지요. 예전에 100명이 100명을 부양하던게, 고용이 불안해지고, 평균수명은 늘어나면서 90명이 110명을, 80명이 120명을 부양해야 하는 쪽으로 이동하게 되는 거지요.

그 만큼 노동인구의 부담이 커지게 되고, 이는 제도의 영속성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다가오게 되는 거지요.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위기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미 오래 전에 적자가 개시된 군인연금, 공무원연금은 물론이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조차 30년후면 재정이 고갈되느니 마느니 하는 걱정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연금에 대한 의존은 커지나, 부담층과 수혜층의 적정 비율이 깨지면서 제도의 영속성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지요.

자, 이토록 중요한 일이면 어찌해야 할까요?

제가 보건데, 연금 문제 개혁에 이 세 가지 원칙은 반드시 관철되어야 합니다.

첫째, '영속 가능한 제도 설계'가 이뤄져야 합니다. 만약 지금 제도 설계가 그렇지 않다면, 그럴수 있도록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고쳐야 합니다. 영속적이지 않은 설계는 또다시 '보수'를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임시 처방도 때로는 필요하나, 근원을 고치지 않고 땜방만 자꾸 하다간,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일이 벌어진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둘째,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고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연금이라는 게 지금 일반화되면서 그 수혜자가 기하급수적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접적 이해 당사자'가 그 만큼 매년 불어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해 당사자가 많아질수록 '개혁'이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셋째, 사회보험으로서의 국민연금적 성격을 강화시키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을 통합해 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통합은 '물리적 통합'이 아니라, '급여의 통합'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연금을 택해도 경제적 보상 비율이 같도록' 제도 변경이 이뤄져야 한다는 거지요. 이게 되지 않으면, 결국 더 유리한 제도로 가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고, 영속적 운영에 장애가 되리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쉽게 말해서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서 더 유리한 구조를 그대로 두게 되면, 연금이 점차 중요해지면 질수록 사람들은 우수 인재들은 다 공무원이 되려고 할 것입니다. 공적 부문이 과도할 정도로 인재를 흡수하는 것은 사회 전체를 볼 때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군인연금에 비해 공무원연금이 더 유리할 경우, 군인들이 틈만 나면, 일반 공직으로 진출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연금 제도가 인재의 사회적 분배를 왜곡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연금을 택하더라도, 결국 자기가 얻는 이득은 비슷하도록' 제도를 바꿔 나가는 것만이 근본 대책이라는 거지요.

사실, 이런 원칙 정도는 어느 정도 합의도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현실적 개선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사실, 회의적입니다.

영속가능한 제도를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입니다. 근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몇 십년 후의 일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당장의 1원이 십년 후의 10만원보다 더 큰 가치를 갖는 것이 인간 세상입니다. 먼 훗날의 재앙보다, 지금 당장 더 내야 하는 몇 천원이 제도 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모양새이지요.

그런데, 선거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민주사회에서, 늘 '목전의 선거 승패'가 중요하기 마련이고, 몇 십년 후의 국가 흥망은 당장 집권을 하는지 마는지에 묻히기 십상이지요. 이건 여든 야든 마찬가지이나, 이에 대한 개혁 방안은 국회에서, 정부에서 쉽게 합의되고, 추진되기가 어렵습니다.

연금의 수혜자와 부담자들인 일반 유권자들이 이토록 직접적 이해 당사자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따라야만 하는 겁니다. 하다 못해, '국회에서의 합의'라도 이뤄져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게 제도적으로 어렵고, 우리 정치 문화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지요.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게 문제를 더 키우고, 더 고치기 어렵게 만드는 근원이지요.

저는 90년대 초반에 이미 어느 글에서 이런 표현을 보았습니다. '지금 군인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걸 다 안다. 그러나 이를 손 대려면, 쿠데타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막말로 이거 믿고, 여태 버티고 있는 직업군인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들이 총 들고 나서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공무원연금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국민연금에 비해서 극히 소수에 불과한 이들 연금 개혁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국민연금 개혁은 어떨까요?

물론 다른 설도 있습니다. 공무원연금 같은 경우 이해당사자가 직접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소수이므로, 이들의 목소리는 크게 반영되므로, 이 문제는 쉽지 않으나,

국민연금은 비록 다수가 관련되어 있으나, 개개인이 모두 무임승차할 수 있는 구조이므로, 오히려 개혁하기 쉽다... 이런 거지요. 보통 경제학에서 이를 공공부문의 비극 뭐 이렇게 말하는 것 같더군요. 모든 이들이 규칙을 지킬 경우 사회적 이득이 막대하나, 한 사람이 지키지 않는다 하여서 크게 표나지 않고, 반대로 모든 사람이 지키도록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 경우, 그런 균형은 이뤄지지 않는 거지요. 결국 사회적 이득이 실현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난제는 여기에서 비롯되는 거지요...

만약 유의원이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의제화'와 '해결의 단초'라도 제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나아가 '자그마한 개선'이라도 이뤄낸다면, 당장은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대한민국 연금제도를 살려낸 사람'으로 이름이 남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황교수 건도 중요한데, 이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 좀 가져 봅시다... 한겨레21이 이 이야기를 해서만이 아니라, 말만 많고 개선은 없는 일에 유의원이 관여하게 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