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올 때 나는 내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는데 남편은 남편대로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나는 아이들방을 침실과 공부방등으로 따로 해주고 싶었지만 그당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남편에게 양보를 하고 말았었다. 그러면서 몇 번의 시행 착오를 겪으며 무거운 가구도 이리저리 옮겨가며 하기를 몇 차례.... 드디어 요 며칠에 걸쳐서 나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 자리에 대부분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맨처음에 내 의견대로 시행했다면 이사 당시에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다 했을 터이니 힘들지 않았을텐데 이제서야 이리저리 옮기면서 거실과 방바닥에 상처를 많이 입히기는 했지만 그러면서 생각하길 서로의 의견 존중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남들은 남편이 너무 가정에 소홀히 해서 문제라는데 우리집은 그와 정반대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남편의 손이가야 무엇이든지 해결이 나고 또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온 집안의 대청소 날에는 가장 힘이센 남편이 청소기를 잡으면 그 뒤를 걸레들 들고 내가 따라 나서고 아이들은 어지러워진 자기네들의 물건을 치운다. 내가 그들의 물건을 치우지 않는 이유는 자기들의 물건을 쓸일이 생겼을 경우 스스로 찾아서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함도 있다. 또 청소를 하다보면 버릴 물건이 한 두개라도 꼭 생기게 되는데 그 물건을 바로 버리지 않고 한 번쯤은 '어디에 다시 재활용을 할까?'를 먼저 생각한다. 평소에 쓸모가 없는 것 같아 버렸던 물건이 하루도 안가서 꼭 쓸일이 생겼던 경험을 너무도 많이 가졌기에 뒷 베란다 창고 한켠에 잠시의 유예기간을 둔다. 아이들 책과 노트도 학년이 바뀌면 쓸모가 그다지 없기는 하지만 유예기간을 두는 것은 마찬가지..... 중 고등학생이 되면 함부로 참고서 같은 것을 버리고 나면 나중에 필요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래서 학년이 끝나도 바로 버리지 않고 1년 정도는 묶어서 창고에 보관한다.' 학년이 올라가서 과제물 제출할 때 필요시 참고하기 위함도 있고 동생이 있을 시에는 따로 시험지나 과제물 같은 것을 놓아둔다면 더 요긴하게 쓰인다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옷은 버려야 할 옷과 물려줄 옷을 구분하여 정리한다. 물려줄 옷은 동생에게 의견도 물어보고 한 번 입어도 보게 해서 이제부턴 '언니 옷이 아닌 너의옷'이라고 명명 지어주고 작아져서 못 입게 된 버리기 아까운 옷은 학교 바자회 때 보내기 위해 따로 모아놓고 버려야 할 옷은 재활용함에 넣는다. 그리고 우리집에는 비싼 화초는 아니지만 여러개의 화분이 있는데 우리 큰 아이 돌날에 들어온 화분도 있고 그 중에서 제일 오래된 것은 18년전 결혼하던 해에 샀던 화분도 있다. 특별히 비싸지도 않은 그 화분들이 지금까지 우리와 같이 있게된 것은 말을 못하는 화초라 할지라도 분 갈이를 제때로 잘 해주고 겨울에는 거실로 들여 놓은 등 항상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 길렀기 때문이다. 청소를 하다가 간혹 무거운 물건을 옮길 일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에 앞서 옮길 곳과 옮겨야 할 물건에 줄자로 재어보고 가구 배치 밑그림도 미리서 그려보고 또한 그 것을 사용해야 할 당사자들의 의견도 물어보고 해서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야 효율적으로, 그리고 기분 좋게 집안 정리를 할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이 어릴 경우에는 장난감 정도는 스스로 치워야 한다는 것을 말을 하고 어느정도 큰 아이들이라면 가족 모두가 협력하고 분담을 하여서 같이하면 능률도 배가 되고 평소에 쉽게만 느껴지던 집안 청소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는 것을 서로가 느끼게 되면서 가족의 소중함도 함께 배우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