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일어나면 또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힘겨운 삶의 현장으로 나섭니다. 그러려면 우선 도토리 밥 만큼일지언정 한 술 뜨고 볼 일이지요. 다음으론 양치질을 하고 세수도 해야 합니다. 면도에 이어 머리도 감고 스킨과 로션으로 얼굴을 발라줍니다. 그리곤 허겁지겁 정류장으로 뛰어 버스에 오릅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일과는 하지만 늘 그렇게 애면글면 어려운 지경과의 전쟁인지라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연유로서 어젯밤에 시청한 방화 <바람의 전설>은 '나도 한 번 춤을 배워볼까나?" 라는 자문자답을 불러 일으키게 했습니다. 처남이 경영하는 총판 대리점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관리사원 박풍식(이성재 분)은 주부들의 판매실적을 체크하고 할부금의 입금을 독촉하는 것이 주된 일과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의 저처럼 하루하루가 지겨운 30대 가장이죠. 헌데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 만수(김수로 분)를 통해 알게 된 사교댄스는 깜깜한 그의 인생에 한 줄기 구원의 빛처럼 다가옵니다. 만사 의욕상실이었던 풍식은 '하나, 둘,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스텝을 밟아 갈수록 진정한 춤의 매력에 빠져 인생의 활력을 되찾아갑니다. 그러나 만수의 제비행각으로 잘 나가던 사업은 풍비박산의 지경에 이르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친구의 배신으로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던 풍식은 그제서야 '진정한 춤꾼'으로서의 사명감을 느끼며 대한민국 최고의 1류 댄서가 되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춤의 고수들을 두루 찾아가 춤의 철학과 정신에 대한 기본부터 철저히 연마하게 된 풍식은 5년간의 유랑생활을 접고 아내와 자식 곁으로 돌아옵니다. 그 후 대한민국 사교계의 '지존'에 올라선 풍식은 거물급 사모님들의 표적이 되어 나날이 그 명성은 높아만 가는데 하지만 서울의 모 경찰서에서는 춤바람이 난 경찰서장의 부인이 카바레 제비에게 수 천만원을 갖다 바친 사건으로 온 경찰서가 들썩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건의 해결을 위해 해당 경찰서의 미모의 여형사 연화(박솔미 분)에게 풍식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짜 환자로 접근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연화마저 '병실취조'를 하면서 풍식의 솔직한 과거사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고 더불어 급기야는 그에게서 춤까지 배워가며 그의 인생스토리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됩니다. 이 나이를 먹도록 춤이란 건 그저 술에 취해 노래방에서 내 멋대로 흔들어대는 이른바 '막춤'밖에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이지 저도 모르게 춤을 배우고만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중늙은이가 다 된 지금에서 와서 춤을 배워봤자 뭐 하겠습니까. 괜스레 어설프게 잘 못 배운 춤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풍비박산된다면 그보다 더한 비극은 다시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여하간 춤의 세계가 그리도 아름답고 오묘한지를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비록 춤은 앞으로도 배울 생각은 없으되 정신건강의 도모와 매너리즘의 타파를 위해 등산이라도 자주 다닐 생각입니다. 등산은 춤처럼 돈이 들어가지도 않으며 시간을 허투루 잡아먹는 일도 없을테니까 말입니다. 역시나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겠지요? 오는 주말부터는 다시금 건강을 위해 등산에 열심일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