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87

마지막 된장을 푸며...


BY 지나다 2006-03-10

저에게는 외할머니가 한분 계십니다.일찍 남편(제 외할아버지)을 잃으시고 4남매를 키우셨는데,젤 큰 아들이 나중에 할머니를 모실테니 외할아버지가 갖고 계시는 얼마 안되지만 전 재산을 모두 이 큰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나중에 큰외삼촌이 결혼하신 뒤 외할머니는 외숙모와 성격이 안 맞아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외숙모가 외할머니께 막말하는 걸 보면 외숙모가 구박하신 것 같음) 저희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4남매 중에 유일한 딸이었는데,정말 돈 하나 안 들이고 키운 자식입니다.공부도 잘했고,학교 매점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었습니다.고등학교 가면서 졸업 후 취직해서 돈을 벌기 위해(돈 벌어서 대학 가려고 했다고 함) 실업계 학교에 들어갔고 졸업 후 대학 등록금을 벌었지만,큰외삼촌 공부시키느라 대학을 못 가셨다 합니다.

외할머니는 자라면서부터 저희 엄마에게 아무 것도 못 해주고  재산도 다 큰 아들 주고 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당신의 몸까지 딸에게 의지하다보니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사셨고(옛날 분이라 딸네집에선 얹혀 사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계시는데),사위(저희 친정아버지)의 눈치를 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맘 편치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셨습니다.엄마도 그런 할머니 맘을 알기에 또 힘들었고요.

그러던중 어디서 강아지 한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할머니는 이 강아지를 의지하고 정성으로 키웠습니다.

그렇게 1~2년 되었을까? 오빠가 하는 일이 안 되어서 자기 재산 다 털어먹고 저희 친정집에 온 가족이 들어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당시 세돌 정도 된 제 조카가 강아지만 보면 거의 경기 수준이었고,올케언니도 더럽다고 강아지를 아주 싫어하는데다 자식이 무서워하니 더더욱 싫어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강아지는 다른 집으로 보내게 되었지요.그 집이 저희 친정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할머니는 몇날 몇일은 그집 앞에 가서 먼 발치에서 보고 우셨다고 합니다.그러다가 우울증에 걸리셨어요.본래 연세도 있으신 분이라  다른 병들이 함께 오셨습니다.

그렇게 입원을 했다 집에 돌아오셨다 그렇게 반복을 하시고 계셨는데,그렇게 1~2년 정도가 지나자 이제는 오빠가 부모님의 재산까지 다 들어먹고 저희 친정부모님은 집한채 달랑 남았는데,그것을 헐값에 팔고 시골로 이사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외할머니는 고향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큰외삼촌집으로 들어가시게 되었는데,거기서 외숙모의 온갖 욕을 들으며 사시다 우울증과 병이 심해지고 외숙모는 저희 외할머니 보기 싫으셔서 아예 딸(저희 외사촌언니)의 집에서 애 봐준다는 명목으로 가서 거의 오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은 노인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지금은 아예 말을 못 하시고(실어증이 오신 듯) 한쪽 팔 다리가 마비가 되셨습니다.

그 할머니가 저희 친정이 고향을 떠나 오기 전에 된장을 담아주셔서 중간 항아리로 하나였는데,이제 마지막 된장을 풉니다.이제 다시는 할머니께서 담아주신 된장을 먹을 수 없겠지요?

할머니께서 계신 병원이 시골이라 교통편이 안 되어 아직 어린 애들 데리고 거의 가지 못하고, 말도 못 하셔서 전화도 못 하고 있습니다.친정엄마께서 병원에 가실 때 전화기 대주시면 그냥 저 혼자서 떠들다 끊습니다.

올해 연세가 89세이신데,저희 형제들과 어려서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같이 사신 분이라 이러다가 돌아가시면 마음이 복잡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