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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


BY 예쁜토끼 2006-03-21

시집살이  8년만에  해방되던 그날   그날따라 비는 왜이리 오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청승맞아 보이기도 하고  한심 하기도 했는데, 그날 기분이란  자유를 찿은 한마리 토끼리고나 할까! .................. 그동안 시집살이 이야기를 하자치면 소설을 몇권이나 쓸것같고!     그저 한숨만 나온다.  홀 시어머니에 시누 시동생  나는 이렇게 시집살이가 시작됐다. 의심많고 잔소리많은 우리 시어머니  주무실때 빼 놓고 는  한시도 그놈의 잔소리는 그치질 않는다.  남편이 있을때는 더욱 잘 하는척 없을 때는 곧바로 팥쥐 엄마로 변신  자기 아들은 남편겸 아들로 착각 하시는 우리 시어머니  임신 8개월이 되었어도 임신복 한벌 준비 안해 주시는 잔인한분 자기 딸이 유산을 해서 친정에 왔을 때도  임신한 나보다도 자기 딸을 더 걱정 하며 맛나는 음식을 사가지고 와서 자기 딸만 챙기시는 우리 시어머니 아주아주 섭섭하다 못해 얄밉다.으째 그동안 일을 다 말로 옮길수 있으랴.......................

기가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이제야 생각해 보니 더욱 괘심한 생각이 든다........

언제가는 이런일도 있었다.  임신 초기에 밥맛이 없어 밥을  비벼서 먹고 있을때  곧바로 바깥에 나가시려고 하시다가  히시는 말 너 그 밥 다 먹을수 있겠니 하시며 야단을 치셨다. 나는 밥을 먹고 있다가 그만 그 말씀에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만 먹고 남기고 말았다. 남은 밥은 검은 봉지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음식물이 재활용이 않되던 때라 그랬었다. 초저녁 쯤 되었을까  어머님이 오셨다. 그러더니  바깥에 있던 쓰레기통을 뒤지시더니 아까 그음식물 찌꺼기 봉투를 꺼내시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놀래서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그봉투를 꺼내서 손으로 막 찢고 계셨다. 한순간에 음식물은 사방으로 튀고 난장판이 되었다.  시어머니 하시는 왈 """"""    야 ! 너 아까보니 꼭 남길것 같더라 하시며 알뜰하지 못하다면서 소리를 버럭 지르시면서 난리 범석을 떠셨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왜 이리도 서운한지 모르겠다. 꼭 그렇게 하셔야만 했을까  지금도 그것이 의문이다.  

가슴이 아프다.......     목욕탕을 갈라치면 시간을 재시는 우리 시어머니  지금 몇시니까 몇시까지 와라 하시면 잔소리 하는 시어머니 가슴이 답답해서 가슴이 무너질것 같다.

어머니에겐 너무나도 효자인 우리 남편  중간에서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은 들지만  그렇지만 나에게는 너무한 남편 지금 까지도 그것이 많이많이 섭섭하다. ......

언제쯤 이라야  우리 시어머니 좋은 시어머니로 변신 될수 있을까..............!

나만의 아픔이 아닌 지금도 그 아픔은 계속 되고 있고  우리 아이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다.

그것이 나에게는 더한 슬픔이기도 하다. 남들 다 하는 태교 한번 편안히 하지못하고  콩쥐 처럼 지내온 세월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줄 알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었다.

지금은 분가한지 10년이 되었고 그러나 지금도 그 아몽같은 그 시절은 내 평생에 지우고 싶은 세월일 뿐이다. 그러나 더욱 나를 슬프게 하는것은 아직도 우리 시어머니 예전과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때는 언제쯤일까?...............

한숨만 나올뿐이다. 그리고 다시 나는 기도를 드릴 것이다. 우리 어머니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