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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백지영의 방송출연이 한국사회를 성숙케 한다


BY dkwnaak 2006-03-22

연전에 섹스비디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수 백지영 씨가 자신의 5집 앨범으로 가요계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예전의 댄스가수에서 발라드가수의 이미지로 나름대로 변신을 했다는 보도다.

물론 스캔들 이후 케이블방송과 라이브무대 등을 통해 가요활동을 개시하긴 했으나 여전히 공중파 방송출연 금지라는 상징이 보여주듯 연예활동의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은 상태다.

주홍글씨의 사회적 효용을 무시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왜냐면 남녀노소 모든 국민이 볼 수밖에 없는 공중파, 그것도 공영방송체제의 우리 공중파 텔레비전 프로에서 ‘섹스스캔들’이라는 금기영역의 주인공을 버젓이 출연시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볼 것은 백지영 씨가 과연 공익을 해치는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백지영 씨의 경우 난잡한 사생활이 부른 스캔들이라는 이미지가 공중에 각인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흔히 여성연예인들을 볼 때마다 쉽게 떠오르는 ‘무절제한 사생활’ 이미지가 있는 것도 어쩔 수 없이(?) 한국 여성연예인들이 감당해야 할 운명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여성연예인들은 남성우위 문화권의 또 다른 희생자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백지영 씨를 생각할 때 안쓰러운 것은 예의 ‘비디오사건’에서 그녀의 잘못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죄를 지은 사람보다 훨씬 가혹한 형벌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당사자로선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사건이겠지만 당시 비디오사건의 경우, 백지영 씨는 엄연한 피해자다. 그녀가 어떤 성행위를 했든 간에 그것은 이미 성인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행위주체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것뿐이다. 그것을 ‘난잡한’ 사생활의 소유자로 지탄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정작 개인의 사생활을 무참히 도륙낸 비디오촬영의 당사자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자다. 오늘과 같은 사회분위기라면 응당 전자팔찌라도 채워 사회적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인사가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지금 어느 곳에도 없다. 다만 슬며시 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차디찬 사회적 몰매를 백지영 씨가 대신 맞아왔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주홍글씨’가 여전히 21세기 한국사회에 존재하게 만드는, 다시 말해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을 상징하는 증표로 백지영 씨를 방치한 것이다.

지금 한국은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화가 이룩된 사회다. 권력의 탈권위주의화로 법치주의가 상당부분 복원력을 갖고 정상적으로 기능하려고 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 각 부문에서 민주주의의 컨텐츠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리고 사회의식면에서 시민사회의 미성숙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백지영 씨의 방송출연 금지조치다.

알다시피 민주주의의 확대는 인권의 확대와 더불어 가능한 개념이다. 개인의 권리영역의 확대 없는 ‘공중’의 강화는 전체주의적 사회일 뿐이다. 공익이라는 미명하에 ‘개인’을 억압하는 것은 문화적 파시즘에 다름 아니다. 바로 그런 ‘공중의 파시즘’에 백지영 씨가 걸려들어 희생양이 된 것이다.

다시 한번 엄밀히 따져보자. 그녀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유명가수로서 옐로우 저널리즘의 먹잇감으로서 충분한 정황 - 가부장적 사회분위기와 여성의 상품성이 존재하는 환경 - 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방송은 그녀의 출연금지 해제를 놓고 고민 중이라 한다. 정확히 말해 그녀의 공중파방송출연에 대해 ‘공중의 반응’이 어떨지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방송당국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녀를 복권시켜야 한다. 하나는 아무런 잘못 없는 그녀에게 가했던 ‘방송과 공중’의 파시즘적 징벌에 대해 늦었지만 사죄를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또 다른 이유는 그녀의 방송출연이 한국사회에서 ‘전체주의적 공중’의 존재를 극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점에서다. 즉 그녀의 방송출연자체가 한국사회가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는 개인의 사생활영역을 획기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 그래서 개인의 인권영역이 더욱 확장되는 사회적 캠페인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생활영역에서 구체적으로 확장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해야 할 이유가 단지 이익분쟁에서의 정당한 몫을 차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의 인정과 개인 사생활보호의 확대를 통해 인권의 신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생생한 사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백지영 씨의 공중파 방송출연은 그녀에게 가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테러에 대한 보상의 의미와 더불어 한국사회가 인권이 만개한 문화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한다는 차원에서 고민의 여지없이 즉각 결정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