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으로 난처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단란주점이나 룸싸롱 가서 접대부들이랑 술 마셔보신 경험들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부끄.....OTL). 적통(?)은 아니지만 그쪽 업계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기생의 후예쯤 되겠는데 끊임없이 고객에게 술을 먹이고 자신도 먹어치워서 매상 올리려는 독종이 있는 반면에 어쩌다가 황진이 같은 포스를 발하는 독특한 상대를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황진이과' 호스테스들은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여기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중 재미난 것은 '진상'들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쪽 업계에서 '진상'이라고 하면 매너 드러운 손님을 지칭하고 '진상 났다.'하면 어느 방에서 테이블 엎어지고 술병이 날라가 깨지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최연희류의 종자들이 급성 알코올 증후군에 빠져들면 어떤 행동양식을 보여주는지 신경정신과 실습에서도 볼 수 없었던 흥미진진한 사례들이 피해 당사자의 생생한 경험담으로 저에게 전해지는 셈이지요.
황진이과 호스테스들과 술친구되어 나눈 이야기에서 제가 배운 바는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인간이기에 우리가 그들의 서비스를 평가하고 보다 나은 서비스를 요구하듯 그들도 고객을 평가하여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고객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당연한 교훈을 하필 룸싸롱에서 고상하지 못하게 얻는 저도 분명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의료와 의사에 대한 글을 올리고 나서 그에 대한 반응들을 살펴보니 몇 가지 핵심 키워드가 떠오르는데 그중 환자와 의사간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의사들에게 서운한 심정을 감추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문제제기입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소통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객체간의 소통의 시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저 인간이 왜 저럴까?'하는 측면에서 그 동기를 알고, 가능하다면 이해하고, 더 아량이 있다면 공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원을 내고 서비스 업종을 이용한다고 합시다. 솔직히 대부분의 서비스업에서 만원을 내고 만원 값어치를 하는 서비스를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본전을 뽑거나 그 이상을 얻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상대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서비스업의 본질이기에 본전을 뽑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햇볕정책'일 것입니다. 상대방의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해서(비위 맞추라는 게 아닙니다.)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지요. 제가 먼젓번 글에서 의사들의 '범행동기'를 파악하시어 '의사들을 길들이시라.'고 말씀드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 저 의사 새끼 또 촌지나 달라고 저러나 보다.'라는 반응을 보이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이시라면 제 글을 읽으시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정중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룸싸롱 호스티스에게 지폐 몇 다발 더 찔러주면 보다 더 화끈한 서비스를 받으실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의사들 중에도 호스티스처럼, 차떼기당 조직처럼 현금이 들어가야 동작을 하는 종자들 분명히 적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찰은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최고의 윤활유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루하게 긴 글을 적는 이유는 돈이 없는 사람들, 또 돈이 넘쳐나도 절대로 그렇게 병신처럼 쓰지는 않겠다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내원이 '어서 오십시오. 몇 층 가십니까~~?' 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월급 받고 자기 할 일을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녀의 인사를 받기 전에 한 박자 먼저 '수고가 많으시네요.'라는 말을 건네 보십시오. 그리고 주머니에 굴러다니는 목캔디 하나라도 있다면 건네주시면서 그 백화점 매장 중 싸고 좋은 옷을 파는 매장을 추천해 달라고 해 보십시오. 옷 사시는데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의사 길들이기' 제 2 부는 '진상 환자'가 되지 않고 '매너 넘치는 환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의사라는 동물은 아주 간교하고 잔머리를 잘 굴리는 놈들이라서 매너 넘치는 환자를 마주하게 되면 '특급경계'에 들어가 웬만하면 알아서 잘 기어줍니다. 아파 죽겠는데 왠 매너타령이냐고 타박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매너 넘치는 환자의 원조격인 관우는 명의 화타의 흠모와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리시며 제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오해의 소지가 또 있을까봐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데 여기서 언급되는 '진상 환자'가 의료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없는 못된 사람이라는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아플 때 이거저거 매너 따지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 역시 상식입니다. '싸가지 없는 진상 환자'라 할지라도 의료서비스는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만원을 내고 만원을 서비스 받는 차원이 아닌, 만원을 내고 수십만원의 서비스를 뽑아 먹으면서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사자도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드는 그런 의료환경을 꿈꾸면서 저는 글을 적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꿈의 시작은 매너 넘치는 환자에게서가 아니라 의사 자신에게서 출발한다는 점도 명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 역시 사람이기에 마주쳐 줄 손뼉이 필요하다는 심정으로 외람되게도 환자 분들께 간곡한 부탁을 드린다고 이해해 주셨으면 저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1. 의학적 지식으로 의사를 제압하려 하지 마십시오.
― 내가 병에 대해서 이 정도 아니까 함부로 병 가지고 사기 치지 말라는 심정에서, 의사를 견제하기 위해 의학용어를 쓴다든가, 이 병은 이렇다면서요? 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송구스런 말씀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제압용으로 동원되는 의학지식은 의사 입장에서 볼 때 어설픈 수준이고 따라서 의사는 그런 환자들에게 경멸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 투병 경험이 있으셔서 정말로 특정한 병에 대해서 의사보다 더 많이 아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환자를 만나게 되면 의사는 초긴장 상태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본인이 그런 경우에 해당하시더라도 의학지식을 자랑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냥 '이 병을 오래 앓아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경험적으로 말하는데..' 이런 정도로만 말씀하셔도 충분합니다. 의사 잔머리 잘 돌아간다니까요.
2. 의사들은 구체적인 표현을 좋아합니다. 가능하다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 언제부터 아프셨지요? "
" 오래전부터요. "
" 며칠 정도지요? "
" 그냥 '오래' 되었어요 "(사실은 사흘 정도가 이분에게는 '오래'의 기준이랍니다...)
이러면 의사들 그냥 맥이 풀려버립니다. 병을 앓은 기간은 급, 만성 질환을 감별하는 포인트인데 그냥 '오래'라고 하면 답이 안나오지요. 물론 아픈데 언제부터인지 몇 번 토했는지 이거 다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 많이 토했어요. "라는 표현과 " 10번 이상 토했어요 "라는 표현의 정보가치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3. 자가 진단은 절대 금물입니다. 병명을 호소하지 마시고 불편한 증상을 호소하십시오.
"간이 안 좋아서 왔어요." " 빈혈이 있어서 왔어요. "
이렇게 예단을 하시게 되면 그 예단에 맞장구 쳐주는 의사는 명의가 되고 그렇지 않은 의사는 돌팔이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의사의 판단에도 환자의 자가 진단은 교란인자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가진단을 하시는 환자분들은 악덕 의료업자(나쁜 의사도 당연히 여기 포함됩니다.)에게 잘 못 걸리면 완전히 '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간이 안 좋다고 믿고 계시는데 간검사 왕창 때리고 간장약 팔아먹기는 정말 누워서 떡먹기 아닐까요?
4. 가급적 안 아픈 척을 하십시오.
― 조금 무리한 부탁인가요? 만약 인내의 한계를 넘는 통증이라면 마음껏 고통을 호소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당연히 그리 하셔야 되구요. 하지만 견딜만 하시면 관운장적인 자세로 증상을 호소하십시오. 그럼 의사가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눌러보면서 진찰을 할 것입니다. 그때 확실하게 문제가 되는 부위에 대해서 분명한 반응과 의사표현을 하시면 됩니다.
―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아프다는 호소는 뒤집어 생각하면 특별히 아픈 곳이 없다는 의미로 의사를 오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5. 다른 병원 검사결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챙겨 두세요.
― 중복검사에 대해 말이 많지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병원을 옮기기로 하셨다면 진료기록을 복사해 달라고 하십시오. 물론 의사에게 짜증나는 요구이지만 환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물론 복사에는 실비차원의 수수료가 듭니다. 그러니 가급적 통짜로 복사하지 마시고 주치의에게 의뢰해서 필요한 항목만 해달라고 하면 알아서 해 줍니다.(항상 나쁜 의사가 없지 않아 이런 일반론이 100% 먹히지 않는다는 한계가...... 죄송합니다. OTL)
6. 장기적으로 약을 드시는 경우라면 자신이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약 이름을 외우시거나 처방전을 가지고 계시길 바랍니다.
― 다른 병으로 처방을 할 때나 약제를 변경할 때 역시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7. 특이체질인 경우 의사에게 먼저 말씀해 주시는 것도 진료실에서 환자가 과시할 수 있는 빼어난 매너가 됩니다.
― 과거에 입원하셨거나 수술할 정도로 큰 병을 앓으셨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8. 다른 병원이나 의사와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의사를 비교하는 표현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지금의 의사를 비난하는 근거라면 의사라는 동물은 '왜 그 병원 가지 여기로 왔니?'라는 삐딱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 병원의사만큼 잘해 줘야겠네.'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절대로 없습니다.
― 칭찬의 근거로 비교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나 자신이 그 환자에게 다른 병원에서 씹힐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이 병원의 어떤 점이 문제이고 어떤 점이 좋다고 말씀하셔도 충분합니다.
9.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계시다면 미리 말씀해 주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환자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내과나 가정의학과에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고혈압이 약을 처방받으러 왔는데 속앓이를 하고 있고 피부에 부스럼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처음부터 고혈압/속앓이/부스럼이라는 의사표현을 하시고서 각론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고혈압약 처방전 드렸는데 나가시다 말고 돌아서서 '그런데 저 속도 안좋거든요. ' 그래서 다시 위장약 처방 드렸는데 대기실에서 수납하다 말고 진료실에 다시 들어오셔서, ' 피부에 부스럼이 났어요. ' 이러시면 의사의 짜증이 문제가 아니라 약제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서 처방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하는 쓸데없는 번거로움이 생깁니다.
10. 무엇보다도 의사에게 신뢰감을 표현하십시오. 환자가 의사를 제압하는 가장 무서운 무기입니다.
이 정도로 성의를 보였음에도 의사가 싸가지 없게 나온다고 느끼신다면 병원을 바로 바꾸십시오.
환자―의사간 소통의 문제에서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질병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차이가 환자와 의사 사이에 너무도 크다는 현실적 장벽에 있습니다. 환자의 병식(insight)은 환자―의사 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의사가 상대하는 환자군에는 학력으로만 따져도 국졸부터 대학원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미지수의 개념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방정식을 가르쳐 줄 수 없듯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수많은 질병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보편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결국 의사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사실 의학을 넘어서는 교습법 내지 수사학적인 지식과 소양을 필요로 합니다. 의사가 싸가지 없어지는 이유 중에 하나가 됩니다. 교습법과 수사학은 앞으로의 의학교육에, 그리고 의사들에게 행해지는 보수교육(사실상 유명무실한 예비군 훈련적인 교육)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의업을 평생 유일무이한 천직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제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싶고, 저의 직업적 행위들이 존경과 인정을 받기를 바라며, 또 경제적 능력이 성공의 척도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에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떤 직업이든 직업인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욕구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제 스스로의 부덕함이, 적지 않은 동료들의 바르지 못한 처신이, 또 그로 인해 야기되었고, 오랜 세월 무관심하게 방치되어 이제는 말기 암종처럼 커져버린 의료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편견과 불신들이 제가 저의 천직에 거는 기대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더욱 슬픈 일은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서프에 올리는 글은 그런 절망이 낳은 넋두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지치지 않았으니 자판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집중호우가 예상되는 주말 연휴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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