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교실에서, 임신한 아내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해보고자 하는 남편들이 10킬로그램짜리 보따리에 어깨끈과 허리띠를 하고 배에 매달아 하루 동안 생활해보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힘들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는 소감을 이야기 하는 남편들을 보며, 아내들은 남편이 임신한 여성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는지 모르지만 그건 아내들의 오해입니다.
그런 체험으로 남편 여러분께서 아내의 어려움을 얼마나 체험하신 셈인지, 지난 번 제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핵심과는 상관없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군대의 예를 든다면, 하루 동안의 병영 체험 정도를 가지고 남자들이 보낸 2년(혹은 3년)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고 인터뷰하는 여성들을 생각해 보시면 될 듯합니다. 물론 남녀 모두에게 있어서 임신이나 병영 생활을 단 하루 동안 극히 일부만이라도 체험해 본 사람과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공감이 커지겠지만 역시 양쪽 모두에 있어서 그 체험은 눈곱 만큼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임신한 여성의 몸은 말 그대로 머리카락 끝에서 손발톱 끝까지 영향을 받습니다. 머리카락이 굵어지고 윤기가 난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출산 후에는 머리카락이 푸석해지고 왕창 빠지게 된다는 대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머리카락 뿐 아니라 온몸에 털이 많아지게 되어 다리털을 밀던 여성의 경우에는 어느 순간부터 그 일을 포기하게 됩니다. 손톱도 임신 중에는 빨리 자라고 윤기 있어 지지만 나중에는 얇아지고 갈라지기 쉽게 됩니다. 피부에는 임신선이 생기고 피부가 갈라지고 트게 되며 얼굴에는 색소 침착이 일어납니다. 고상하게 말하는 이 '색소 침착'이 다시 말하면 '기미' 라는 것입니다.
피가 묽어져서 임신 빈혈이 생기고 HCG 호르몬의 증가로 입덧이 생기며(입덧의 원인은 아직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선 가장 혐의 짙은 용의자가 HCG 입니다), 소화불량이 생기고 온 몸에 부종이 오며 변비가 생기고 심하면 치질이 생깁니다. 또한 가슴이 커지고 임신 초기에는 (어떤 임산부의 말을 빌리면) 남편이 가슴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남편을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통증이 심해집니다(이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단지 통증 뿐 아니라 호르몬의 장난으로 인한 임신부의 정서장애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심장, 신장, 방광, 위, 대장, 심지어는 손발톱까지 모두 '의학적으로 정상적인 인간'의 범위를 벗어나게 됩니다.
정서적으로는 뉴스에서 어떤 아이가 어찌되어 살해되었다는 소식만 들어도 눈물이 주체하지 못할 만큼 예민해 집니다. 실제로 임신기간 중에 고된 출퇴근 버스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민망스러웠다고 하는 여성은 아주 흔할 정도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분유 광고에 나오는 아기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난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모든 변화의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하다가 역시 가장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체중의 변화 및 불러오는 배' 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제일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어나는 체중이나 불러오는 배는 화학적, 생리학적 작용이라기보다는 물리적인 측면이 훨씬 더 많지만 그것은 그냥 '무거워서 힘들다' 라는 단순한 물리적 고통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원래 임신하지 않은 여성의 자궁 크기는 주먹보다도 작습니다. 평상시 자궁의 상태는 두툼한 근육과 그 근육을 온통 감싸고 있는 혈관 덩어리입니다. 주먹보다 작은 이 자궁의 높이는 임신 9개월째에(10개월째에는 태아가 질 쪽으로 하강하면서 오히려 약간 높이가 낮아집니다) 최고를 기록하는데 그 높이가 명치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예, 맞습니다. 명치가 쓰리다고 할 때 그 명치, 때로는 오목가슴이라고도 표현되는 심장 바로 아래 가운데 부분 그 명치, 위가 있는 그 명치 말입니다.
자궁은 배 속에 있기 때문에(정확히 말하면 후복벽입니다만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저렇게 큰 부피의 무언가가 뱃속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다른 장기를 밀어내야만 하게 됩니다. 여자의 뱃속이라고 해서 아이를 가질 때를 대비하여 위나 장이 한 편에 비켜서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닐 테니까요. 다시 말하면 위나 장을 한 편으로 밀어내고 눌러가면서도 모자라서 배를 바깥으로 불룩 나오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또한 자궁은 방광의 뒤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방광도 물리적으로 누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궁이 명치끝까지 치받다 보니 자연히 횡격막도 누르게 되며 똑바로 누우면 자궁 바로 뒤쪽에 위치한 대동맥도 누르게 됩니다.
이 모든 물리적 압박으로 인해 실제로 나타나는 증상들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방광의 자극 증상입니다. 방광은 자궁의 바로 앞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임신 초기부터 증상이 나타납니다. 바로 이 방광 자극 증상 때문에 소변이 자주 마렵고 소변을 참기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초기에는 단지 자극 증상이지만 임신 중기가 넘어가면 자궁이 직접적으로 방광을 압박하기 때문에 소변을 많이 담아둘 수가 없게 됩니다. 임신 중·후기로 접어들면 한밤중에도 소변을 보기 위해 몇 번씩 잠을 깨는 몇 개월을 보내게 되며 밤에 자주 깨는 고통은 그렇다 쳐도 어디 먼 길을 가기가 무서운 지경이 됩니다. 간혹 회사 일에 바쁜 남편이, 명절에 먼 시골을 고속버스에 태워서 만삭의 아내를 혼자라도 효도시키러 보내는 경우를 보는데, 그게 단지 배가 무거워서 고역이 아님을 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임신을 하면 여성은 (물론 호르몬 탓도 크겠지만) 각종 물리적 변화 때문에 자신의 몸이 인간이 아니라 짐승과 같다고 생각되어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그런 느낌에 일조하는 현상 중에 하나가 먹고 싸는 문제입니다. 우선 누구다 아시다시피 임신을 하면 많이 먹습니다. 입덧 기간을 제외하고 임신부는 섭취하는 음식의 양이 대폭 증가하게 되는데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신에 대해 우울해지게 됩니다.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다가 주변을 돌아보니 햄버거 세 개, 밥 두 그릇, 사과 네 개, 떡 한 접시, 500리터짜리 우유 팩 한 개 등등의 파편이 어지럽게 널려 있을 때 내가 짐승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먹고 난 후의 문제는 좀 더 심각해집니다. 장을 꾸역꾸역 밀면서 올라오는 자궁 때문에 위와 장은 눌려있게 마련이고 그 많은 음식까지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면서 고상하지 못한 생리작용들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트림과 방귀입니다. 허겁지겁 눈 뒤집히게 먹고 나서 하루 종일 주체할 수 없는 트림과 방귀를 뿜어내며 살다보면 반드시 임신 호르몬의 영향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의 몸에 대해 자괴감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나마 먹은 음식이 잘 나오기나 하면 좋을 것을, 일생 변비 한 번 걸려본 적도 없던 아가씨였다 하더라도 임신 기간에는 그렇게 우아하게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위가 눌리다 보니 음식이 원활하게 십이지장으로 넘어가지 못해 역류성 식도염이 오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트림만 해도 명치끝이 얼얼해지는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한 줄로 요약하면 하루 종일 꺽꺽대고도 위 언저리가 갑갑하고 쓰리며 종일 방귀는 나오는데 변은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치질이 생기기가 쉽습니다. 변비 자체도 그 원인이 되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자궁이 대동맥을 압박하기 때문입니다. 대동맥에서 혈액의 흐름이 정체되다 보니 항문 주변의 혈관에 울혈이 생겨서 항문 밖으로 무언가가 삐져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여성은 샤워할 때 훨씬 커진 젖가슴과 어디까지 부풀어 오를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엉덩이와 배에 더하여 일생 상상도 해본 적 없는 항문 부근의 너무나 수치스러운 이물질까지 느낄 수 있게 되고 거울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는 지경에 다다릅니다.
임신 말기가 가까워지면 이미 똑바로 누워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똑바로 누우면 숨이 가빠지는데 그것은 자궁이 대동맥을 압박하기 때문이며 자궁이 횡격막을 치받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옆으로 누우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가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배가 침대 쪽으로 쏠리면서 반대쪽 옆구리에 엄청난 결림이 오기 때문에 배 밑에 무언가를 받쳐 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아주 막달이 되기 전, 즉 임신 7~8개월 무렵까지는 가장 잘 맞는 높이가 남편의 손바닥입니다. 많이 번거롭지 않으시다면 이 시기에는 옆으로 돌아누운(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세입니다) 아내의 배 밑으로 남편의 손을 받쳐주시면 아내에게는 아주 큰 배려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시기가 지나면 수건 혹은 적당한 납작함을 지닌 쿠션을 수배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임신 전 기간을 통해 대개 평균적으로 모체의 체중은 13~15Kg가량 증가합니다. 이 중에 태아와 자궁 자체와 양수가 차지하는 무게는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커진 젖가슴과 늘어난 피하지방, 저류된 수분 등의 형태로 여성의 몸 전반에 퍼지게 됩니다.
저류된 수분 때문에 임신한 여성의 손과 발은 쉽게 붓게 됩니다. 이렇게 저류된 조직 사이의 수분에 모세혈관이나 말초신경이 눌리기 때문에 손과 발의 저린 증상이 자주 나타나게 됩니다. 더 심한 증상은 밤에 나타나게 되는데, 낮 동안에 오래 서 있으면(앉아있어도 그렇지만) 중력의 영향으로 다리에 더 많은 수분이 모이게 되고 그렇게 힘든 하루 일과를 보내고 저녁에 누워서 자다보면 대동맥의 압박과 더불어 세포 사이에 몰려있는 수분들 때문에 혈관과 신경이 눌려서 다리에 쥐가 나게 됩니다. 그러니 쥐가 나는 것은 단지 임신 막달이 다가와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여성의 조직 사이에 수분 저류는 임신 초기부터 꾸준히 일어나니까 말이죠.
문제는 이 지경쯤 되면 여자는 서서 자기 발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허리를 굽혀서 자기 다리를 자기가 주무르는 것이 무척 힘든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많이 번거롭지 않으시다면 남편들께서 저녁때 아내의 발을 높게 고여 주시고 다리를 주물러 주시고 따뜻한 찜질을 좀 해 주신다면 한밤중에 아내나 남편이나 고생을 좀 덜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흔한 물리적 영향은 허리와 등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배의 무게 때문에 요추는 앞으로 쏠리게 되고 균형을 유지하려다 보니 등(흉추)은 뒤로 쭉 빼는 자세가 되게 마련이기 때문에 허리 뿐 아니라 등까지 아프게 됩니다. 커진 가슴을 지탱하느라 어깨와 등에 무리가 가는 것도 한몫을 합니다.
출산일이 가까워 오면 여성의 골반은 출산을 위한 준비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여성들은 흔히 고관절이나 허리 부근이 덜걱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그렇게 느끼는 것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몸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골반이 벌어지면서 고관절이 벌어지고 무릎을 스치면서 걷는 것이 불가능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여성들은 넘어지기 쉽습니다. 사무실에 만삭에 가까운 여직원이 있으면 바닥의 물기가 없도록 더욱 배려를 해 주셔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미끄럼 방지 신발로는 이 상태가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집에서 혹시 아내를 도와 걸레질을 해 주시게 될 때에도 바닥의 물기에 많이 신경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물리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아직 빼놓은 게 있는 것 같기만 한데 더는 생각이 잘 안 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나올 이야기들은 화학적·생리학적 영향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될 것입니다. 다음 번 이야기가 임신 빈혈 편이 될지 입덧 편이 될지 아직 결정은 못한 상태입니다. 지난 번 번외편에서 설명 드렸듯이 이변이 없는 한 매주 화요일마다 글을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정도 이야기는 남자들도 다 아는 거라서 실망스럽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남자들의 경우에는 (애기 아빠들조차도) 자궁이 명치끝까지 올라간다고 하면 일단 그 사실에 놀라긴 하면서도 그 위랑 장이 어떻게 될 지에는 생각이 못 미쳐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오히려 제가 놀라워하곤 했었습니다. 사람마다 수준이 다양하니 오늘 이야기가 시시하셨던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난이도를 계속 유지하게 될 듯합니다.
p. s
1. 같은 글을 보고도 해석이 나름인걸 보면 제가 글을 잘못 쓴 탓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여자도 군대에 가야 평등하게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쪽인데 어떤 분들은 제가 그런 쪽인 것으로 해석하신 분도 있더군요.
2. 번외편으로 올린 글에 몇몇 댓글들을 보면서, 혹시나 제가 이 시리즈 연재에 지쳐 그만둘 핑계를 찾고 싶어지면 의무병 제도에 대한 제 생각을 적나라하게 쓰면 되겠다는 사악한 생각까지 들었었습니다.
3. 여자가 이렇게 고생한다는 글을 쓰는 의도가 뭐냐, 남자는 더 고생한다는 식의 의견이 있으신 분은 댓글 말고 새로운 글로 올려주시면 읽고 인식하고 느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전에 올렸던 서문에도 적었듯이 여성이 겪는 일들에 대해 알리는 일이 남자를 공격하는 일은 아닐진대,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