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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부한 자를 위해 있었다.


BY 자매(펌) 2006-11-11

글쓴이: SHINER 가난한 자는 부한 자를 위해 있었다.


그의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나오미가 있었던 것은 다윗을 위함이다. 다윗이 나기 위해 나오미가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태어나기 위해 많은 세대가 흘러갔다. 다윗은 그리스도가 나시기 위해 있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그리스도를 위해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조상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근본이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뿌리이다. 다윗의 뿌리에서 그리스도가 나셨다. 그러므로 사실은 다윗이 다윗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다윗이며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인 것이다. 성경에 부자만 등장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도 등장한다. 아브라함과 같은 부를 누리고 높은 지위를 가진자들도 있지만 거지 나사로와 같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한 자도 있다. 성경은 아브라함과 같이 부자 되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며 사람이 원하는 복 받는 비결을 논하는 책도 아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믿으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모두 잘 된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다. 성경은 인생을 잘 사는 비결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인간관계를 말하는 책도 아니다. 다만 한 분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계시한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있는 말씀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고 있는 기록이라는 말이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부터 거지 나사로까지라도 다 그리스도를 위해 있는 것이다. 성경이 천국과 지옥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천국에 가고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영접할 것이고 그리스도가 그들의 생명의 주이시며 구주가 되신다고 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위를 요구하는 말씀이 아니라 그 사람이라면 그를 믿고 영접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 사람이라야 그렇다는 말이다. 그 사람이 복되다 하는 말씀이다. 그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말씀이다. 내가 이렇고 저렇기 때문에 그가 나를 구원하시고 살리신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나를 말하고 너를 말하는 책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고 어떻게 하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려 는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구덩이에 빠진 인생이 구원을 얻어서 천국에 간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다.

구원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구원되시기 위해 준비된 사람은 복있는 자이다.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준비된 제물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사람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양식이 되고 제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처소가 되는 것이 사람의 구원이다. 구원이란 하나님이 친히 그분 자신을 위해준비하신 사람을 건져 내시는 것이다. 그분의 선택을 받아 그분의 나라와 백성으로 건지심을 입은 자들은 복된 자이다. 사람이 지어진 목적은 하나님이 당신의 거하실 처소로 지으셨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씨를 뿌려 백배의 소출을 거둘 밭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이시다. 하나님이 당신의 씨를 뿌려서 소출을 거두시려는 목적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정점에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의 밭이 될 사람이 살 수 있는 만유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사람을 위하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뿌려야 할 밭에 다른 씨가 뿌려졌다는 것이 바로아담의 타락이었던 것이다. 아담이 다른 주인을 모시고 다른 씨를 받아서 번성한 것이 바로 세상이다. 그 세상 또한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실 일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이는 다 하나님 자신이 온전히 드러나시기 위함이다. 타락된 아담과 함께 저주받은 만유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목적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잃어버린 밭을 다시 원래대로 회복하시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상실 되었으나 하나님이 친히 그의 목적에서 빗나간 그의 지으신 것들을 다시 회복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아들 그리스도가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오셨다. 성경은 그 일을 그분이 친히 하시고 계시다고 기록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밭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존재가치가 없다. 하나님의 씨가 뿌려지지 못하는 밭은 저주받은 땅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다. 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일 때만이 그 가치가 있다.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이 되지 못하는 인생으로서의 가치는 제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지지 못하는 밭이라면 이미 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서 존재 가치 제로이다. 그는 살아있으나 죽은 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목적에서 빗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에서 빗나간 인생은 더 이상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다. 하나님은 그들을 상관치 아니하시고 내어버려두셨다. 그들이 육에 속한 자들이며 그들의 상태가 바로 낙원을 잃어버린 상태이며 그 상태가 바로 지옥인 것이다.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과 뜻에서 빗나간 자의 상태가 바로 지옥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는 육이 된 상태의 인간이 지옥이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가고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으로 지어져 간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루어져 가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이다. 천국에 가는 것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고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안에서 건축이 되어가고 몸으로 구성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됨은 하나님의집이 되어간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그의 전으로 건축하심에 쓰이는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의 집으로 구성될 재료로 부름이 되었다고 하는 것만큼 복된 것은 없다.

하나님이 더 이상 그와 함께 거하실 수 없다면 그는 성전이 아니며 거룩한 몸이 아니며 거룩한 나라도 아니며 거룩한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 성전인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신 나라이다. 하늘나라는 어느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신 나라이다. 하나님은 오직 그분 자신을 주인으로 여기는 자 안에서 왕노릇하시고 그를 성전삼고 계시며 그 안이 천국이다. 그분을 주인으로 모신 그 나라가 천국이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못하리니 너희 안에 있느니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거기 그들과 함께 있느니라."

아브라함이 딛는 곳마다 복된 땅이었다. 아브라함이 바라보는 땅이 복된 땅이었다. 복된 땅은 바로 주님이 계신 곳이며 복된 자는 주님과 동행하는 자이다. 주님을 모신 땅이 복된 땅이다. 주님이 거하시는 땅이 복된 땅이다. 주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이 복된 땅이다. 가나안 땅은 복된 땅이다. 하나님이 거기 거하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복된 자인 것은 하나님이 그의 주인이시며 그와 함께 거하시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진들은 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복인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복이 아니다. 주님이 거기서 떠나시면 저주 받은 땅이다. 복의 기준이 주님이시다. 복의 근원이 주님이시다. 복된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복되신 주님이 계신다. 주님이 복된 자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며 의로운 자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시는 자가 의로운 자이며 복된 자이다. 주님이 죄인과 함께 하시면 그 죄인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인 것이다. 주께로부터 난 자가 복된 자인 것이다. 주님을 모시기로 준비된 자, 주의 씨가 뿌려지기로 예비된 자가 주님의 신부이며 주님의 밭이다. 주님이 거기 거하시기 위해 친히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집이 거룩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