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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털기


BY 뭉크 2006-11-22

시댁에서 콩을 턴다고 했다.

70대 후반의 아버님과 70대 중반의 어머님이 일을 하신다.

며느리는 둘인데 형님은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처지다.

 

난 이것저것 시장을 봐서 일찍 시댁엘 갔다.

시댁에 가니 벌써 밭에다 푸장을 펴 놓고 어머님은 도리깨질, 아버님은 몸이 불편한 관계로 콩만 줍고 계셨다.

두분은 나를 보시자 넘 반가와하시면서....

아버밈왈 --- 큰 일꾼이 오는구나~~

어머님 왈 --- 이제 한시름 덜었다.

 

밭고랑 사이로 길게 늘어져 있는 콩단을 3~4단씩 얇게 편 다음 도래깨로 탁탁 두드렸더니 콩아 탁탁 튀어나오고 이내 콩깍지들은 속을 보이며 뒤집어졌다.

그렇게 앞으로 한 번 뒤로 한 번 또 반으로 겹쳐서 한 번 알뜰하게 털고나니 힘이 쭉 빠졌다.

 

하지만 힘들다는 표현도 못하겠고 시엄니가 대신하겠다는걸 괜찮다며 콩단이 다 없어질 때 까지 두들기다보니 나중에는 너무 힘들고 목도 마르고 죽을 힘을 다하다보니 요실금증세까지 보였다.

태어나서 이런 경험은 첨이었다.

마지막 까지 푸대에 턴 콩을 다 담고나니 아침에  저녁6시가 넘어 있었다.

시 어른들은 연신 고맙다고 몇 번을 인사를 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노인들은 얼마나 힌들까?

내년부터는 농사짓지 말라고 했다.

빈 땅을 놀리수는 없으니까 아마도 또 지으실꺼다.

 

돌아오는 길에 온천에 들러 뜨거운 물에 몸을 풀고 때밀이 아줌마한테 때 밀고 몸 안마 받으니 좀 살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남편에게 안마기로 전신 안마를 받았다.(남편은 직장관계로 금욜날 내려와서 일욜날 올라간다.)

그래도 담날 일어나니 뼈마디마디 삭신이 쑤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또 가족들은 등산을 댕겨왔다.

 

콩깍지에 씌어서 시골로 시집가서 평생 콩깍지 벗기면서 살고 있다.

 

나도 한 때는 서울에서 좋은 학교나와 대기업에 시험붙어서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시엄니는 시골분이라 여자가 직장다니면 되바라져서 남자 우습게 알고 살림이나 잘 하라카면서 .....그땐 새댁이라 고분고분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아주 팔자세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글은 빙산의 일각일 뿐 나의 인생은 정말 살아온 삶이 다양한 경험으로 환상적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