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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사랑의열매


BY kskckcdj 2006-12-10

23살 어린나이에 시집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일때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과 고마움이 얼마나 큰지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싶네요 앞뒤 재지않고 그저 남편이 좋아 한달반만의 연애끝에 어머니 아버지의 허락하에 우리집에서 동거를시작했지요 시골생활에 힘들어할 저를 베려하고 걱정하느라 친정집에서 같이살다가 들어오고싶어지면 들어오라고.. 니들편한대로 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때까지만해도 전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시댁식구들 전부가 저에 가족이 되었다는생각보단 단순히 우리신랑만이 우리가족이 되었단생각을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께 제대로 전화한통 드린적없고 찾아뵙기엔 더더욱 어려운일이 되어버렸지요.. 그렇게 한달의 시간이 흘렀을쯤.. 전 아이엄마가될준비를했었습니다 엄마가된다는걸 생각한적없어선지 황당하기도하고 무섭기도했었지요 그런 저에게..어머니는 어느날 전화한통을주셨습니다 신랑몰래 잠시 나오라는 전화였지요.. 왜 나오라고하지..귀찮은데..하는맘에 투덜대며 어머니와의 약속장소로 향했는데 어머니는 막노동차림 그대로 절 맞이하셨지요 그러면서 제 두손에 10만원을 쥐어주시며 여자는 아이를 갖고나면 먹고싶은것도많고 생각나는것도많으니 얼마되지않는돈이니 신랑한텐 말하지말고 너 먹고싶을때 사먹어라..하시면서 황급히 자리를 떠나셨지요 그때 참 많은걸 깨닳았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베려를..결혼안한 절 며느리로 받아주신다는것들을요 그래서 생각과 고민끝에 5개월만에 시골인시댁에 들어갔었죠 차한번 타러면 20분씩을 기다려야했고 슈퍼에한번 가려면 걸어서 30분은 걸어야했죠 그리고 눈앞엔 전부 논밭뿐.. 이렇게 시골생활은 제가 생각했던 편안함과 여유와는 너무다른모습에 많이 울쩍했습니다 넉넉하지않은생활에 솔직히 실망도했구여 그렇지만 그런게 사는것에 전부는 아닌것같았습니다 제가 알지못했던 정이 느껴졌으니까여.. 부모님이 이혼을해 가족의 따뜻함을 느껴볼수없었던저에게 어머니는 사랑을주셨습니다 매일아침 힘든 막노동일을 다니시면서도 아이갖은 제가 어머니보다 더 힘들다면 새벽5시에 일어나 아침식사준비를하고 출근을하시고 행여 제가 불편할까 항상 노심초사하셨지요 그리고 남편과 심하게 다툴때면.. 멀리서 가만히 계시다 하루가 지난날 우리둘이 불러 우리신랑에게 나무라셨지요 "새아가가 누굴믿고 여기 시골까지들어왔는데 넌 그런것도 모르고..쯧쯧.."하시며 언제나 제 역성을 들어주시며 시골생활이 힘들지? 하며 토닥여주셨지요 그땐 왜이리 눈물이 나던지.... 그렇게 한달 두달이 흘러 아이를 출산하게되었지요 혼자사시는 엄마가 일을다니시기에 산후조리를할시간이 없는 엄마를 대신해 어머니는 너는 내집사람이니 내가해주마..걱정마라~하셨지요 그땐 솔직히..고마운마음도있고 친정엄마에게 서운함도들고 만감이 교차하더라구여.. 그런 저에 마음을 아시는지 어머니는 잔잔히 제게 위로의 말씀을 건내셨지요 친정엄마건..시엄마건..다 엄마다..라면서요 눈물이 글썽였어요 어머니가 절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계시는줄은 몰랐거든여.. 그런 어머니는 정말 친정엄마 못지않게 산후조리를 해주셨지요 아이의 목욕을위해 부엌에서 우리방(따로 떨어져있음)까지 무거운물을 나르시고 아이를 씻기시고 한보따리나온 우리아이의옷가지와 제 속옷까지 그렇게 4주를 손수빠셨지요 그러면서 산모에게좋다는 가물치며 소족이며 호박짠거까지 모조리 챙겨주셨지요 시골에서 아니 넉넉하지않은 우리시댁에서 이런걸 먹기란 쉽지않은일인데 어머니는 며느리하나때문에 이 모든걸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이가 백일이될동안 저와 함께 주무시면서 그맘때는 잠이 많이올때라며 푹자라고...하시면서 밤낮이바뀐아이를 하루종일 안고 돌아다녔던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그마음은 변함없어 막노동의 힘들게 번돈이 생길때면 아이의 장난감을 사주라며 아이의 과자를 사주라며 차안으로 돈을 던지듯 넣어주시고 사라지는 어머니의 모습에 죄송할뿐이네요 남들은 용돈도 넉넉히 드리고 맛난것도 많이 사드린다는데 그러지못해 죄송하네요 그래도 어머니의 사랑만은 알기에 살면서 조금이라도 갚을게요 자식이 부모님의 사랑을 갚는다는건 불가능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다하겠습니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