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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내 남편), 이야기 둘(엄마 남편) / 내용수정


BY qhrtnddk 2007-04-06

<이야기 하나 - 내 남편> "...건강검진 방금 끝내고 지금 사무실로 들어갈 거야. 여보, 사랑해..." "컥, 사랑? 이거 무슨 자다가 책상다리 긁는??.. 어디 안 좋은데 있대??" "그런 건 아니고... 며칠 뒤에 결과가 나온다는데, 검사하는 내내 술담배 끊게 하고 내 건강에 신경 써준 당신한테 고맙다는 생각이... 내시경 검사할 때 나쁜 결과 나올까봐 조마조마하고 걱정됐었어.... " 시동생 결혼 문제로 밤새 티격태격 하다가 직장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 차, 병원으로 향했던 남편 목소리가 심상찮게 들려 깜짝 놀랐네요. 아니, 목소리라기보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사랑해'라는 말이 왜 그렇게 생소하던지요. 마치 무인도에서 한 달 만에 사람구경한 것처럼, 첫눈에 반해 만난 지 4개월째 되던 날 결혼했던 저희 부부...하지만 시동생들을 데리고 사느라 달콤한 신혼도 없었던 결혼생활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아 달콤한 표현보다는 쌉싸름한 표현이 많았었다는 게 이런데서 표시가 나더라구요. 저는 결혼 16년 차입니다. 같이 살아온 날보다 같이 살아가야할 날이 더 많은 듯한데 돌이켜보니 남 앞에 드러내기 부끄러울 정도로 파란만장... 빨간만장하네요.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 차갑게 다투었던 기억, 따뜻한 추억, 미적지근했던 날들... 뜨거웠던 날은 하늘을 찌르게 기 살려줬던 것 같고, 차거웠던 날은 길바닥에 붙은 껌처럼 자존심을 무신경하게 짓밟았던 것 같아요. 16년 정도라도 같이 살아보니 남편이든 가족이든 소중한 사람들의 기를 제대로 살리려면 평소에 무슨 일이 있어도 기를 꺽거나 죽여 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사랑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지 않고,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사랑해"라는 말이 낯간지러워 못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야 기 살리는 칭찬의 말도 제대로 약발 받을 것이고요. 밟히고 꺾인 식물에 물주고 지줏대로 받쳐줘 봐야 처음 같은 생생함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이 4월 6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네요. 위에 적은 통화내용은 오래전 일도 아니고 바로 오늘 같은 어제.. 4월 5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더라구요. '정말 좋아해서 결혼했던 우리 부부...뭐 이런 관계가 되어버렸나 ...'싶어서요. <이야기 둘 - 엄마 남편> 바로 그때, 따르르릉 ~~~ 또 전화벨이 울립니다. " 쌀, 아직 남았나?... 다 먹었으면 얘기해라" 뭐 이런 식의 핑계를 앞세워 한 달에 한 번 정도 수화기를 드는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네요. "...김서방한테 잘해줘. 하늘같은 남편인데 얼라(어린아이) 보다 더 잘해줘야 돼" ㅎㅎㅎ 쿵하면 울밑에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고 하지요? 액면 그대로 50% 받아들이고, 나머지 50%는 눈치로 알아들었습니다. "엄마가 아버지를 얼라 같이 안 대해주시나 봐요? ㅎㅎㅎ" "뭐? 하하하~~~ 그래... ;;;" 어릴 적에는 정말 하늘같아 보였던 아버지신데... 8순을 바라보는 아버지 마음 한자락에도 여태 덜 자란 얼라~~가 따뜻한 관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야기 접기> 전화 끊고 나니 또 울컥해지더라구요. '그래... 내 남편도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이런 마음이겠구나. 위안 받고 싶고, 기대고 싶고...' 제가 외출한 어느 날, 8순을 바라보는 남편이 결혼한 두 딸집에 번갈아가며 다이얼을 돌려 사위한테 잘 해주라는 말로 허전함을 달랠 남편의 모습이 바로 그려지네요. ㅎㅎ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고,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날 ,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대오는 남편을 든든하면서도 따뜻하게 떠받쳐 줘야할 사람이 바로 나!구나...'싶습니다. 그런 제가 좋은 점만 보려고 애쓰고, 자주 격려하고, 칭찬하고, 인정해 주면 남!편!은! 돌!고!래!가 되겠지요? 다른 분들 글 읽으면서 참 알콩달콩 예쁘게 사시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좋은 표현 많이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 아깝기도 하고,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한편으론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살아가야할 날도 쇠털같이 많잖아요. ^^ 겉으로는 든든해 보일지라도 '남편 안에 얼라~~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더 자주, 더 많이 북돋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