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답하다. 그러나 최선은 정부에 대한 절대적 신뢰이다
약도 없고 아프다고... 살려달라는 처절한 피랍자의 인터뷰를 방금 읽었다. 우선 가슴이 아프고 너무나도 안타깝다. (정보 흐리기, 선전전, 피랍자 사살 그리고 육성공개 등으로 압력을 높여가는 탈레반의 전술을 보면 불행하게도 프로적인 더러운 상대를 만난 듯하다.)
다시 한 번... 알고야 그랬겠냐만은...무엇보다 카불행 고속도로도 놔두고 (봉사와 선교와는 관계없을) 위험천만한 변두리 행선지를 택해 피랍지로 들어간 무모함을 생각하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살려야 하는데...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족들의 아픔은 얼마나 클 것이며 동분서주 뛰고 있지만 탈리반이 요구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정부는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어찌 되었던 꼭~ 살아서들 보자! 내 긴히 따질 것도 있고...)
이런 비극을 맞으며 같은 시간 비슷한 상황에서 국민이 피랍되고 우리와 같이 이미 한 명의 생명을 잃은 독일의 언론과 정계의 반응을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아프간 현지에 상황과 협상에 대한 정부의 전적인 함구에도 자숙하며 총리와 외무부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며 힘을 모으고 이성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독일을 보면 역시 선진국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위기에 강한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게 된다. (독일 정부는 협상에 대한 내역과 상황을 피랍자 안전을 위해 일체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안전과 신변보호를 위해 피랍자 이름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야당도 사회단체도 언론도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대해서는 큰 실책이 없는 한 일단 동의하고 믿으면서 힘을 실어 준다. 그래야 정부의 협상력이 강해진다는 합리적인 판단 때문이다. (물론 일단 사람이 구출되거나 상황이 종료되면 그간에 협상진행에 대한 허심탄회한 분석, 논의를 서슴지 않는다)
독일은 대담하게도 오늘 다시 아프간 주둔군의 '맨데이트' 즉 임무수행을 연장했다. 일부 좌파 야당의 비판은 있었으나 국민적 공감대는 피랍과 주둔을 직접적으로 연계시키기보다는 독일의 국제사회의 책임이라는 부분에 맞춰져 있다.
어제 사망이 확인된 피랍자는 9살짜리 아이와 부인을 남겨두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사생활 보호를 위해(억지로 인터뷰를 자청하지 않는다면) 언론에 우리처럼 사망자 가족이 공개되는 일은 거의 없다. 자숙하며 보이지 않는 위로를 보내는 것이 전부이다.
24시간 라이브로 피랍 가족들에 카메라를 마구 들이대며 심지어 고인의 가족들까지 선정적 뉴스의 특종감으로 생각하는 언론들의 모습이 참으로 낯설게 느껴진다.
더욱 황당한 것은 모두들 힘과 지혜를 모아 헤쳐나가야 할 이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도 당리당략에 치우쳐 얼토당토않은 비난을 정부에 퍼붓는 일부 무뇌 언론들과 '대통령이 책임지고 가서 구출해 오라며' 정신 나간 악담을 해대는 어느 정당 최고의원의 말을 듣고 있으니 처참함마저 느껴진다. (생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대선준비를 위한 계산만을 하고 있는 그래서 피랍자들이 죽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그들의 태도는 비정함을 넘어 패륜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급했듯 피랍자들이 요구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정부가 단시간에 명쾌한 성과를 가져올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 정부가 무능해서 미국이 이번 사건에 주도적 구실을 하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다는 언론의 억지를 들으면 과연 이들의 정세판단 수준이 얼마나 천박한가를 다시 느끼게 한다.
한국 정부가 말했듯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미국은 지금 단계의 '필요한 협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구출을 위한 군사 작전이라면 모를까 협상의 단계에서 미국이 할 수 있는 전략 선택의 폭은 지극히 협소하다. 지난 이태리 피랍 건에서도 보였듯 미국의 선택은 자국민의 죽음을 여러 번 감수한 데서도 드러나듯 미국은 '협상 불가'의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협상단계에서는 탈리반의 주적이며 공격의 대상인 미국을 끌어들여 그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미국이 우리말을 듣는다고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한국민은 그들의 '봉'이 되는 것이고 이는 협상요구의 수위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가능한 한 '탈리반의 직접적 적이 아닌' 한국 정부가 전면에 나서 아프간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실세인 미국이 아프간 정부에 포로를 내주라면 된다고 하지만 현 대통령 '카르자이'의 국민신뢰도는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으로 땅에 떨어져 있다. 지난번 이태리 피랍자 교환으로 서방국의 입김에 놀아난다며 위태로운 아프간 정부의 입지는 더욱 악화 되었다.
결국 한국은 최악의 상황에서 협상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아프간 정부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도 미국을 배제하고 탈리반을 만족시켜야 하는...(현재 일부 지역 탈리반의 납치로 시작된 피랍이 중앙 탈리반 세력의 가담과 알카이다의 가담으로 번지고 있는 어려운 상황)
(백종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아프간에 파견했다. 27일 오전중으로 현지에 도착할 것 같다. 백실장의 파견은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고 한·아프간 정상간 협의 내용도 잘 알고 있으며, 아프간 정부와 포괄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앞서 노대통령은 26일 새벽 아프간 카르자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피랍자들의 안전과 석방을 위해 최대한 협력하기로 했다. 백특사는 양국 대통령의 전화 협의를 토대로 피랍자들의 안전과 신속한 석방을 위한 양국 간 구체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고 한다. 뭔가 특단의 패키지를 가지고간 분위기다. 좋은소식 기대해 보자)
모르면 입을 다물고 상황 파악이 안 되면 믿고 기다리든지... 무뇌적 발상에서 나온 즉흥적 훈수질이나 불평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 탈리반과 맞짱을 뜨고 있는 정부에 대한 절대적 신뢰이며 이를 통해 힘을 실어주고 협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강경책이든 유화책이든 최선이라고 전적으로 믿으며...
이런 성숙한 언론, 정치계 그리고 국민만이 국제사회에 권위 있는 정부를 가질 수 있으며 그런 정부로부터 보호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