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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그녀, 집단 강간범들에게 ‘아름다운 복수’


BY 여성이여 2007-08-03

[한겨레]
시골마을에서 글도 모르는, 가난한 농부의 딸은 집단강간의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그에 맞선 재판에서 이긴 돈으로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여성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슬람의 딸은 말한다.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 올해는 파키스탄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다. 1947년 8월14일 이슬람이라는 정체성 위에 나라를 세운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국경분쟁, 파키스탄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는 방글라데시의 독립전쟁, 계속되는 쿠데타, 그리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을 겪으면서 어려운 60년을 지내왔다. 무굴 제국의 찬란한 유적을 자랑하는 이 나라는 ‘순수의 땅’이라는 파키스탄의 의미처럼 이슬람 정체성의 나름대로의 순수성을 유지하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가장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순수성’일 것이다. 순수를 추구하는 이슬람의 이상과 권력투쟁으로 가득했던 파키스탄의 현대 종교 정치사는 이 나라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들의 뿌리를 보여준다. 내가 머물렀던 5월의 파키스탄은 자살폭탄 자동차 폭발, 대법원장 이프티카르 무함마드 차우드리 복권을 위한 끊임없는 폭력적인 시위들, 근본주의 무슬림 신학생들에 의한 ‘랄 마스지드’(붉은 사원) 점거농성, 국경 지역에서 점점 세력을 확장해 가는 탈레반의 존재 등으로 문자 그대로 불타고 있었다. 이슬람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호텔 밖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하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은 것은 파키스탄이 처음이었다. 거리에는 총을 든 많은 군인들이 있었고, 모든 호텔은 무장한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한 중산층 여성의 집에서도 무장한 경비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1999년에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은 미국의 비호와 막대한 원조(이스라엘, 이집트 다음으로 큰 액수라 한다)를 받으면서 “계몽되고 온건한 이슬람”이란 가치 아래 탈레반과 무슬림 극단주의와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의 군사독재와, 세속주의처럼 보이는 정책들은 민주화를 추구하는 세력들과 보수적인 무슬림 극단주의자 양 진영에서 공격받고 있다. 내가 인터뷰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무샤라프 대통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대통령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대통령 자리를 물러나는 그날로 암살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정치 상황 속에서 파키스탄 정부가 탈레반을 묵인하거나 그들과 협조하고 있다고 서방세계로부터 비난받는 이유는 식민주의 몰락과 근대국가 건설에서 임의대로 결정된 ‘국경’이라는 선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이 결정되었을 때 그 선은 ‘파슈툰’이라는 부족공동체의 가운데를 가르며 지나갔다. 그들이 아프가니스탄 쪽에서 주로 탈레반을 형성하는데, 이 탈레반의 형제자매, 일가친척들이 파키스탄 쪽에 대량 거주하고 있으니 ‘가족보호’ 차원에서 탈레반을 봐주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 큰아들은 북한 군대에서, 작은아들은 남한 군대에서 싸우던 한국 어머니의 마음이 떠올랐다. 피는 이데올로기보다 더 진한 것이니 탈레반이든 이슬람 극단주의자든 가족이 찾아왔을 때 숨겨 주고 보호하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렇게 사방이 불타고 있는데 집단강간의 아픔을 딛고 재판에서 이긴 돈으로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세계적으로 여성들의 영웅이 되고 있는 무크타르 마이를 찾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무크타르 마이와 그 주변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이 집단강간을 한 부족으로부터 계속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파키스탄 정부에서 붙여 준 완전무장한 경호원 다섯명과 함께 무크타르 마이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No Fear”(두려움은 없다)라고 쓰여진 검정 제복을 입은 경호원들. 겉으론 무섭게 보여도 대화를 나눠보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젊은이들이다. 무크타르 마이가 살고 있는 지역은 물탄이라는 파키스탄 남쪽 도시에서도 세 시간을 차로 달려야 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의 보수적인 촌 마을이었다. 이런 곳에서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가난한 농부의 딸이 세력 있는 부족의 아들들인 강간범들과 싸워 10명이나 되는 남자들을 감옥에 넣고, 싸워서 이긴 보상금으로 이 지역 역사상 처음으로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의 힘의 근거는 무엇일까?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비극을 딛고 다가올 세대의 여성들에게 다른 미래를 준비해 주는 그의 비전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무크타르 마이는 13살 된 남동생이 높은 카스트의 21살 된 처녀와 대화를 나눠 그녀와 그녀 가족의 ‘명예’(honor)를 더럽힌 것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 종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그 처녀가 속한 힘있는 부족의 남자들 네 명에 의해 온 마을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단강간을 당했다. 찢긴 몸과 마음으로 자살하고 싶었으나 너무도 억울하고 분해서 죽을 수 없었다 한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일단 싸워보겠다는 마음에 경찰서와 법정에 가서 자신이 겪은 일을 폭로했고 그 마을의 한 이슬람 스승, 미디어, 여성단체, 가족의 응원을 받으면서 결국은 공판에서 이기게 된다. 이 사실은 세계의 다른 나라에도 알려져 미국의 잡지 <글래머>가 주는 올해의 여성상을 탔고 세계의 많은 여성그룹이 그를 지지하게 되었다. 무크타르 마이는 보상금과 상금을 모아 학교를 세웠고, 학교 운영금 마련을 위해 소와 염소를 키우는 농장을 만들었으며, 병원을 세우기 위해 땅을 사서 기초공사를 끝냈다. 지금은 매맞는 여성들을 위한 여성센터를 준비 중이다. 무크타르 마이는 훤칠한 키에 마르고 조용한 여성이었다. 무크타르마이여학교(Mukthar Mai Model girl’s school)의 교장인 그는 폭풍이 휩쓸고 간 잔잔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 있으나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다 버림으로써 오는 평화와 힘이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무엇이 그를 살아남게 했냐고 물으니 이슬람 알라와 코란에서 받은 신앙의 힘이라고 한다. 그는 이슬람의 신은 정의의 신임을 코란에서 배웠고 신이 절대로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믿어준 가족, 특히 아버지, 이슬람 스승, 여성들의 힘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한번도 맞은 적이 없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고 자라지 않은 이 이슬람의 용감한 딸. 그녀는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코란의 가르침의 의미를 체화하며 자라났다. 맞은 적이 없는 딸의 힘이다. 100미터쯤 떨어진 강간범 집 앞에 소녀들의 학교를 짓고 750명이 넘는 가난한 소녀들을 무료로 교육시키는 무크타르 마이. 그의 학교 벽에는 “모든 폭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교육합니다.”라는 큰 글자가 쓰여 있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복수였다. 글·사진 현경 교수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 cafe.daum.net/chunghyunk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