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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과 축구는 상극


BY 감자맛 2007-08-20

 

 

마라톤과 축구는 상극봉달이 발은 상처투성이 입니다. 성할 날이 없습니다. 모과처럼 울퉁불퉁한데다 발톱도 군데군데 피멍이 들어 새카맣습니다. 한번 대회에 나가 완주하고 나면 여기 저기 물집이 잡혀 잘 걸을 수도 없습니다. 봉달이는 이런 발로 달리고 또 달렸던 것입니다.“사실 천안농고에 입학했을 때 축구부에 들어가고 싶었시유~. 근데 집안 형편상 헐 수 없이 육상부로 들어갔구만유~. 달리기는 바지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유~.”봉달이는 천안 천성중 2학년 때는 복싱도장에 몇 달 동안 나간 적이 있습니다. 태권도장에도 두어 달 나갔습니다. 레슬링 선수였던 형(이성주)이 집에 역기 같은 것을 들었다 놨다하며 울퉁불퉁 알통 키우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던 것입니다. 몸이 약해 다른 아이들이 깔보지 못하게 하려했던 마음도 있었습니다. 봉달이는 천안농고 육상부에 덜컥 들어갔지만 육상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선배들이 “반바지 하나면 입고 오면 된다”고 해서 가게에서 반바지를 사서 입고 갔는데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테니스 바지를 입고 갔던 것입니다. 손기정 선생도 틈만 나면 달렸습니다. 학교에 오갈 때뿐만 아니라 압록강변의 뚝, 모래 벌 등 아무 곳이건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단벌옷은 늘 땀으로 절어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달리기보다는 공부에 매진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일부러 잘 벗겨지는 여자고무신을 신게 했습니다. 하지만 손기정 선은 여자고무신 위를 새끼줄로 묶어 벗겨지지 않도록 하고 달렸습니다. 새끼줄에 쓸려서 발목에 피가 배어나오는데도 달리기를 그만두려하지 않았습니다. 손기정 선생은 “내가 달리기를 하게 된 것은 돈이 한 푼도 안 들기 때문이었어. 만약 스케이트를 살 수만 있었다면 스케이팅선수가 됐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스케이트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안 드는 달리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봉달이는 공을 잘 찹니다. 천안 성거초등학교 시절 그의 축구 실력은 인근에서 알아줄 정도였습니다. 포지션은 공격수입니다. 발기술이 빼어난데다 스피드도 발군이었습니다. 봉달이는 고등학교를 4년 동안 3군데나 다녔습니다. 천안농고 육상부가 없어지자 가까운 삽교고에 1학년으로 재입학했는데 거기마저 또 해체돼 버렸습니다. 결국 졸업은 광천고에서 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묵묵히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가끔 공이 차고 싶어 발이 근질거렸습니다. 고교시절 대회성적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3학년 때 전국체전 10km에 나가 3위로 간신히 턱걸이를 한 덕분에 간신히 서울시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서울시청 시절 가끔 선수들끼리 편을 갈라 공을 찼는데 그러다가 오른쪽 다리 무릎을 다쳐버렸슈~. 한 3개월 동안 훈련도 못하고, 대회에도 못나가고… 다행히 감독님도 같이 찼기 때문에 혼나지는 않았시유~ㅋㅋㅋ”마라토너의 발은 여자의 피부만큼이나 예민합니다. 아침에 다르고 저녁 때 다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크기가 달라질뿐더러 신발을 신을 때 그 착용감도 수시각각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잘 만든 신발이라도 연습 때 발에 익숙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후 6시에 마라톤 레이스가 시작하면 연습 때도 그 시간에 맞춰 신발을 신고 달려봐야 합니다. 마라톤은 ‘발-발목-정강이-무릎-허벅지-골반’에 계속 충격을 주는 운동입니다. 양발에 27개씩 있는 뼈와 골반~발목에 이르는 5개의 뼈들이 체중의 2~3배나 되는 무게를 이겨 내야합니다. 어릴 때 너무 먼 거리를 달리면 성장판이 다치고 뼈가 비정상적으로 휘거나 부러지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뼈가 굳어야 비로소 할 수 있습니다. 뼈가 굳는 나이는 인종, 남여, 사람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서양 남성들은 보통 19~20세 정도 되면 뼈가 완전히 굳어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 남성들은 이보다 1~2년 늦습니다. 여성은 보통 남성들보다 1~2년 빠르지만 한국여성들이 서양여성들보다 약간 늦게 뼈가 굳습니다.국내 감독들은 남자선수들의 경우 대학 3,4학년 정도 돼야 비로소 풀코스를 처음 뛰게 합니다. 대학 1,2학년 때는 하프(21.0975㎞)코스 정도 뛰다가 기권하는 게 보통입니다. 흔히 국내마라톤대회 TV중계를 보면 분명 초반에 대학선수들이 대거 선두권을 형성해 나갔는데 나중에 골인할 때 보면 그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뼈가 굳지 않아 20~30㎞ 지점에서 기권했기 때문입니다.
봉달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90년 스무 살 때 전국체육대회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뛰어 2위(2시간19분15초)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93년까지 3년 동안 무려 8번이나 풀코스 완주를 했습니다. 1년에 2.67회 꼴로 뛴 셈입니다. 그 때 이봉주는 너무 많이 뛰었습니다. 아직 뼈도 완전히 굳지 않은 나이에 무리를 한 것입니다. 그의 ‘오른발 팔자형 폼’도 어쩌면 그 때 굳어졌는지 모릅니다. 만약 그 기간 동안 이봉주가 1만m나 5000m 등 중장거리에 치중했다면 그는 결코 스피드가 부족한 마라토너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케냐나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대부분 5000m나 1만m 등에 치중하다가 25,6세나 돼야 마라토너로 변신해 꽃을 피우는 것을 눈여겨 봐야합니다. 봉달이의 1만m 최고기록은 29분44초(한국기록 28분30초54·세계기록 26분20초31)이고 5000m 최고기록은 14분20초59(한국기록 13분50초35·세계기록 12분37초35)입니다. 세계최고기록 보유자 폴 터갓(35)의 5000m 최고기록이 12분49초이고 이번 아테네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이탈리아의 발디니도 13분23초나 됩니다. 일본만 해도 육상대회 1만m 경기에서 한국기록 28분30초54를 넘는 선수가 보통 20여명이 넘습니다. 이들이 2,3년 후 마라토너가 되는 것입니다. 1만m 개인최고기록이 27분대인 32세의 다카오카가 마라톤 풀코스 도전 2번 만에 2시간6분16초를 기록한 게 그 좋은 예입니다. 너무 많이 뛰거나 어린 나이에 너무 먼 거리를 달리면 무릎과 발목이 약해집니다. 당연히 스피드가 나지 않습니다. 케냐나 유럽의 유명 선수들이 기껏해야 15회 정도 완주하고 은퇴하는 것도 바로 스피드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제스포츠의학회에서는 아예 나이에 따라 달리는 거리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9세 이하 3km, 9~11세 5km, 12~14세 10km, 15~16세 21.1km, 17세 30km'가 바로 그것입니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려면 18세가 넘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달리는 시간도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18세 이전엔 1회 1시간 30분 이내, 그것도 14세까지는 1주 3회, 15~18세는 1주일에 5회를 넘겨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것조차 사람에 따라, 인종에 따라 다릅니다. 지도자가 각 개인에 따라 거리와 시간을 적절하게 지도해 주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한창 몸이 자랄 땐 뼈의 끝부분에 연골세포로 된 성장판이란 게 있습니다. 성장판은 매우 여리고 약합니다. 마찬가지로 뼈도 부드럽고 약합니다. 이곳에 심한 충격이 가해지면 연골세포가 그만 손상을 입게 되고 뼈에도 금이 가게 돼 피로골절도 발생합니다. 심하면 종아리나 정강이 근육이 기능을 잃는 수도 있습니다.
봉달이는 이젠 공을 찰 수 없습니다. 다치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인환 감독이 ‘축구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오 감독은 “나도 축구를 좋아하지만 마라톤선수와 축구는 상극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거야 막을 수 없겠지요. 봉달이는 2002월드컵 때 강원 태백에서 하루 50km를 달리는 고된 훈련을 하면서도 TV를 통해 한국경기를 빠짐없이 챙겨봤습니다. 성실한 자세가 돋보이는 홍명보 선수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냈습니다. 초반에 탈락했지만 프랑스의 지단도 좋아하는 선수 중 하나입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경기는 기흥 숙소에서 봤습니다.
“이운재 선수를 잴 좋아해유~. 골키퍼는 정말 외로울 거예유~. 앞엔 10명의 동료가 있지만 뒤엔 아무도 없잖아유~.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하는 마라톤 선수나 비슷해유~. 이운재선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아유~.”
말은 그렇게 해도 수원삼성의 이관우 선수(29)와도 친하게 지냅니다. 나이는 봉달이 보다 여덟 살이나 아래지만 친동생 같은 후배입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 열리기 전, 충남 유성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이관우 선수는 대전 시티즌에서 뛰고 있었는데,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뜻이 바로 통했습니다.
이관우 선수는 봉달이 형의 철저한 몸 관리에 혀를 내두릅니다. 자신도 그렇게 오래토록 현역생활을 하고 싶은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봉달이는 이관우 선수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너도 오래 뛸 수 있어. 정신력이 중요해. 한눈팔지 말고 철저하게 몸 관리만 잘하면 넌 할 수 있어”
봉달이는 2007년 4월1일 수원-성남의 경기 땐 큰 아들 우석이를 데리고 직접 경기장을 찾아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1-3으로 수원이 져버렸습니다. 이운재 선수는 나오지 못했고 이관우 선수도 골을 넣지 못해 좀 서운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관우선수가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뛴 것을 알기 때문에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습니다.
봉달이는 경기 내내 발이 근질거려 참느라 아주 혼났습니다. “한 10분만이라도 뛰어 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