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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살기


BY 진실 2008-01-18

나는 최근에 낸 신작시집 '사랑의 슬픔' (해냄 펴냄)에다가 '한국에서 살기' 라는 제목의 시를 수록해 넣은 바 있다. 새해를 맞아 한국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나는 이 시를 독자 여러분 께 우선 소개해 보기로 한다.
한국에서 살기는 너무나 힘들어-뭘 해도 안되고 뭘 안해도 안돼-되는 것 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어-그저 눈치보며 살아야, 기회주의자가 돼야-근근 이 목숨을 보존해-변신을 잘해야, 변절도 잘해야-근근이 버텨갈 수 있어- 너무 앞서가도 안되고 너무 뒤서가도 안 돼-너무 튀어도 안되고 너무 안 튀어도 안 돼-한국에서 살기는 너무나 힘들어

다소 푸념조의 넋두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이 시를 쓰게 된 것은 내 나름의 절실한 경험이 구상의 바탕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중용(中庸)'을 강조한다. 중용의 미덕은 좋은 것이 지만 그것은 자칫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한 기회주의적 눈치보기의 처 세술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다보니 '복지부동'이나 '눈치 빠르게 줄서기', 또는 '눈치 빠르게 사세(事勢) 파악하기'가 생존의 비결처럼 되어 진취적 창의성을 가로막고 있다.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요즈음 많은 한국인들, 특히 제도권지식인들은 지금 대세 돌아가는 것을 눈치보기에 잔머리를 들입다 굴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의 심성을 형성하고 있는 기본 바탕이 '공포' 라고 본다. 그 공포의 대상은 가부장적 권위일수도 있고, 변덕스런 권력과 법 일수도 있고, 종교적 도그마일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누구나 다 전전긍긍 목숨부 지하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목숨' 이란 밥줄인 직장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 명예가 될 수도 있고, 가족이기주의적안락 감(安樂感)이 될 수도 있다.


'토정비결' 을 봐도 걸핏하면 말조심하라는 충고가 많이 나온다. 구설 수(口舌數) 나 관재수(官災數)에 대해 유달리 겁을 먹고 살아가는 게 바로 한국인들이다. 그러다보니 활발한 토론문화도 없고 활발한 의견 개진도 없 다. 특히 도덕적 테러에 대한 공포심이 심해서, 언제나 이중적 도덕주의자 로 행세하며 한평생을 마무리하기 쉽다. 그런데도 술자리에서는 유별나게 음담패설을 좋아하는 게 또 한국인들이다.

'적당히 살아가라' 는 충고가 처세의 만병통치약이 돼버린 한국사회는 이제 곪을대로 곪아터졌다. 개인의 능력이나 창의성보다는 사근사근한 매 너나 아부능력을 중시하다보니 인재(人材)가 적재적소에 배치될 수 없다. 또한 관치(官治)경제와 관치문화가 주도하는 상황하에서는 더이상 국력의 신장이 이루어질 수도 없다.

변절자들이나 변신자들이 '영리한 사람' 으로 치부되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사람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는 언제나 간특 한 사기술과 모략만이 판을 치게 된다. 우리사회는 이런 자들이 만들어놓 은 허울좋은 명분들과 위선적 도덕률들이 국민의 숨통을 죄고 있다.

나쁜 놈들은 벌을 받아야 하고 착한 사람은 상을 받아야 한다. 나쁜 놈 중의 나쁜 놈은 엉거주춤 양다리걸치며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기회주의자 들이요, 착한 사람중의 착한 사람은 정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사 람들이다.

선악의 판단 이전에 '솔직성'에 대한 판단이 한사람의 인격을 저울질하 는 척도가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살아가기는 참으로 힘들다. 좀 더 개성 과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 막연한 공포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마광수교수<자유에의 용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