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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에 대하여


BY 진실 2008-01-18

우정은 애정보다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애정은 언제라도 끊어버리면 그 만이지만, 우정은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절교(絶交)' 라는 말 이 있긴 있다.
하지만 절교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그저 데면데면한 상 태로 연락을 자주 안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애인과 헤어지거나 아내(또 는 남편)와 이혼하는 식으로 싹 갈라서기는 힘들다.

우정은 또한 너무나 포괄적 의미로 쓰여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아주 가까운 친구가 아니더라도 '우정' 이라는 말을 사용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동창이나 대학 동창들과의 관계에서도 '우정'이라는 말이 쓰여지는 게 좋은 예다.일년에 한번 정도 만나는 사이라 하더라도 동 창회 자리에서는 우정을 위장해야 하는데,그것은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다.

또한 두사람 사이의 우정은 각자 어느정도 성취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공허한 관계로 시종하기 쉽다. 학교 동창생의 경우, 재학시절엔 무척 친했다고 해도 한 사람은 잘 되고 한 사람은 못됐 을 때 우정을 지속시키기는 어렵다. 친구사이에도 질투심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피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사성어 가운데는 참된 우정에 관한 것이 많다. '수어지교(水魚之交)' 니, '문경지교(刎頸之交)'니, '관포지교(管鮑之交)'니 하는 말들이 그것이 다. 그중에서도 '문경지교' 는 정말 무시무시한 말이다. 친구를 위해서는 자기 목을 자를 수도 있다는 뜻인데, 과연 그런 우정으로 뭉친사이가 얼마 나 될까.
'관포지교'는 말할 것도 없이 춘추시대때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 의 우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두사람은 나중에 정적(政敵)이 되었지만, 정 쟁(政爭)에서 이긴 포숙아는 진 관중을 살려주고 오히려 자기보다 더 높은 벼슬자리에 앉혔다.
요즘 같아서는 도저히 실현하기 힘든 우정이라 할 만하다. 둘이 다 잘되 거나 힘든 처지에 있을 때는 우정을 지속시키기 쉽지만, 둘 중 하나만 잘 되고 하나는 못 됐을때 우정을 지속시키기는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의 우정은 대개 다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진짜로 의기투합하여 뜻과 행동을같이하는 친구사이의 우정이 요, 둘째는 단지 사교상의 목적으로 만나면서 (이를테면 '술친구'따위) 이 루어지는 우정이다. 그리고 셋째는 사업이나 직업 관계로 만나면서 생기는 우정인데, 직장동료사이나 문단의 교우(交友) 등이 여기에 속한다.

위의 세가지 우정중에서 두번째와 세번째 종류의 우정은 우정이라고 말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종류의 우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살아간다. 먹고 살기 위해서도 그렇고, 심심하고 권태로워서도 그렇다. 하지만 언제 나 뒷맛이 씁쓸할 수 밖에 없다.

첫번째 종류의 우정이라고 해도 그것이 동성연애가 아닌 이상 우리를 궁 극적으로 위무(慰撫)해 주지는 못한다. 둘이서 실컷 대화를 나눈다고 해봤 자 적극적 쾌감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 친구보 다는 배우자를 찾아나서고, 친구와의 만남의 횟수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

애인사이는 자주 만날수록 정이 붙지만, 친구 사이는 뜨악하게 만날수록 정이 붙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의기투합하는 친구사이라 할지 라도 동업을 하거나 동거를 하게 되면 반드시 사단이 생기는 것은, 우정만 가지고는 관능적 고독감을 풀어버릴수 없기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 고흐와 고갱은 죽이 아주 잘맞는 사이였지만, 동거한지 얼마 안돼 심각한 싸움에 휘말렸다. 그래서 두사람은 절교하지 않으면 안되 었고, 고흐는 그 충격 때문에 자기의 귀까지 잘랐다.
사람들은 평생동안 애정과 우정 사이에서 방황한다. 애정에 흠뻑 빠져 있을 때는 친구보기가 귀찮아지고, 애정이 끝나버렸을 때는 문득 친구가 그리워진다. 그러나 친구에게 열정을 쏟아봤자 애정만큼의 쾌락감을 맛보진 못한다.

그래서 다시 애정을 찾아나서게 되는데, 이런식의 '왔다갔다'로 시종하 다보면 어느새 형편없이 늙어있다. 늙어서 죽음을 의식할 때쯤되면 우정 은 정말 별볼일 없는 품목(品目)이 돼 버린다. 죽는것은 오직 혼자서 감당 해야 할 고통이기 때문이다.

우정이 애정보다 더 은근히 오래가는 기쁨을 선사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정은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더 귀찮게 한다. 정신적인 것은 언제나 맺고 끊는 것 없이 우리를 결박하기 때문이다.


마광수교수의 "자유에의 용기" 중 우정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