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저주가 네 입에 있다 ( 창 12:1~3 )
자식을 키우다보면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말로 훈계를 하고, 그것도 안 되겠다 싶으면 회초리를 들게 되지요. 저 역시 두 아들을 키우면서 많이 훈계했고, 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철칙이 있습니다. 비록 회초리를 들고 때릴지언정 아들들에게 저주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세계적인 인물이 될 놈이 어찌 그런 행동을 하느냐?”, “효자가 될 놈이 왜 이러느냐?”고 축복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세월이 20여년입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속 썩이던 아들들이 지금 둘도 없는 효자가 되었고,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지시한 땅으로 가라하시고 축복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 중에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결국 축복을 하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를 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으로 풀이됩니다. 축복은 축복을 낳지만, 저주는 저주를 낳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생각해야 할 것은 축복도, 저주도 다 입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즉 말로 한다는 겁니다. 입에서 단물도 낼 수 있지만 쓴물도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혀를 배의 키에 비교했습니다(약3:4). 축복의 길로 갈 지, 저주의 길로 갈 지는 우리의 혀, 곧 말에 달려있다는 거지요. 축복의 근원은 곧 하나님에게로부터 말미암는데 하나님도 말로 사람을 축복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그러나 아담의 죄악으로 하나님은 저주의 말씀을 하기에 이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더하리니….”(창3:15~21). 하나님도 말씀으로 축복과 저주를 하셨듯이, 우리의 말에서 축복과 저주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내가 복을 받기 위해서 축복을 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주의 말일랑 아예 삼가고 축복해야 합니다. 비록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도 말입니다. 왜요? 내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요.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12:14).
우선 나에게 축복을 합시다. 내 땅이 기름져야 남의 땅도 기름지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를 어떻게 축복하느냐고요? 저는 늘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고 내 자신을 축복합니다. “이초석, 너 참 잘 생겼다. 오늘 좋은 일만 일어날 거다. 심장도 튼튼하게 잘 돌아갈 것이고, 사지도 아프지 않을 거다. 모든 것이 때가 맞아 돌아갈 거야.” 그러면 정말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정말 하루 종일 다녀도 피곤치 않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축복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고 했으니 일차 복을 받고, 내게 복을 빌었으니 그 복이 임하여 더블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윗도 자신을 축복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 물론 이렇게 자신을 축복할 당시 다윗은 고난의 시절을 지나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매 축복이 결실을 맺어 그는 늙도록 존귀하고 부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씨를 심는다고 바로 나는 것이 아닙니다. 빨리 나는 것도 있고, 시간이 가야 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축복한 것을 믿고 기다리면 반드시 축복의 열매는 맺힙니다.
야곱은 자신이 죽은 다음에 선영(先塋)에 장사될 것을 스스로 명하지 않습니까(창47:29~31). 죽은 후의 자신도 축복한 것입니다. 스스로를 축복하십시오. 그 축복은 장차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둘째는 남을 축복해야 합니다. 내 자식을 축복하십시오. 가끔 자식에게 “죽일 놈”, “썩을 놈”, “빌어먹을 놈”, 이렇게 저주를 퍼붓는 무지한 부모를 봅니다. 그런 자에게 저는 노아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고 잠을 자고 있을 때, 그의 아들 함이 그 일을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뒷걸음질 쳐서 들어가 아비의 하체를 덮어주었습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이 사실을 알고는 말하기를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9:25~27)라고 했습니다. 노아가 한 저주와 축복이 실제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축복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주도 이루어집니다. 노아는 아들을 저주하고 만 것입니다. 가시나무 씨를 심으면 가시나무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자식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처럼 자식에게 축복을 하십시오. “하나님이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충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27:28~29). 또한 형제끼리도 축복해야 합니다. 리브가의 오라비가 리브가를 축복하듯 말입니다(창24:60). 그리고 내 성도를 축복하십시오. 엘리 제사장이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2:20). 사도 바울이 그의 성도들을 축복했습니다(고후13:13). 주님도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그를 따르던 제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눅24:50). 저는 우리 성도들을 축복할 때 한 번도 입에 발린 말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간절히 우리 성도들을 축복합니다. 그가 받을 만한 그릇이 되면 반드시 그 축복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내 민족을 축복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전쟁이나 났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런 자는 입을 꿰매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 사는 것은 우리가 매일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라고 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한의 국민이라면 나라와 민족을 축복해야 할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각 지파를 축복했듯이(신33:1~29), 다윗이 백성을 축복했듯이(삼하6:18), 솔로몬이 백성을 축복했듯이(왕상8:14) 말입니다. 그래야 이 민족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 복음을 넉넉히 전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축복해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요? 어떻게 하나님을 축복하느냐고요? 성경에는 수도 없이 하나님을 송축(頌祝)하라고 했습니다. “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 송축 소리로 들리게 할지어다”(시66:8).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자는 더욱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는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5:12). 기쁠 때뿐만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도 그 분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이 감격하사 당신에게 길을 내시며, 축복하실 것입니다.
사가랴가 축복의 찬송을 하듯(눅1:68~79) 늘 하나님을 송축하십시오. 날마다 축복의 말을 하며 삽시다. 당신이 축복하기를 기뻐하면 당신에게 축복이 임할 것이나 저주하기를 즐긴다면 당신에게서 저주가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시109:17). 나를 축복하세요. 내 가족과 이웃, 그리고 내 성도와 민족을 축복하세요. 그리고 매일 하나님을 송축하세요. 그럴 때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넘칠 것입니다. 할렐루야!
네 말로 인생을 새창조, 재창조 하라.
네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을 타고 다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