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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미술관 누가 움직이나


BY 서브아트 2008-11-28

일요일엔 엄청 춥다네요.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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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과연 럭셔리 브랜드 전시를 보러 올까? 대답은 "예"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좀 더 아카데믹한 측면에서 전시를 바라볼까? 글쎄 그건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뉴욕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하는 도시다. 그 말은 여기

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먼 미래에 어디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고 봐야

한다는 의미다."

구겐하임 전임 디렉터 토마스 크렌스가 지난 2000년 지오르지오 아르마니 전

시를 앞두고 한 말이다. 논란도 많았지만 정통 현대미술의 대명사인 구겐하임

에서 열린 가장 상업적인 전시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미술관도 이제 주식회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대다. 세계적인 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은 200억원, 루브르 아부다비는6300억원에 거래되었다. 건축비가

아니라 '구겐하임', '루브르'란 간판을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이름값을

말한다. 빌바오와 아부다비가 주저 없이 이런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지불한 데는

이유가 있다.  좋은 미술관은 작게는 한 도시의 관광사업에, 크게는 한 국가의

브랜드 가치에 기여하는 바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관을 이제 고

도의 문화 마케팅 기업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미술관 디렉터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미술에 대한 탄탄한

조예와 현장 경험 그리고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 국제적 네트워크까지 갖추고 있

어야 한다. 국제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미술관의 큐레이터를 합쳐 놓은

사람을 상상하면좋을 것이다. 최근 새로운 디렉터를 선임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의 전임 그리고후임 미술관 디렉터

를 살펴보고 그들이 향후 어떤 비전을 가지고 방향키를 움직일지 예측해보자.




▲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주고 준비중인 루브르 아부다비 설계도. 미술관과 박물관을 경영하는 관장은 미술에 대한 탄탄한 조예와 현장 경험 그리고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국제적 네트워크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난 9월 23일 구겐하임은 카네기 미술관에서 12년 동안 관장을 지낸 59세의 리처드

암스트롱을 토마스 크렌스의 뒤를 잇는 신임 관장으로 임명했다.  지난 20년간 구겐하

임 베를린, 베니스, 빌바오를 비롯해 2013년 구겐하임 아부다비에 이르기까지 구겐하

임 미술관의 국제화 브랜드에 이바지한 토마스 크렌스 관장은 논란이 되었던 1998년

'The Art of the Motorcycle', 2000년 '지오르지오 아르마니' 전시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CEO형 관장이다. 하드웨어의 확장과 장르의 확장 등 규모의 경제를 논하는

인물이었다.

이에 반해 신임 관장 리처드 암스트롱은 정통 큐레이팅으로 인정 받는 인물로서 아시아

와 라틴 아메리카 현대 미술 그리고 젊은 작가 발굴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큐레이터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신임 관장 선택을 보고 향후 미술관 디렉터의 기준이 CEO형 보다는

정통 큐레이터형이 더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은 옳지 않다. 구겐하임의 선택은 빌바

오에서 아부다비에 이르기까지 양적 팽창 후에 내부적으로 보다 진지한 큐레이팅에 대한

필요성에서 비롯된 선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미술관의 규모가 커지면 커

질수록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과 탁월한 사교능력 그리고 리더십을 겸비한 정통 큐레이터

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연간 3500억원의 예산을 자랑하고  '모나리자'로 유명한 루브르 미술관의 앙리 로이렛 관

장은 오르세 미술관 출신의 큐레이터이다. 2012년 오픈을 앞두고 있는 루브르 아부다비

프로젝트(장누벨 건축)를 1조5000억원에 수출하는 계약을 따낸 인물이다. 또한 2006년

에는 다빈치 코드의 영화 촬영장소 대여비로 25억원을 벌어들이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

다.

펀드 레이징에 관한  그의 세밀한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지난 6월 루브르를

후원하는 '루브르의 친구들(Friends of the Louvre·1만달러 이상 기부한 후원자들)' 을 위

한 저녁 만찬은 감동스러운 프라이빗 전시회로 기억된다. 미술관 큐레이터와 몇몇 미술사

학자들을 제외하고 일반 관람객에게는 한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22점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드로잉 특별전을 준비했다. 초대된 귀빈들은 그리스·로마 조각으로 둘러싸인 전시장 한가

운데서 양고기와 아스파라거스를 즐기며, 럭셔리 휴가 티켓과 80년대 팝 밴드 듀란듀란

연티켓 옥션에 참가했다. 그날 밤 로이렛 관장은 27억원을 끌어 모았다.

구겐하임과 루브르 두 미술관 디렉터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구겐하임의 토마스 크렌스가

41세, 루브르의 앙리 모리엣이  42세에 오르세 미술관 관장으로,  그리고 49세에 루브르 미

술관 관장으로 선임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크렌스는 20년, 모리엣은 7년간 미술관을

이끌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취임 후 3년후 부터다. 미술관

디렉터가 리더십을 발휘하기까지는 적어도 3년이 걸리고  그가 미술관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서 장기적인 비전이 시작된

다는 사실을 오랜 미술관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와 미국은 명확하게 알고 움직인 것이다.

미술관이 옛 것을 보기 좋게 정리하는 아카이브로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외부와 소통하고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현대미술은 지난 10년 동안 눈부시게 성장했다. 많은 작가들이

새로 태어났고, 많은 화랑들이 국제적인 면모를 보이며 세계 미술시장에 영향력을 확대해왔

다. 1996광주 비엔날레, 2000년 미디어시티 서울 등 한국도 큰 기획을 해낼 역량이 충분하

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고 봄이 오지는 않는다. 국제적인 영향력을 키우며 지속적인

브랜드 관리를 해내는 미술관, 문화를 수출하는 미술관, 비싼 대여로를 지불하고 샤갈, 고흐

등 블록버스터 전시를 수입하는 구태를 넘어, 옛것을 온전히 보전하고 새로움을 생산하는 미

술관이 나와야 한다. 미술관의 경쟁력은 전시장의 규모가 아니다. 기획과 마케팅이란 두 수레

바퀴가 돌아가야 얻을 수 있는 운동에너지이다.  한국의 미술관은 이 활기찬 운동에너지를 채

워줄 새로운 리더를 원하고 있다. 새로운 인물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마인드를 말하는 것

이다. 한 국가의 문화경쟁력이 달린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엔 없다. 그러나 서울엔

있다'라는 선전문구가 경쟁력으로 통용될 수 있는 그 날이 기다려진다.

이대형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milk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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