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은 어떻게 예술에 배태됐나?"라는 질문에 답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영국인이 있다. 낭만주의 시인이자 판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Blake·1757~1827)다. 계몽주의가 지배하던 18세기 후반에 등장해, 증기기관이 수력기관을 대체하던 시절에 장년기를 보내고, 사진이 개발되기 직전 세상을 떠난 이 인물은 영국의 자랑거리다. 블레이크가 제시한 망상적인 비전이 유럽 대륙의 낭만주의자들과 확연히 구분될뿐더러, 이후 영국의 근·현대 예술가들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윌리엄 블레이크와 그의 예술적 유산》전은 바로 그러한 영국의 자부심을 확인하고 따져볼 기회다. 영국 맨체스터대학 휘트워스갤러리가 기획한 이 전시는 블레이크의 작품과 함께 그의 동료들, 빅토리아 시대의 계승자들, 모던 컨템퍼러리 작가들의 소품을 제시한다.
중류 가정에서 태어난 블레이크는 집에서 모친에게 교육을 받았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엔 입학한 바 없지만, 판화 기술을 익히기 위해 7년간 도제 수업을 받은 뒤, 왕립아카데미에서 6년간 회화를 공부했고, 1784년 27세의 나이에 인쇄소를 차렸다. 진보적인 사상을 그에 상응하는 형식에 담아내고자 애쓴 그는 1788년 보통의 에칭 기법과 반대되는, 독특한 양각 에칭 기법을 개발했고, 문자와 삽화를 통합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채색인쇄를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