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길을 열어준 천사 같은 형님
이서준
어제 저녁 둘째 시숙님의 고희연(古稀宴)이 있었다. 밴드도 부르고 축하객도 많이 오셨으나 슬하에 외아들만 있다보니 잔치 분위기를 띄울 사람이 없어 안타까웠다. 보다 못해 가무(歌舞)에 소질도 없는 내가 노래도 한 곡 부르고, 소위 말하는 관광 춤도 흉내 내며 천사 형님의 기분을 맞춰주려 나름대로 애를 썼다.
천사 형님은 우리 집안 3남 5녀 중에 둘째 며느리시고, 나는 막내며느리이다. 내가 시집 왔을 때 형님은 서른여섯에 열두 살 된 아들을 두고 있었고, 아주버니는 일정한 수입이 없는 일일 노동자셨다. 경상도 양반 가문에서 요조숙녀로 자라 격에 맞춘 혼인을 했으나, 살림이 넉넉지 않아 객지에서 화장품 판매원을 하시며 근근이 생활을 꾸려갔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하나뿐인 아들을 기대하며 견뎠지만 아들이 삼수를 하고서도 대입에 실패하자, 그때마다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는지……. 그러던 아들이 군복무를 마친 후 전문대학에 합격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것만큼이나 기뻐하셨다.
오늘도 시골에서 손님들이 많이 오셔서 내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형님은 결석하지 말라면서 이른 새벽에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난 자네가 있어서 참 든든해.”라며 손을 잡아주어, 기어코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셨다.
내가 양원주부학교에 입학할 때, 선뜻 허락하지 않는 남편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분도 형님이시다. 그 덕분에 양원주부학교에 다니면서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많은 것을 배우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하다.
형님의 적극적인 도움과 설득 덕분인지, 지금은 남편도 “공부를 시작하더니 인상까지 바뀌었다.”면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다.
십 년 차이 동서인데, 만나면 항상 모정(母情)을 느끼게 되는 천사 같은 형님을 정말 존경한다. 부족함이 많은 나를 동생처럼 돌봐주시고 언제나 이해해 주시니, 형님이 계신 것이 나에게는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처럼 든든하기만 하다.
형님의 도움에 힘입어 어렵게 시작한 공부이니만큼, 더욱 노력해서 형님이 자랑스러워하는 동서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