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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장을 떠라(2)


BY 파란신 발 2009-08-03

맞장을 떠라(2)



보고 싶은 친구!

역시 제대로 맞장을 뜨는 것은 어려워!

매번 밀리기만 하는 대세를 어쩌란 말인가

나는 큰맘을 먹고 다시 한번 농게 잡는 것에 도전하기로 했지

일단은 혼자서는 위험하기 때문에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가기로 하고

동네 큰 샘가에 모여 보름 전부터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어.

일하는 스케줄을 맞추어 보고 물때를 따져보고

비온 뒷날을 기다려 바다에 가기로 했지.

꾀가 많은 김 여인과 암투병중인 남편을 둔 아직 힘 꽤나 쓰는 강 할머니와

어디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최씨아줌마, 그리고 빨강빤쥬의 주인공은 함께 가자고

졸랐으나 서로 마땅찮은 듯 서로 흘금거리며 눈치만 본다.

나는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리라 굳은 결심을 했어.

2007년 7월 2일(음력 5월8일) 아침 7시 밤새 장대비가 퍼붓더니

새벽이 오자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김없이 태양이 떠올랐다. 구름 속에서



네 명의 아짐들이 목이 긴 물장화를 신고 아스팔트길에 서있었다

트럭 뒤에 앉아 바람을 가르며 논으로 향하던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어디들 가세요?"

응 ,우리 농기 잡으러 간다네 같이 갈랑가?"

예.그러면 저도 같이 좀 가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치밀한 계획을 접고  작전을 변경하여 얼떨결에 그들을 따라가기로 했어

.어쩌면 그 날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얼른 집으로 돌아와 밥에 물을 말아먹고 바구니를 챙기고 양파망을 주섬주섬 주워들고

부리나케 약속 장소를 갔으나 그들은 벌써 바닷가로 가버렸지.

그 바닷길은 전에 빨강빤쮸 형님하고 다녀온 길이라 길목은 잘 알고 있었어.

나는 혼자 적진으로 가기로 했지. 푸른 트럭을 타고 뱀 쎄바닥(뱀 혓바닥)에 도착해

혼자 걸어가는데, 마치 공작새의 깃털처럼 우아한 분홍색 몸짓을 하며 자귀나무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단다. 나도 자귀나무처럼 기분이 상큼해져서 우아하게 걸어갔어.

<T-2-2>라고 뭔가 의미 있는 듯이 푯말을 목에 걸고 큰 소나무가 서 있었지

거기도 바닷물에 씻겨 엉덩이(뿌리)를 반쯤 드러낸 체로......

재밌지 않니 그 말들이 뱀 쎄빠닥이라!

먼저 오신 분들이 소주 한 병을 까고있었어 나도 한 잔 얻어먹고

그분들도 바다에 오는 것이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겠지

나도 매일 땅만 내려다보다가 바다를 쳐다보면 짜릿해.

나는 일단 넓은 바다를 한 번 휙 둘러보았어.

딱 한잔 술에 기분이 좋았지

어느 정도냐면 말이지

九尺의 긴 대나무 위에 동그란 스티로폼이 걸려있었어(난 정말 기분좋았었나봐)

그것이 마치 전쟁터에서 승리의 표시로 걸어 놓은 ‘해골’로 보이는 것이 아니겠니?

그럼 나와 농게(이하 귀여운 호칭을 ‘그놈들’이라 부른다 )의 싸움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




< 2007년 음력 5월18일 뱀 쎄빠닥(뱀 혓바닥)에서 >



조금을 닷새 앞둔 비온 뒷날 이슬거리 빗방울이 내려지고 있었다.

노련한 장수들이 놈들과의 전쟁을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나 같은 신병들에게는 다소 불리한 일이기도 하다, 날씨가 흐릿하면 뻘구멍 속으로

놈들이 숨어버려 찾아내기가 힘이 든다.

하지만 햇살이 내리 쬐면

그놈들은 마치 제 세상을 만난 듯 갯벌위로 기어오른다.

온통 갯벌이 붉을 정도로

맨 처음 내가 바다로 갔을 때는 그 놈들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저것들은 다 내 것이라고

쾌재를 불렀다. 그리나 한 발을 떼자마자 놈들은 순식간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결과가 너무도 뻔한 전투에서 나는 지고 말았다. 그 때는 겨우 한 바가지 정도 밖에 잡지 못 하였으므로.

노련한 장수들이 드디어 놈들을 잡아내기 시작 했다.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물고 긴 뻘구멍 속으로 자신들의  팔을 넣어 한 마리, 두 마리, 놈들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신참인 나도 따라 하는데 쑤시는 곳 마다 빈 구멍이 많아서 애가 탔다.

나는 박 할머니에게 어떻게 해야 그놈들을 잘 잡는지 물어 보기 시작했다.

박 할머니는 이렇게 날씨가 흐린 날은 뚜껑을 덮고 속으로 들어간 놈들도 많으니

자세히 보면 그 뚜껑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그놈들이 동굴로 피신 해 나간 곳은 놈들의

*‘발태죽’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잘 알아들은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였으나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그 때 박 할머니의 바구니에서 한 놈이 탈출을 시도했다. 끙끙대고 바구니 성벽을 기어올라

도망쳐 나온 곳이 겨우 내 손 옆이라 나는 미안한 마음이 좀 들긴 했지만 살짝 눈치를 보면서 얼른 주워서 내 바구니에 넣었다.

내가 잡은 놈들은 정말 너무 적었다. 겨우 구멍만 찾아서 줍고 있는데 저기서 얼굴도 예쁘고 살림도 너무 잘하시고 농담도 잘 하는 이쁜이아짐이 나를 불렀다. 자기가 있는 물길 옆에는 그놈들이 더 많으니 이곳으로 오라고

그곳은 확실히 달랐다. 뻘흙도 훨씬 부드럽고 손맛도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이런저런

바다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어서 좋았다.

나도 그놈들을 잡는데 재미가 붙고 집게발로 장갑 낀 내 손을 꽉 물면서 버티는 녀석들 보고 “너 가만히 있어라 잉”하고 농담도 붙이고 저항하다 끝내는 자신의 무기인 커다란 집게발이 잘려서 부상을 당한 체 잡혀오는 놈들을 보면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니 이건 두 마리가 한번에 붙어있어요 어쩐 일인가요?”

그녀가 답했다

“아마도 둘이 좋아서 그러겠지 하하하”

“그라믄 여기 셋이나 붙어 있는 놈은 뭐당가?”하고

옆에서 섬에서 시집온 아짐이 은근짜를 놓으니

“그도 사랑 아니겠나 사랑이사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감 하하하”

“하하하, 호호호, 낄낄낄, 키키킥 ”

“저그들 잡으러 왔다고 굴속에 피해있는 것 아닌가?”

“그야 그럴지도 모르죠. 형님은 한 술 더 뜨시네요 호호호”

그녀들의 웃음소리에 바다가 떠들썩했다

우리들은 한 바구니씩 잡은 놈들을 바닷속에 난 깊은 *강물길에다 바구니를 흔들어 돌리며

뻘흙을 씻어낸다. 나도 반 정도의 양을 씻었다.

물길 건너편에 또 다른 장수들이 그놈들을 진지를 공략 하고 있었다.

뱀 쎄빠닥 근처에 살면서 항상 바다를 지키며 사는 키가 크고 덩치도 좋은 여장군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잡혀온 놈들은 내가 포획한 것들보다 아홉 배는 많은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고 자랑이 쟁쟁한 그녀는 얼마나 놈들을 잡는 일에 이력이 나있는지 근 30년을 놈들하고 전쟁을 벌이고 그녀의 시원스런 눈웃음을 가끔 대할 때 마다 나도 덩달아 호탕해지는 것 같다.

가끔씩 포획물들을 가지고 우리 동네에 나타 날 때면 그녀에게서는 바다 내음이 가득하다

나는 바다에 서 있는 그녀는 처음 보았다

그녀는 바다를 얼마나 사랑하는 것일까? 아님 조금은 두려운 것은 아닐까?

내가 이런 어리버리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

기운이 좋은 장수들은 갯벌을 걸어 다니며 신나게 큰 놈들만 잡고

신참인 나와 이쁜이아짐은 무릎을 꿇어 기어 다니며 놈들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내 바구니 안에도 제법 놈들이 잡혀있고 연신 살려달라는 듯이 또 저희들끼리 탈출을 계획 중인지 입에 거품을 내뿜는 소리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니

어느새 게거품 속에 햇살이 비쳐 무지개가 가득하다

햇살이 나오자 작고 어린놈들이 하나 둘씩 일광욕을 즐기려는 듯이 나오더니

저희들을 잡으러 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운동을 한다.

내 새끼손톱만한 놈들은 세상을 모르는지 줄줄이 모여서 일제히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앙징맞고 귀여운 철모르는 것들은 양 집게발을 올려서 내 앞에서 까불까불 한다.

제법 머리가 굵은 큰 놈들은 태양을 즐기다가도 우리들이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얼른 뻘구멍 속으로 숨어버린다. 우리들과의 쫓고 쫓기는 싸움은 큰놈들만의 몫이지

신나게 노는 것은 어린놈들의 차지다.

작은 짱뚱어 새끼가 물속을 헤엄쳐 다니지도 않고 물 위를 뛰어 다니며 재주를 부린다.

뻘구멍 사이로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물이 조금 스며든 곳에 손을 넣을 때 마다 놈들이 잡혀왔다

나는 드디어 놈들을 체포하는 나만의 새로운 방식이 생겼다고 좋아라했다.

이것은 새로운 전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구멍에 물이 차 있는 곳에는 항상 놈들이

숨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태양이 나오자 뻘등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전쟁을 끝내고 뻘밭을 걸어 나오는데 큰놈 한 마리가 나를 보더니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놈이 크기도 하고 먹음직스럽기도 하기에 쫒아갔다

그리곤 드디어 놈을 손에 넣었다

놈은 말도 못하게 버둥거렸다

“어이 친구 왜 도망 가냐? ”

“......”

"......"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와 너희들의 하루 전쟁은 끝났어. 우리는 이젠 적도 아니고 나는 너를 잡아 갈 이유도 이젠 없는 걸” 하고

놈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놈은 예의 걸음걸이로 빠르게 달려가더니 자신의 뻘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노련한 장수들보다 일찍 싸움을 끝내고 T-2-2라는 푯말이 서 있는 곳에서

바다를 바라다본다. 밀려났던 물들이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아직 놈들을 잡고 있는 사람들도 지치고 갖고 싶은 양 만큼 채웠는지

하나 둘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나는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노련한 장수들이 내게 물었다

“얼마나 잡았는가?”

“우리 가족 먹을 만큼은 잡았어요.”

“우리들이 한 주먹씩 보태어 줄까?”

“아니 괜찮아요. 저도 꽤 많이 잡았어요.”

“그래 어디보세?”

“어라, 많이 잡았구먼.”

우리들은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 차서 바닷가 콩밭 길을 걸어갔다.

자귀나무 곁을 지나고 있는데

놈들 중의 한 마리가 이쁜이아짐 머리 위에서 ‘툭’하고 떨어졌다.

놈은 그 높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허술하게 묶여진 ‘망’을 뚫고 탈출을 감행 한 것이다.

맨 뒤에 걸어가던 나는 모른 척 하고 지나치며 뒤 돌아본다

‘조금만 가면 바다여 거기까지 무사히 가거라. 내 사랑 빠삐용’

그렇게 해서 3시간 동안의 우리들의 뱀 쎄빠닥 돌격 전쟁은 완전히 끝났다.





사랑하는 친구

그렇게 바다를 사냥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쁜이아짐이 “아짐들 우리 집에서 술 한 잔 하고 갑시다.”

어쩌면 그분은 마음조차도 그리 고운지

우리들이 그 집 마당에 우리들의 포획물을 내려놓고 술판을 벌이기 시작하자

동네 할매들이 지나가다가 모여든다.

“월매나 잡은겨?”

“아유 많이들 잡았네”

“저그 강릉댁도 많이 잡았나?”

“예 먹을 만큼은 충분히 잡았습니다.”

“그려 꽤 많이 잡았군.”

거의 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우리들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어.

이렇게 신나고 즐겁게 내 마흔 두 살의 삶이 지나가고 있어

난 가끔씩 아니 자주 어머니들의 부엌을 탈출하고 싶을 때가 있어

하지만 그곳에도 가끔씩 물소리가 들리고 파도가 철썩 일때면

친구!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곳도 여전히 아름다운 美港이야!



*발태죽;발자국.발로 밟은 자국. 발로 밟은 흔적

 태죽;자국,흔적,자취=도둑놈이 왔다 간 태죽이 남어 있다고 헙디다(무안 지방의 방언

 사전-오홍일 편저)


*강물길;바다 사이에 있는 골이 깊은 곳 이곳은 골이 깊어 바닷물이 빠져나간 상태에서도  물이 많이 고여있어서 강물길이라 부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