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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점점 잊어가서 미안합니다.


BY 대찬인생 2010-01-16

to ....아빠

아빠를 떠나 보낸지 15년이 흘렀네요. 그땐 난 12살이였고, 우리 막내는 7살이였죠.

"OO아, 잠깐 선생님 좀 보자"

조용히 들어와 주섬주섬 책을 챙기며 쉴세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몇일 전 우리집 평상에서 고기구워먹으며 약주한잔 하시고 기분좋게 취하셔서 행복해하시던 아빠였는데, 내 새끼들 입에 고기들어가는 거 보니 너무 좋다고하시면서 그렇게 좋아하셨는데....집으로 가는 길. 난 분명 걷고 있는데, 절대 뛰지 않고 천천히 걷고 있는데 심장이 100M달리기를 뛴 사람처럼 미친듯이 쿵쾅쿵쾅 거렸어요.

2시간 후 병원차로 이송되어 집에 도착한 아빠. 여보! 여보!를 쉴세없이 외치며 통곡하시던 엄마.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믿을수가 없었어요. 차가운 아빠가 누워계시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내가 알던 우리 따뜻한 아빠. 아빠발등에 태워 뒤뚱뒤뚱 걸음도 걸어주셨던 우리아빠. 그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무표정한 모습의 무서운 아빠만 있었습니다. 그런 두려움도 잠시, 우리 가족은 미친듯이 울었죠. 이 울음소리가 하늘에 닿아 하늘님이 어여삐 여기서서 다시 아빠를 되돌려 주셨으면 하는바람으로.....

동네어른들이 그러더라고요.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흐르면 다 괜찮아지니 너무 슬퍼말라고요.

내 귀엔 다 쓸데없는 소리로만 들렸습니다.  중학생이되고, 고등학생이되어도 꿈에서 아빠의 모습이 살짝 비춰지기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며 밤새도록 꿈속에서 통곡을 했는데...잠에서 깨어보면 눈가가 젖어있을 정도였는데..... 아빠라는 이야기를 입밖으로 내기만해도 왈칵눈물이 나와 친구들 앞에선 절대 아빠라는 단어를 쓰지도 안았고 등하교길 버스안에서 아빠를 생각하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괜찮아진다는건지,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잃은지 15년이 흐른 지금. 그 15년이 지난 뒤에서야 점점 마음이 진정이 되더라고요. 슬프긴하지만 아빠를 생각해도 하염없는 눈물이 나오지 않게됐어요. 무겁지만 그래도 담담하게 당신을 추억할 수 있게 된거죠.

내가 그렇게 믿지 않았던 세월이 약이라는 어른들의 말씀. 그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됐습니다. 세월은 정말 약이더군요. 아빨 생각하면서도 담담하게 추억할 수 있는 힘을 주었으니.....

세월이 제발 약이 아니길 바랬습니다. 슬픔이 영원해서 내 마음과 몸안에 각인되어 당신을 평생 기억하고 추억하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 마음이 세월이라는 약으로 많이 치유되었습니다.

아빠의 기억속에 12살로 머물러 있을 큰딸이 어느덧 성장해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어요. 교육기획을하며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있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일하며 지내다보니, 또다른 행복한 삶을 살다보니 아빠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네요. 아빠를 떠나보낼때, 매일 아빠를 기억하며 아빠를 위해 기도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아빠를 기억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게 되네요. 당신의 사진을 꺼내어 어루만지며 나누던 대화의 시간들도 점점 줄어들고....

아빠!

아빠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가져서 미안해요.

아빠를 떠올리고도 쉴세없는 눈물이 나질 않아 미안해요.

괜찮아져서 미안해요.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아빠를 기억하는게 줄어들겠지만, 이젠 아빠를 생각하며 행복한 추억만을 떠올릴께요.

아픔으로 당신을 기억하지 않고 기쁨으로 당신을 추억하겠습니다. 다음생에서도 나는 아빠의 딸로, 아빠는 우리 아빠로 다시 태어나주세요. 너무너무 아빠가 보고 싶어요. 너무너무.....

당신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당신을 향한 존경의 마음을 표현할 단어가 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말로도 당신에 대한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제 마음의 소리가 당신께 전해지나요?

                                         

                                                                              from 당신의 기억속에 12살로 머물러 있을 큰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