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008

ªO 엄마와 신발 한짝 ºO


BY 은재민서맘 2010-02-01

제 나이 열한살때 어머니가 신발 한짝을 사오신적이 있습니다..
한켤레도 아닌 짝 잃은 신발 한개를 사오셨더군요
저는 두 다리가 멀쩡했고 일주일만에 본 어머니가 술에 취해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는데 굉장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미안하다... 전철에서 내리다 ..플랫폼 틈새에 모르고 떨어뜨려 버렸다.."
큰 죄인인듯 수그려 변명을 하시며
철부지 딸의 원망 서린 눈망울을 애써 외면하신채
비칠비칠 걸어 나가셨습니다
저는 정말
어머니가 미웠죠.     

불행은 "무리"를 지어 다닌다고 하던가요..  
저 일곱살 되던해에     
전부터 기울기 시작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그해 일어난 석유파동으로 인해 결국 도산해버렸고  
시름끝에 얻으신 병으로 아버지는 끝내 돌아가셨습니다. 
망연자실한 어머니는 몇달을 한숨만 쉬시다가  
재기를 위해 인천의 한 공장에 취직을 하셨고 
저와 누이..둘은 개봉동 한칸 셋방에 친할머니와 함께 "둥지"를 틀었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셋방에서 부모없이 할머니와 사는 아이라는 눈총도 꽤나 받았죠...
그런 손가락질 보다 더 싫었던건
"가난"이였지만요..
음악시간 ..피리 살 돈이 없어서 혼자 뻘-줌히 앉았다가 "준비물 안 가져 왔다는 죄목"으로 매를 맞을때...
 엉덩이 헤진 체육복... 새것 살수 없어 ...기워 입고 다니다... 좋아하던 남자애가

너 엉덩이 구멍나서 팬티보인다며 깔깔 거렸을때..
이 모든 "수치스러움"이 ....
왜 어머니는 돈을 못벌어 오느냐는 불평으로 튀어나왔고...
"엄마는 가난해서 싫다"는 제 원성을 불식시키려고..
지갑을 다 털어 호기롭게 한창 유행하던 분홍빛깔 "프로스펙스" 신발을 사들고 오시다..
술김에 한 짝을 잃어버리신겁니다...
저는  신발도 하나 제대로 못 챙겨주는 엄마가
더욱 원망스러웠죠....

 

어느새
저도 자라났고...취직을 했고..결혼도 해서 딸을 낳았습니다...
올 여름에 시장을 보려갔었을때
불행히도 당시 남편의 회사사정이 어려워 월급이 두달째 밀린 상태였고..
은행의 잔고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딸내미 분유를 사는데..
어찌 그리 좋고 고급스런 분유들이 많던지요..
그 고급스런 분유들은 .... 또 어찌 그리 만만찮은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던지요...
"저거..정말 애기한테 좋은것데" ....
그 현란하게 영양소를 자랑하는 고급분유에 미련을 둔 손을 애써 잡아채고..
저렴한 "서민식" 분유 몇통을 사들고 왔습니다..
오는 내내...
아이한테 정말 좋은거 먹이고 싶은 마음에 울먹이는데
왜 자꾸
신발 한짝 내어놓고
발길 돌리신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르던지요..
아하..
이거구나..
사랑하는 자식에게 제대로 못해주는 부모의 심정이 바로 이거구나..
이 참담하고 가슴 찢어지게 괴로운 바로 이런 심정이였구나..
개봉동에서 인천까지
어머니는 "내 원망의 눈빛"을 십자가처럼 등에 떠안으시고..
속울음을 삼키시며 걸어가셨었구나...
비단...
그 하루만 ..그리 속울음을 울으셨으랴..

2010년 새해 첫날에
남편과..
어머니를 찾아가뵈었습니다...
어머니는 "첫사랑 그"와 우연찮게 재회하시여..
팔년전 재혼하셨고..
새아버지도 좋으신 분이라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회사일 집안일 제 결혼생활에 대해 속깊은 덕담을 해주십니다..
깊어진 주름사이엔 ... 자식 잘 길러보러 분투하셨던 젊은날의 행적들이 녹아 있습니다..
남편이 가져온 귤을 손수 껍질 벗겨 제 옆에 놓아주십니다...
"엄마...이거 한번 신어보세요~"
비싼 거라고 너스레를 떨며 구두 한켤레를 내어놓았습니다..
"이야...이거 좋은거네~" 엄마가 유난스레...기뻐하십니다...
"근데 갑자기 구두는 왜 사왔냐"....
"그냥요.... 오래 신으세요..."
제 기억의 편린에서 "엄마가 사오신 신발 한짝"이 떠올랐다는걸.. 어머니가 아실리는 만무하지요...
거나한 술자리나 흥건한 잔치상같은건 없었어도..
그때의 그 훈훈한 그 분위기를
저는 평생 잊지 못할것같습니다..
정말 최고의 새해 맞이였죠
사랑이란걸...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말할수 있다는걸... 저는 새삼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남편과 돌아오는길에 ..
어머니의 깊게 패이신 주름이 생각났습니다..
구두 한켤레에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그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오래 오래 사세요..
저는 엄마의 딸인게 자랑스럽습니다..
그때 제게 사다주신 그 신발은 .... 정말 최고의 "한 짝"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