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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고구마


BY 일필휴지 2010-05-07

 

유난히 추웠던 봄이었다.

그래서 ‘겨우’ 슬그머니 왔던 봄이었거늘

하지만 봄은 어느새 여름에게 자리를 내주고 달아나고 말았다.


이처럼 지구온난화가 극심한 걸 보자면

정말이지 우리네 인간들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무관심이 여전하지 싶다.


하여간 내가 어렸을 적의 이맘 때는 보릿고개라는 현실이 엄존했다.

주지하듯 ‘보릿고개’란 대략 음력 4월경 도래하는 아주 어려운 춘궁기(春窮期)이다.


보리가 채 익기 직전의 시기인 이 때 농촌은 여전히 궁핍하여

겨우내 묵은 곡식은 다 먹어서 없어지고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는

그야말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써

농촌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즈음이 어찌나 어려웠는가 하면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는 속담이 그 뚜렷한 반증이다.

당시의 어느 날 역시도 우리 집은 여전히

가난하였기에 쌀밥은커녕 보리밥조차 먹기가 힘들었다.


하여 할머니께선 남의 집에 가셔선 찐 고구마를 얻어 오셨다.

꿩 대신 닭이라고 그 거라도 먹어 어서 배를 채우라는 것이었다.


밤고구마가 아니어서 별로 달지도 않은 찐 고구마였으되

배가 등짝에 가 붙을 지경이었으므로 앞뒤를 가릴 계제(階梯)가 아니었다.

입이 미어져라 고구마를 먹었는데 목에 메어 죽는 줄 알았다!


“컥컥! 할머니, 빨랑 물 줘유! 나 목 막혀 죽어유!”

할머니는 부리나케 부엌으로 가시어 냉수를 한 그릇 떠오셨다.


“어이구, 이 미련한 놈아. 아무리 배가

고프기로 그처럼 멍청하게 마구 먹는 놈이 어딨니?”

금세라도 숨이 막혀 죽을 뻔 했던 나는 냉수를 마신 덕분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이에 비해 생각은 비교적 조숙(早熟)했던 탓이었을까...

이처럼 만날 가난하게 살아야만 하는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싫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났다.

요즘 아이들이야 당연히 보릿고개 시절의 비참(悲慘)을 모른다.


“라면을 먹음 되지 왜 굶었어요?”

이렇게 묻는 아이도 있다고 하니 웃어야 할 지

아님 울어야 할 지 나 또한 딱히 대책이 없다.


어제는 모처럼 광에서 늙어가고 있는 고구마를 골라 쪄 먹게 되었다.

한데 그걸 먹자니 그 시절의 아픔이 문득 떠올라 더욱 목이 멨다.


타생지연(他生之緣)이란 말이 있다.

이는 지난 생(生)의 인연이라는 뜻으로 낯모르는 사람끼리

길에서 소매를 스치는 것 같은 사소한 일이라도

모두가 전생의 깊은 인연에 의한 것임을 이르는 말이란다.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인정만은 살아 꿈틀거렸다.

그러했기에 자신의 배도 엄청 고플진대 그걸 간과한 채

감히(!) 찐 고구마를 그처럼 척척 내주었을 것이었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이웃 간의 따뜻했던 정(情)이 새삼스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