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버이날.
당초엔 아산의 숙부님 댁으로 카네이션 꽃과 선물을 사 들고 가고자 했다.
하지만 어제 숙모님께 전화를 드리니
두 분께서 어디로 여행을 가신다며 오지 말라셨다.
“네 아버지 산소를 이장하자면 다음 주에 어차피 와야 하니 그 때 오거라.”
“그래도 서운해서요...”
“아니다.”
어버이날이라고 오늘 아들이 집에 온댔다.
그러나 반찬거리가 없어 장에 가야 했다.
장을 보려고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커다란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단 한복차림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이 꽃은 우리 손녀가 아침에 달아줬는디 아무리 봐도
꽃을 단 이는 나밖엔 없네 그려. 그래서 조금은 창피하기도 혀.”
그러자 리어카 행상으로 생선을 파는 아저씨가 한 마디 했다.
“아녀유, 보기만 해도 좋은디유!”
나 또한 부화뇌동하여 그 할머니를 칭찬해 드렸다.
“할머니, 오늘 같은 어버이날에 다는 카네이션 꽃은
자녀를 잘 키운 부모님만이 달 수 있는 (어떤) 훈장이니 개념치 마세유.”
그랬음에도 그 할머니의 수줍음은 여전했다.
그 때 마침(!) 길 저쪽에서 정장을 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역시도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한 아름 꽂고 오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생선장수 아저씨가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할머니랑 ‘동창생’인 분이 저기 오시네유!”
그제야 할머니도 소리 내어 크게 웃으셨다.
장을 보고 오는데 이웃집 할아버지가 집 밖에 나오시어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꾸벅 인사를 드리며 “오늘은 자제분들이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겠네유?” 여쭈니 손사래를 치셨다.
“엊그제 미리들 와서 돈 주고 갔슈.”
“그러세유? 아유 좋으시겠네! 그럼 할머니랑 어디로든 놀러라도 가세유.”
“다 늙어서 워딜 놀러 가유? 그냥 이렇게 집에 있는 게 편해유.”
봄이 되면 온갖의 식물에선 꽃이 핀다.
꽃이 피어야만 비로소 결실이란 과실이 생성된다.
이러한 법칙은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렇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화사했던 꽃들도 얼마 안 되어 그만 시들고 만다.
사람의 일생도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항우장사와도 같았던 젊음 역시도
흐르는 세월 앞에선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까닭이다.
여하튼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그에 걸맞게 날씨도 화창하여 참 좋은 날이다.
나로선 일평생 단 한 번조차도 불러보지 못 한 극명한 아픔의 이름이 바로 ‘어머니’다.
그렇긴 하더라도 나에게도 사랑하는 아들과 딸은 있으니 그만하면 된 것이다.
오늘 온다는 아들의 휴대전화는 여태껏 전원이 꺼져있다.
아마도 어제도 과음을 했지 싶다.
아들이 들고 올 카네이션 꽃을 기다리며
어서 물을 데워 목욕이라도 하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