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84

50년 만에야 써 보는 편지


BY 일필휴지 2010-05-11

 

어머니, 안녕하세요?

봄의 신록이 오는가 싶더니 금세 여름에게 자리를 내준 즈음이군요.


예년엔 지금과 같은 5월이면 그야말로 완연한 봄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지난 5월 8일의 어버이날은 흡사

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 뭐예요.


어제는 월요일이어서 퇴근 뒤에 평소 애청하는

퀴즈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를 시청했습니다.

여기엔 저도 작년에 출연한 바 있어 유독 그렇게 도타운 프로그램이랍니다.


아무튼 어제 이 방송에선 40대 주부가 그야말로

쾌도난마와 얼추 일사천리로써 그렇게 달인의 고지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러자 새로 바뀐 여자 아나운서 진행자가 묻더군요.


“어쩜 그렇게 잘 하세요! 비결은?”

이에 ‘달인’ 아줌마는 흔쾌히 답했습니다.


“두 달간 도서관에서 우리말 관련 공부만 했습니다!”

그처럼 열심히 공부한 결실을 맺는 걸 보자니

흐뭇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큰 박수를 보냈답니다.


아울러 뭐든 열심히 하면 그 끝은 정직한 결실로 나타난다는

이른바 고진감래(苦盡甘來)까지의 교훈까지도 덤으로 수확할 수 있었지요.

그러면서 그같은 고진감래의 경우가 이젠 저에게도 시나브로 다가오는 건

아닐까 싶은 감흥에 다시금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뇌리의 중심으로 들어와 박혔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익히 아시겠지만 저는 어머니를 너무도 일찍 여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림으로조차도 그릴 수 없는 입장이죠.


그도 그럴 것이 제가 고작 첫돌을 즈음하여

어머니께선 제 곁을 훌쩍 떠나셨으니 왜 아니 그러했겠습니까!

아무튼 그러한 아픔 등으로 말미암아 저는 초등학교조차도

겨우 마치고 삭풍이 휘몰아치는 이 사회로 떠밀려 나와야 했지요.


지금도 여전히 비정규직의 가파르고 험한 삶인 건 매한가지고요.

그 바람에 두 아이들에게도 사교육 따윈 언감생심이었답니다.


대신에 저는 주말과 휴일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섭렵하는 습관을 십 수 년 동안이나 강행하였지요.

그 덕분으로 두 아이는 모두 누구라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을 너끈하게 들어갔고 또한 올 초엔 잇따라 학사모를 썼던 것입니다.


하여 어제 달인이 된 아줌마의 어떤 형설지공(螢雪之功)이

저로선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은 감동의 파노라마로써 다가왔던 것이었죠.


지난 어버이날엔 경기도에 직장을 가지고 있는 아들이 짬을 내 집에 왔답니다.

그리곤 저에게 양복 한 벌을 사 주는 것도 부족했던지

영양만점의 한방 오리탕까지를 사 줬지 뭐예요!


과용한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아들은 되레 정색을 하더군요.

부자(父子)간에 그런 말씀을 하시면 서운하다나요.


집까지 달려와 효도를 다 한 아들과는 달리 딸은 그날 오지 못 했습니다.

그건 딸은 여전히 백수, 아니 요즘 사람들 표현으론 ‘백조’라고 한다지요?


지난 2월에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딸은 여전히 돈을 못 버는 가난뱅이랍니다.

그러니 집에 와서 선물까지 하자면 아마도 퍽이나

경제적으로도 힘이 들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지요.


그런 고로 제가 서둘러 미리부터 쐐기를 박았던 것이었습니다.

“너는 어버이날에 안 와도 된다”고 말이죠.


물론 그날 아들과 식사를 하고 나오던 중에 딸로부터는 또 다시 전화를 받았답니다.

오늘 못 찾아뵈어서 죄송하다고 말이죠.


그 전화에 저는 “아니다! 너는 너의 존재만으로도

그 어떤 선물에도 상회(上廻)하는 내 사랑의 집합체이니 되었다“고 했답니다.


야간근무가 있어 급하다며 저녁조차

먹지 못하고 일어서는 아들을 집 밖까지 배웅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금 작별의 인사로

고개를 꾸벅하는 아들을 보자니 문득 또 어머니 당신의 모습이 그리웠습니다.


오늘이 다른 날도 아니고 어버이날인데...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 그러니까 어머니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손자이기에 그 얼마나 금쪽 같이 예쁜 ‘내 새끼’겠습니까!


만약에 당신께서 지금껏 살아계셨더라면 아마도, 아니 필경

당신께 제 아들은 어머니 맘에 쏙 드시는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왔을 것이었습니다.


이에 어머니께선 반대급부가 아닌 당연한 할머니의

손자사랑의 정리(情理)로써 한껏 고무되시어 얼싸안으실 건 당연지사였겠지요.


또한 뭐라도 맛난 걸 먹여서 보내고자 성화까질 부리셨을 테고요.

지난 50년간 어머니의 부재(不在)로 말미암아 저, 참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그랬으되 저는 어머니의 ‘손자사랑’이란 몫까지를 얹어

그야말로 지극정성으로 두 아이를 키웠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어머니, 올해의 어버이날은 이렇게 지났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제가 눈을 감을 때까지도 정녕

잊을 수 없는 우뚝한 그리움의 성(城)에 다름 아니랍니다.


앞으로도 당신의 몫까지를 담아 두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피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