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고향 친구들과의 정례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오전에 고속버스를 타고 천안에 가 죽마고우들을 만났다.
소주병이 다섯 개를 지나가자 다들 흥건한
술김을 빌어 오는 6.2 지방선거가 화두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넌 누굴 찍을 거니?”
“글쎄...”
그러다가 이번 선거에 출마하는 모 인사에 대한
이력과 약력이 호적으로 연관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얼마 전 아는 어르신을 만났는데 이번에 출마하는
000씨는 공개된 선관위의 공고문 약력(略歷)과는 달리
실제 나이는 그보다 두 살이 더 많다더라.”
“정치인도 연예인처럼 고무줄 나이인감?”
“당시엔 하도 일찍 죽는 아이들이 많았던지라
어르신들이 일부터 호적신고를 늦게 하는 경향이 뚜렷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긴 그 말도 일리가 있네!”
그 얘기 바람으로 우리들의 이야깃주머니는 뜬금없이
호적(戶籍)과 관련한 지난 시절로 이동하기에 이르렀다.
이실직고하건데 나는 일곱 살 때까지도 호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국민(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호적을 만들어 가까스로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처럼 당시까지도 호적이 없었던 연유는 선친께서
오래전에 작고하신 때문으로 나는 그 사연을 알리 만무이다.
여하튼 예전의 내 본명은 외자(字)로 홍선(洪善)이었다.
이는 소싯적에 천안의 주먹세계를 평정했던 선친께서
"너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바람의 연장선상에서 작명된 것이라고 들었다.
그러다가 내 나이 여섯 살 무렵에 하루는 산중에서
도를 닦는다는 선친의 친구 분께서 우리 집을 찾으셨다.
“네 아들 이름은 단명할 수야! 그러므로...”
장수(長壽)하라고 새로 지어주신 이름이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경석(卿碩)이다.
큰 벼슬을 하라는 의미였으되 여태껏 벼슬은커녕
늘 그렇게 내 앞가림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허투루의 삶만을 점철했다.
그렇긴 하더라도 어쨌든 지금껏 장수는 하고 있으니
선친 친구 분께선 분명 혜안(慧眼)은 지니셨던 분이지 싶다.
“그나저나 우리 2년 선배인 김00씨와 5년이나 후배인 아무개도 시의원에
출마했던데 우리들 59년 돼지띠들은 그냥 이렇게 필부로만 살아야 하는 거니?”
“그럼 경석이, 네가 한 번 출마하지 그랬니?”
“물론 그래서 이 헝크러진 세상을 일거에 바꿨으면 오죽이나 좋았겠니?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냐! 좀 더 숙성의 기회가 필요해...”
학력과 학벌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나처럼 고작 초졸 학력의 무지렁이가 출마했다손 치면
금세 웃음거리의 폄훼대상으로 각인되기에 딱 알맞다.
하지만 내년부턴 자못 양상이 달리질 수도 있음이다.
그건 나도 내년이면 지금도 ‘열공’중인 사이버대학의 졸업생이 되는 까닭이다.
큰 벼슬은 아닐지라도 여하튼 기초의원에라도 출마하여
나처럼 열심히 일해도 못 사는 민초들을 위한 투쟁에
이 한 몸 던지고자 하는 결의는 여전히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