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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조리 x번만 찍었어”


BY 일필휴지 2010-06-02

오늘은 드디어 6.2 지방선거의 날입니다.

평소처럼 오전 5시 경 일어나 개구리밥만큼의 소찬(素饌)을 떴습니다.

 

그리곤 투표시간이 시작되는 6시를 기다렸지요.

선거철이면 늘 그러했듯 저는 언제나 그렇게

투표만큼은 단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는 아주 ‘모범시민’이었습니다.

 

이윽고 오전 6시가 임박했습니다.

‘경건한’ 투표인지라 마치 불공을 드리는 승자의 그것처럼 목욕탕으로 들어갔습니다.

 

우선 면도기로 얼굴에 난 털을 깎고 양 귀를 잘 씻었습니다.

머리도 모발이 조금은 난다(髮)는 ‘허위광고’의 특정브랜드 샴푸로 시원하게 감았지요.

 

 

양치질까지 시원스레 마치고 나서 얼굴엔 스킨과 로션을 약간 발랐습니다.

이어 바지를 꿰고 상의는 평소 집에서 걸치는 티셔츠를 입고는 동사무소로 갔습니다.

 

오전 7시 안팎이었는지라 유권자는 드문드문했습니다.

우선 넉 장의 투표용지를 받아 작심했던 이들에게

기표하고 나머지 네 명에게로의 투표도 마저 마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반찬거리가 없기에 장을 보려 시내버스를 타고 역전시장에 갔습니다.

오늘처럼 임시공휴일, 더욱이 중차대한 이들을 뽑는

상징적인 날에는 최소한 삼겹살이라도 먹어야 되겠다 싶은 생각이 똬리를 틀더군요.

 

“삼겹살 5천 원어치만 주세요.”

이어 상추와 깐 마늘도 샀습니다.

 

그걸 약간 커다란 까만 봉지에 죄 담아 시장을 나와 시내버스 정류장에 섰지요.

할머니 두 분이 이번 선거에 대하여 ‘공방전’을 벌이고 계셨습니다.

 

“투표는 하고 나온 겨?”

“그려~ 근디 댁은?”

 

“나도 벌써 하고 왔지!”

순간 저처럼 새벽잠이 없는 노인분이지 싶어 약간은 반가운 마음이 들더군요.

 

“아이구~ 부지런도 하시네요!”

이같은 저의 칭찬에 그 할머니는 약간은 고무되셨던가 봅니다.

 

“근디 이번 선거는 왜 그렇게 나온

사람(출마자)들이 많은 겨? 그래서 나는 모조리 x번만 찍었어.”

 

그러자 바로 곁에 서 계시던 다른 할머니 또한 이에 질세라 입이 분주해 지셨습니다.

“말도 말어. 나는 첫새벽부터 영감이 빨랑 같이 가서

누굴(특정한) 찍자고 난리를 부리는 거여! 그래서...”

 

“그래서?”

“버럭 야단을 쳤지! 그건 선거법 위반이라고.”

 

곁의 할머니는 그 이야기보따리를 아예 즐기려는 듯

더욱 흥미진진한 분위기의 미간이셨습니다.

 

“잘 했어! 선거란 건 내 맘에 드는 이를

내가 직접 찍는 거거든!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이제 과거처럼의 가부장 적 고루함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하여 가장이 “나도 찍을 사람이니 당신도 날 따라 무조건 찍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진부한 어떤 부정의 온상입니다.

 

여하간 이번 선거의 투표 땜에 쌈 날 뻔 했노라는 할머니의

유창한 말씀은 잠시 기다리는 버스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하는 모티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