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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안의 자식이라지만


BY 일필휴지 2010-06-06

 

어떤 책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 금실이 좋은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몹시 가난했던 젊은 시절 그들의 식사는 늘 한 조각의 빵을 나누어 먹는 것이었지요.

 

모든 어려움을 사랑과 이해로 극복한 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자 노부부는 결혼 40주년에 치르는 기념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이들 노부부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 노부부는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마주 앉았지요.

 

하루 종일 손님을 맞이하느라 지쳐 있었으므로

그들은 간단하게 구운 빵 한 조각에 잼을 발라 나누어 먹기로 했습니다.

 

“빵 한 조각을 앞에 두고 마주앉으니 가난했던 시절이 생각나는구려...”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지난 40년 동안 늘 그래왔듯이

할머니에게 빵의 제일 끝부분을 잘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할머니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당신은 오늘 같은 날에도 내겐 고작 두꺼운 빵 껍질을 주는 군요.

40년을 함께 살아오는 동안 난 날마다 당신이 내미는 빵 부스러기를 먹어 왔어요.

 

그 동안 당신에게 늘 그것이 불만이었지만 섭섭한 마음을 애써 참아 왔는데...

하지만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도 당신이 이럴 줄은 몰랐어요!”

 

할머니는 섭섭함과 분에 못 이겨 마침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요.

그런 할머니를 보며 할아버지는 몹시 놀란 듯

한동안 머뭇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할머니가 울음을 그친 뒤에야 할아버지는 더듬더듬 이렇게 말하셨다네요.

“당신이 진작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난 몰랐소. 하지만 여보... 바삭바삭한 빵 끄트머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소...”

 

이 글을 보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나의 배려가

때론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타인을, 특히나 배우자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더불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관심을 갖고 그가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올해가 지나면 결혼 30주년을 맞는 아내입니다.

아내는 지난주에 왼쪽 눈의 백내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오는 수요일엔 오른쪽 눈의 수술이 있습니다.

걱정이 되었던지 딸과 아들은 어제도 전화를 해 왔습니다.

 

“아빠가 엄마 곁에서 예의주시하고 있으니 걱정 말거라.”

하지만 아들은 잠시나마 짬을 내서 수술 하루 전날에 집에 왔다 가겠다고 하더군요.

 

순간 울컥하는 고마움이 해일로 몰려왔습니다.

“고맙다!”

 

“고맙긴 요, 아들로써 당연한 거죠.”

아들이 현재 근무 중인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내면서 한 말이 지금도 뇌리를 흐릅니다.

 

“이 회사는 어찌나 바쁜지 이사 (理事)가 되신 분의

자제가 쓴 글을 보니 명절 때도 자신의 아버지 얼굴을 보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아들은 이제 겨우 신입사원입니다.

그렇긴 하더라도 아들의 얼굴은 점차로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아들의 회사가 세계적인 기업답게 그만큼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고무적 현상의 방증입니다.

 

하나 이를 역(逆)으로 응시하자면 앞으로 아들은

더욱 보기가 힘들어 질 그리움의 대상이란 결론이 쉬 도출되기도 합니다.

 

그러노라면 우리네 인생은 다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갈 수록

더한 외로움에 길들여져 가는 운명체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기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다 바람 같은 것이죠.

또한 구름처럼 머물다 가는 게 인생이기도 하구요.

 

여하튼 품안의 자식이라고 두 아이가 성년으로까지 자람(成長)에 따라

이제는 늘 그렇게 곁에 없으니 헛헛한 날에는 더욱 아이들이 그립습니다.

 

아내의 양쪽 시력이 회복되고 나면

둘이서라도 가까운 대폿집에 가 술 한 잔 나눠야겠습니다.

 

아울러 아내가 좋아하는 일과 짓만 골라서 해야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