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충북 보은의 속리산에서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 및 산행이 있었다.
천안의 친구들은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출발한다고 했지만
대전에 사는 우리들은 친구의 승용차에 편승하여 속리산으로 직행했다.
법주사의 초입에서 만난 동창생들은 여전히 살가운 ‘불알친구들’에 다름 아니었다.
동창회의 총무가 먼저 입을 뗐다.
“우리 친구, 이번에 수필가로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에 다른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축하해 주기를 마다치 않았다.
“어유~ 정말 축하받아도 싸구나! 나도 축하해!”
그처럼 친구들이 연신 축하의 디딤돌을 놓아주자
내 맘은 금세 하늘을 부유하는 바람 빵빵한 풍선이 되고도 남았다.
“고마워!!”
“내가 살아온 과거사를 언제 한 번 네가 대필(代筆)해 줄 수 있겠니?”
이렇게까지 묻는 친구에겐 딱히 답변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난 이제 겨우 올챙이인데 그래서 지금으로선 무리야.”
모 문학회에서 주최한 신인작가 공모전에서 수필 부문으로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다는 낭보를 받은 건 지난주다.
그같은 소식에 고무된 나는 절친한 친구와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축하를 해 주신다면 3대에 걸려 복을 왕창 받으실 것!”이란
다소 엄포에 가까운 ‘협박’으로써.
하여 나의 등단소식을 그같은 방식에 의해 미리 알게 된
동창회 총무는 그처럼 반색을 하며 동행한 동창생들에게도
죄 소문을 퍼트리게 하는 단초의 역할을 한 것이다.
진부한 얘기겠지만 여전히 학력과 학벌이 득세하는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불학(不學)의 필부는 그야말로 간난신고의 점철이다.
이같은 패러다임의 멍에와 질곡은 고작 초졸 학력뿐인
나에겐 더욱 적확한 사회적 형벌의 어떤 주홍글씨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건강보험료조차 지원이 되지 않는 사회적
모순의 불이익까지를 고스란히 쏟아지는 우박으로 받으면서 살아오길 수십 년이다.
이러한 불변의 수레바퀴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나 스스로 깨치고 배우는 수 외는 없었다.
얼추 20년 가까이를 주말과 휴일이면 도서관에 가 책읽기의 행보를 계속했다.
더불어 제출물로(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제힘으로)의 습작에도 공을 들였다.
별도로 누군가에게서의 글쓰기 공부,
예컨대 문학강좌 등의 수업은 일부러 치지도외했다.
이는 그랬다가는 행여 내가 보고 배운 이의
문학세계를 모방하는 아류작의 탄생까지도 우려된 까닭이었다.
굴곡의 가정사로 말미암아 불학의 세월을
50년 이상이나 살아온 필부는 하지만 이제 수필가로 다시 태어난다!
쟁퉁이가 아닌 너른 바다와도 같은 심성으로 더욱 좋을 글을 쓸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