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퇴근길은 푹푹 찌는 무더위가 여전했다.
사무실을 나와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잠깐 동안에도
땀은 장맛철의 폭우만큼이나 줄줄 흘러내려 여간 곤혹스런 게 아니었다.
이윽고 도착한 버스는 그래서 장원급제를 하고
돌아오는 이몽룡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과 똑같았다.
“수고하십니다, 오늘은 정말 덥네요!”
그러자 기사님도 금세 맞장구를 쳤다.
“손님들도 다들 더워 죽겠다고 난립니다.”
마침 좌석이 비었기에 앉았더니 에어컨 바람이라도 있어 그나마 살만 했다.
버스는 중촌동 놀이터에서 정차해 승객을 태웠는데
늙수구레한 그 손님이 화근의 단초를 제공했다.
“우라질! 뭔 놈의 버스가 이리도 늦게 오는 거야?
잠시 전의 버스는 서지도 않고 그냥 갔단 말야!”
그처럼 불문곡직에 다짜고짜로까지 고함을 지르자 기사님도 용수철로 반동했다.
“아니 그걸 왜 애꿎은 저한테 따지십니까?”
그러자 약간 술기운이 있어 보이는 남자는 더욱 기고만장했다.
“나, 가만 안 있어. 시청에다 당신들 모두 고발할 거야!”
여전히 발차를 못 하며 분을 삭이던 기사님은
급기야 승객의 그같은 강퍅함에 울분을 토로했다.
“듣자듣자 하니까 이 양반이 완전 경우가 없는 분일세,
앞 차가 정차를 했는지 안 했는지의 여부를 나는 알지도 못 하거니와
설령 그랬다손 치더라도 그건 그 차랑 따질 일이니 어째서
애꿎은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거요, 화풀일!”
그러거나 말거나 그 승객은 여전히 욕지거리까지를 입에 달면서 횡설수설했다.
하는 수 없어 내가 한 마디 거들고 나섰다.
“다들 바쁘니 그만 하시고 출발하시죠.”
요즘 날씨는 그야말로 초열(焦熱)이다.
밖에 나가도 바람 한 점이 인색하며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거실의 온도조차 30도를 여전히 오르내리니 말이다.
이처럼 무더위가 한껏 기승을 부릴 적이면
불쾌지수까지 편승하여 괜한 일에도 짜증이 나기 일쑤다.
고로 이런 날씨엔 뭐니뭐니해도 너른 심성과
관조로써 자신의 마음부터 평온한 바다인 양 가꾸는 게 제일이다.
어제 퇴근길의 버스 안에서 목도한 승객과 기사님의 어떤 공방전은
역지사지 관점의 결여에서 오는 에고이즘의 투영 결과라고 보아졌다.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이 쓴 ‘화火’라는 책을 보면
사람이 화를 내는 연유는 절망과 미움, 그리고 두려움 등이
모두 우리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독(毒)에서 기인한다고 했다.
화(火)는 글자가 불 ‘화’자(字)인 데서도 보듯
사전학적으로도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제 그같이 마구 화를 낸 바특한 성정의 승객은
아마도 이같은 범주에 든 건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