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낳고 백 일이 되어 백일잔치를 하게 되었다.
당시엔 백일과 돌잔치 때도 금반지를 선물로 주고받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한 금반지를 많지는 않았으나 하여간
견물생심이라고 약간이나마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나 역시도 지인(들)이 그러한 잔치를 한다손 치면
금은방에 가서 같은 규격으로 선물했음은 물론이다.
딸이 고교를 졸업하던 날, 딸의 학교에선 딸에게
성적 최우수자라며 대상을 수여하면서 금메달도 주었다.
한 냥은 안 되고 약 다섯 돈 가량의 무게였다.
‘이건 우리 집의 가보로 간직해야지!!’
아무리 어려웠어도 그 금메달을 팔아먹을 순 없었다.
하여 딸이 받은 금메달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집 어딘가에서 은밀하게 숨어있다.
오늘자 신문을 보자니 금값이 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금 한 돈(3.75g)의 값은 무려 22만 원이나 한단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이제 백일이든 돌이든 간에 금반지를
선물한다는 건 우리네 서민들로선 정말이지 그림의 떡이 돼 버렸다는 생각이다.
금의 양을 헤아리는 단위는 ‘푼’(1/10돈) 과 ‘돈’ ‘냥’(10돈),
그리고 그 옛날 떵떵거리는 고관대작들이나 되어야
비로소 손에 쥐어봤음직할 ‘쌈’(100냥)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금반지 얘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할 게 떠오른다.
아들의 백일잔치는 당시 근무했던 직장에서
주임으로 승진하면서 부임한 I시(市)에서였다.
근데 공교롭게도 그 때의 영업소장님은 회사 공금의 횡령 혐의로 잠적을 하게 되었다.
그 전엔 나에게서도 돈을 빌린 바 있다.
“급히 쓰고 줄 테니 돈 좀 꿔 줘요!”
“낼모레가 아들 백일잔치라서 모아둔 돈이 있긴 하지만...”
“아무렴 내가 홍주임의 돈을 떼어먹겠소?”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그 뒤로 소장님은 파면되었으며 당시에 꿔 준
내 피같은 돈은 또한 여전히 받을 수 없는 공수표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긴 하지만 기왕지사 지난 일이기에 마음에서도 지운 지 오래다.
아울러 금반지 아니라 금덩어리를 가득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나는 부럽지 않다.
왜냐면 나에게도 열 쌈, 아니 백 쌈(1만 냥)이상의 값진 보물이 둘이나 있는 까닭이다.
그건 바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다.
지금도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들이거늘 후일에 있어선
어찌 백 쌈 그 이상의 금은보화가 아니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