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게 있어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상은 즐거운 고민 중 하나다.
사람은 누구라도 진부하고 의례적인 걸
의식적, 아니 어쩜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하여 어제 된장찌개를 먹었으면 오늘은
그와 비슷한 음식은 미리부터 손사래를 치는 것이다.
바로 전날엔 소화하기에 다소 버거운
육류를 섭취했더니 며칠 전엔 담백한 점심이 그리웠다.
그래서 점심 시간에 식당가를 전전하던 중 마침 눈에 쏙 들어오는 집이 있었다.
사람 몸에 좋은 쑥까지 넣었다는 수제비!
바지락까지 들어가 시원한 맛이 일품인
수제비를 먹고 그도 부족하여 밥까지 말아 먹었다.
그랬더니 바람 빵빵한 풍선만치로 배는 물론이요 마음까지 부풀어 좋았다.
기실 따지고 보면 수제비는 일종의 구황식품이었다.
참 못 살았던 그 시절에 수제비처럼 배를
금세 포만감으로 만들어 주는 존재는 다시 없었으니 말이다.
할머니와 살았던 당시의 가난했던 소년은 만날 그렇게
할머니의 손으로 만든 수제비를 그야말로 물리도록 먹으면서 자랐다.
“이젠 수제비 싫어요!”라고 아무리 하소연 내지
투박하게 강변(强辯)해 봤자 말짱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것도 없어 못 먹어 굶는 사람들이 지천이여!”
그랬다.
지난 60~70년대는 여전히 그 암운이 걷히지 않았던 어떤 보릿고개의 연장 즈음이었다.
그러했음에 더욱이 빈가(貧家)의 소년이 쌀밥을
먹는다는 건 어떤 실정법 위반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같이 옴나위없이 가난에 휘둘리던 소년도
세월의 흐름에 편승하여 이젠 지천명이 넘은 중년이 되었다.
한데 묘한 게 사람이란 건 그 시절엔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기까지
했던 수제비가 이젠 되레 그리움의 음식으로 성큼 다가선다는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가끔은 손수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데 어제가 또 그랬다.
평소 음식을 잘 만드는 터라 아이들도
내가 음식을 만드는 솜씨는 이전부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중이다.
쫄깃쫄깃한 식감의 배가 차원에서 미리 하루 전날
비닐에 싸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밀가루 반죽을 꺼냈다.
이어 ‘아빠표 수제비’의 재료를 주방의 식탁에 죄 나열해 놓았는데
이는 나이가 먹어 나도 이따금은 건망증이 발동하는 까닭이다.
고로 눈으로 보면서 준비한 재료를 빠짐없이,
그리고 순서에 맞게 넣어 조리하는 게 필수인 때문이었다.
재료는 근데 간단치가 않다.
기왕지사 칼을 뺐음 무가 아니라 나무를 베고 볼 일이란 사관에 충실한 터이다.
하여 어떤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우선 재료부터 풍성히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작은 감자 다섯 개와 호박 1/3개, 그리고 계란 한 알에 이어
빻은 멸치와 새우에 더하여 매운 청양고추 두 개와 찧은 마늘도 잘 챙겼다.
널찍한 냄비에 물을 붓고 다시마를 넣어 팔팔 끓였다.
이어 흐물흐물해진 다시마는 건져내고 참기름을 두어 방울 넣는데
이는 수제비가 서로 좋아 죽는다며 달라붙는 걸 막는 방책이다.
여기에 손질한 감자와 호박, 그리고 각종의 재료를
가미한 뒤 밀가루 반죽을 두 손으로 치대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뚝뚝 떼어 넣는다.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간을 본 뒤 마무리로는
계란을 풀고 김도 한 장을 구워 상에 내면 된다.
다 아는 상식이겠으되 수제비와 라면의 장점은 이걸 다 먹고 난 뒤에도
배가 허전하면 여기에 밥을 말아 먹을 수 있는 어떤 최대공약수가 숨어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이 아니면 도무지 모를 이런 진국의 맛은 특히나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엔 이열치열의 차원에서라도 더 더욱 먹어줄 일이라고 생각한다.
월드컵 축구 중계마저도 손 안의 휴대전화로 너끈히 보는 첨단문명의 시절이다.
보릿고개는 고리타분한 옛날 옛적 동화책에서나
겨우 접할 수 있는 게 오늘날의 어린이들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수제비가 쌀밥을 무시하던 그 시절
그 때의 우리네 민초들 삶은 어쩌면 *어살에 갇힌 물고기의 형국에 다름 아니었다.
도통 구할 수 없었던 밥(쌀 혹은 꽁보리일지라도) 대신에 수제비를
무시로 식탁에 올리셨던 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신 지도 어언 30년이 다 되었다.
너무도 가난하였기에 그마저도 충분치 못 하여
배를 맘대로 채울 수 없었던 지난 세월은 이제 그리움의 정자(亭子)에만 머물러 있다.
할머니~
이제는 하얀 이밥에 고깃국만 드시고 계시겠지요?
*어살(물고기를 잡는 장치로써 싸리와 참대를 날개 모양으로 둘러치거나 꽂아
나무 울타리를 친 다음 그 가운데에 그물을 달아 물고기를 잡는 전통적 어업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