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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닦이에서 수필가로


BY 일필휴지 2010-06-21

박복(薄福)하다는 건 복이 없음과 함께 팔자가 사나움을 동시에 일컫는 말이다.

그랬다.

 

하여 참으로 명실상부하게 박복했던 그 소년은

그에 걸맞게 겨우 생후 첫 돌을 즈음해 생모를 잃었다.

그 바람에 생의 의욕을 잃은 아버지께선 허구한 날 술에만 의존하며 사셨다.

 

가장이 그처럼 가장으로서의 기본적 책무인 생업까지

도외시함에 따라 우리 집의 가난은 언제나 붙박이로 고착화되었다.

늘 그렇게 얼추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은 가정경제의 피폐로 말미암아

소년은 그예 초등학교만을 어렵게 마치고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고향역 앞으로 나와 구두닦이로 돈벌이를 시작한

소년가장은 이어 행상과 노동 등으로 더욱 고된 질곡의 수레바퀴에 갇히게 된다.

 

 

군대를 다녀온 소년은 안정적인 직업을 찾았으나

‘가방 끈’이 짧았기에 그 또한 연목구어(緣木求魚)였다.

비정규직의 출판물 세일즈맨으로 입사한 20대 청년은

올해로 30년 가까이를 그 직업 그대로의 가시밭길에 서 있다.

 

독자들을 향한 나, 그러니까 이 세일즈맨의 서적 구독 권유에

있어서의 무수한 거절은 인터넷 시대의 착근으로 말미암아 더욱 거센 격랑이다.

 

세월은 여류하여 당시의 구두닦이 소년은 올해로 52세의 중늙은이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나이를 허투루만 먹진 않았다.

 

못 배운 게 천추의 한이 되었기에 약 20년 전부터

주말과 휴일이면 도서관을 다니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아이들도 의도적으로 끌고 가서 다독(多讀)시킨 반향으로

아들과 딸, 모두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할 수 있었다.

 

책을 많이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시나브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생성됐다.

그렇게 하여 9년 전부터 시작한 게 바로

모 인터넷 언론의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올 초엔 그 매체에서 잉걸기사 1천 건 달성기념으로 상패와 상금을 받고자 상경했다.

또한 지난달에는 모 문학회가 주최한 신인작가 공모전에서

수필부문으로 신인상을 받게 되어 곧 수필가라는 타이틀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렇다면 겨우 초졸 학력의 무지렁이가 어찌 하여

수필가라는 영광의 칭호까지 얻게 된 것일까?

그건 바로 평소의 습관이 나를 변화시킨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남들보다 3시간 빠른 오전 6시면 출근한다.

그리곤 사무실의 내 책상에 앉아 신문과 좋은 책을 읽고

글도 쓰면서 누구보다 이른 아침의 창을 여는 것이다.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한창욱 저 / 새론북스 간)이라는

책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 있어서의 나를 변화시킨

좋은 습관은 이처럼 누구보다 부지런하다는 것이다.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의 저서에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는 것이 있다.

한데 이 또한 뭘 하든 남보다 부지런하고 아울러

한 발 앞서 가는 좋은 습관이 있어야만 비로소 성공한다는 주장은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과 같은 연장선상이 아닐까 싶다.

 

브리태니커 한국 지사의 세일즈맨으로 시작하여

설립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해 온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공주 출신)은 나와 고향(천안)이 같은 충남 사람이다.

 

그래서 윤 회장님을 보는 시선을 늘 존경을 금치

못하는 중인데 여하튼 그는 사업으로 찬란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나는 그같이 되기엔 애당초 글러먹었다.

 

그렇지만 그가 사업으로 성공을 한 것처럼 나는 이담에

반드시 작가로 성공하는 인생의 후반기를 활짝 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