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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없는 친구 무의미 공선(空船)


BY 일필휴지 2010-06-22

 

“시간됐는데 이 자식은 왜 안 오는 겨?”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D가 칭얼거렸다.


"열차서 내려 택시를 탄다고 했으니 어련히 오려고."

다들 약속시간인 정오도 되기 전에 모인

죽마고우들이었으나 유독 C만 그렇게 늦는 터였다.


하긴 경기도 일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친구인지라

어느 정도 늦는 ‘코리안 타임’을 적용해 주는 건 기본이자 센스였다.

이윽고 택시 한 대가 우리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의 바로 앞에 섰다.


“왔는가 보다!”

우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니나 다를까 일산 사는 친구는 셈을 치르며 조수석에서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내가 악수를 청하고자 다가서며 말했다.


“야, 이 *** (우리가 친한 사이서 통상 사용하는 말인데 처음에

개(犬)가 들어가고 다음엔 그 개의 자녀(?)를 지칭하는 게 이어진다 =

아! 근데 이렇게 장황하게 나열하고 보니 글을 쓰는 나부터 헷갈린다.

고로 이제부턴 ‘견자녀’라고 쓸 터이니 양해 바란다.) 야! 이게 대체 얼마만이냐?”


그러자 그 친구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금세 똑같은 욕지거리의 반동(反動)으로 나왔다.

“사돈 남 말 하네. 이 견자녀야.”


그처럼 왁자지껄 욕설이 난무하자 지나가던

우리 또래의 머리 허연 이가 웃으며 물었다.

“보아하니 불알친구들인 모양이네유?”


“맞어유. 우린 자그마치 50년지기 거든유.”

그같은 욕설은 식당으로 가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우리들만의 어떤 전매특허이자 전유물이었다.


근데 최근 개업했다는 친구의 친구가 사장인

식당 주인은 ‘감히’ 그러한 욕을 우리에게 하지 못 했다.

이는 그와 우리가 알게 된 지는 이제 겨우 10년 안팎의 매우 ‘짧은’ 세월뿐이었기에.


자고로 친구들 간에 ‘견자식’이란 말이 무시로 통용되자면

최소한 죽마고우 내지 초등학교 동창생들 쯤은

돼야 ‘먹어준다’는 게 우리네 한국인들의 공통의 정서가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혹독하다 할만치의 혹서(酷暑)가 만인을

괴롭히고 있지만 한겨울이 되면 반대로 혹한(酷寒)이 휘몰아친다.

이럴 즈음에 퇴근길에서 술 한 잔 하고 귀가하는 건 저잣거리의 필부들 일상이다.


한데 이럴 때도 ‘견자식’을 필두로 아무렇게나 욕을 해 대도 뒤끝이

전혀 없는 죽마고우와 통음을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대단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인생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배에 누군가는 일생에서의 가득한 추억거리와

행복의 가족애까지를 가득 실은 만선(滿船)으로 간다.


반면 그런 건 고사하고 실패와 좌절, 그리고 낙담의

하소연 따위만을 허공에 내뿜으며 빈 배, 즉 공선(空船)으로 가는 이도 없지 않다.


결론적으로 욕까지 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많음은 부자(富者)이되

욕 없는 친구는 고작 무의미의 가난하기 짝이 없는 공선(空船)이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