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아줌마닷컴’(아컴)에서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누리꾼 글 마당 잔치>가 있었다.
장르는 수기와 수필에서부터 생활 속 아이디어 내지는 속이 상해 못 살겠기에
내뱉는 하소연까지도 다 받아주는, 그야말로 ‘전천후 이야기 방’이었다.
여기서 당첨이 되면 금을 한 돈이나 준댔다.
주지하듯 요즘 금값은 그 얼마나 비싸던가!
얼마 전 뉴스에선 금 한 돈이 무려 24만 원까지 폭등했다고 전했다.
하여 예전처럼 지인에게 백일과 돌잔치용으로 금반지를
선물했던 건 이제 희미한 전설로 치부되고(우리네 서민의 시각에선) 말았다.
아무튼 참여에 공을 들인 덕분으로 담당자로부터 당첨되었다는 낭보를 받았다.
아울러 경품 세금 22%를 납부하라는.
‘마침 잘 됐구나! 금이 도착하면 냉큼 팔아서 마누라 보약이라도 한 재 지어줘야지...’
아내는 최근 두 눈의 백내장 수술 뒤로 두문불출하는 중이다.
평소에도 고삭부리인데 힘든 수술까지
마치고 나니 더욱 기운이 쇠잔해진 아낙이 되고 말았다.
“심청이는 몸을 팔아 제 아비 눈을 뜨게 해 주었다지?
나는 금을 팔아 당신에게 보약을 지어줄 게.”
“아유~ 좋아라!”
어제 출근해 근무 중인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즉슨 방금 택배로 뭔가가 왔기에
“당신이 말한 금붙인가 싶어 뜯어봤는데 정작 금은 없고 품질보증서라고 쓴
종이때기 한 장만 달랑 있네. 이게 어찌 된 노릇이여?”
젠장, 내가 그걸 봤나?
“다시 찾아봐. 당신 시력이 아직도 회복을 못 해서 안 보이는 것 아녀?”
아내는 완강했다.
“암만 봐도 안 보여!”
하는 수 없어 아컴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보내주신 경품을 택배로 잘 받았는데 아내가
개봉해 보니 정작 금은 없고 품질보증서만 있다고 하네요?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싶어서...”
“그럴 리가 없는데요! 하여간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담당자는 얼마 되지도 않아 전화를 해 왔다.
“명함 사이즈의 크기에 우리 회사의 로고가 박힌 게 바로 금(金)입니다!”
순간 뜨끔했다.
이놈의 마누라가 대체 눈을 어디다 뜨고 잘 못 봤기에 오늘날
이처럼 나에게 본의 아니게 상품을 받고도 안 받은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는 후안무치한 작자라는 뉘앙스의 개망신까지를 자초하는 겨?!
“죄송합니다. 아마도 제 처가 눈 수술한 게
아직 덜 나아서 시야가 지금도 아리아리한 모양입니다.
그러니 제가 이따 퇴근하여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퇴근하니 아내는 도착한 택배의 내용물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러자 두툼하고 묵직한 사각의 목재 안에는 아니나 다를까!
아컴의 담당자 말대로 명함 크기의 로고가 박혀있는
금박모양은 그게 바로 금으로 도금(鍍金)을 한 금 제품임이 확연히 드러났다.
“흥부가 기가 막혀? 아이고 내가 더 기 막혀!
이게 금이지 대체 뭘 보곤 종이때기만 왔다고 한 겨?”
“그게 금이여? 난 또 금이 한 돈이라기에 우리가
통상 사는(구입하는) 금붙이처럼 뭉텅이로 보내주는 줄 알았지 뭐.”
순간 고드름장아찌같은 아내로 말미암아 어이상실도 부족하여 허탈감까지로 이어졌다.
“아이고~ 내가 당신 땜에 못 살겠다.
그나저나 담당자에게 전화를 주기로 했는데!”
그러나 시간이 오후 6시를 넘어서였는지 전화는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뭐, 월요일 날 출근해서 전화할 게.”
까놓고 이실직고하는데 아내와 결혼할 당시에도 나는 참 가난했기에
아내에게 금반지 한 돈조차를 해 주지 못한 명실상부한 ‘죄인’이다.
하여 늘 그렇게 ‘언젠가는 내 반드시 마누라 손에
묵직한 금반지를 끼어 줘야지!!’라는 걸 어떤 신앙으로 삼으며 살았던 것이다.
하나 박봉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마저 치이다 보니
솔직히 그같은 바람은 희망으로서만 머물렀을 뿐 정작 실천을 한다는 건 무리였다.
여하간 어제 그같은 해프닝과 에피소드는 있었을망정
어쨌거나 ‘든든한’ 금이 한 돈이나 우리들 수중에 들어왔다.
“이 금을 만든 곳에서 발급한 품질보증서도 있으니
이 걸 팔아서 약속대로 당신 보약 좀 지어 먹어.”
그렇지만 아내는 누가 여자마음은 갈대 아니랄까
봐서 푼더분하게 그새 마음이 바뀌었다.
“당신이 정성껏 글을 써서 받은 상품인데 그럼 안타깝잖아. 그러니...”
딸이 고교 졸업 때 받은(최우수상에 따른 부상의 일환)
다섯 돈 무게의 금메달과 같이 보관하겠노라며.
그도 맞는 말이다 싶어 함구하였지만 아무튼 기왕지사
약속한 터였음에 다른 용처(用處)에서라도
어찌어찌 돈을 만들어 아내의 보약은 기필코 지어주리라 작심했다.
주경야독의 방편으로 지금도 사이버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요즘은 <세계노동 운동사>를 배우는데 여기서 배운 측면의 일단을 잠시 피력하겠다.
- 고대 로마 시대엔 귀족과 기사, 평민과 노예가 있었다.
이후 중세에는 봉건영주와 가신, 길드의 장인과
직인에 이어 농노가 있었는데 현대는 매우 단순화되었다.
그건 바로 자본가와 노동자, 혹은 부자와 빈자라는 어떤 이분법이다.-
조금은 뜬금없이 이같은 걸 굳이 인용하는 건
나름 어떤 타당성이 있다는 일종의 맹신(盲信) 때문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안다고 했다.
고로 재물의 소유에 있어서도 이같은 어떤 변증법이 적잖이 반영된다고 보는 것이다.
부자는 과다한 현금과 부동산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금의 경우엔
겨우 한 돈이 아니라 금괴(金塊)를 뭉텅이로까지 보관(소지)하는 이도 분명 실재하리라.
대신에 우리처럼 가난한 필부는 비록 금 한 돈일망정
이걸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첨이 확실시되는
로또복권을 품에 지닌 양 그렇게 너울너울 춤까지 추고 싶은 심경인 것이다.
여하간 어제 아내의 금에 대한 어떤 몰상식(沒常識) 관념은 재물에
초연한 건지 아니면 빈곤에 찌든 나머지 급기야 이제는 금을 보는
눈길마저 청맹과니로 변질된 듯 싶어 조금은 알싸한 마음이었다.
그렇긴 하더라도 당초의 ‘약속’을 저버리고 자신의 약값 충당보다는
기념이라며 보관 쪽을 택한 아내의 고운 심성은
내 사랑하는 아이들에 이은 또 하나의 참 고마운 곰비임비에 다름 아니었다.
푼돈이나마 모아서 오는 가을의 결혼 29주년 때는
정말이지 아내 손에 금가락지를 꼭 끼워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