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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와 에어컨


BY 일필휴지 2010-06-26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게 나의 몸무게다.

여전히 58킬로그램에서 아주 많이 증가해봤자 60킬로그램을

넘지 않는, 아니 못 하는 ‘신이 주신 선물’이 바로 나의 체중이다.(^^;)

 

고로 체질적으로 추위를 많이 탄다.

반면 꽤 더운 여름일지라도 웬만한 더위는 그럭저럭 이겨나가곤 했다.

 

하지만 나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자연과 생로병사 수순의 무력하고 충실한 종속(從屬)이었다.

 

또한 노화현상은 필연적으로 몸의 저항력까지를

감소케 하는 단초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이제 내 몸은 추위는 물론이고 더위까지도

못 참고 헐떡이는 매우 나약한 변방의 졸개쯤으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하여 도래하는 본격적 무더위를 과연 어찌 견딜 지가

조금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상황은 이럴지라도 어쨌든 올 여름에도 집에 에어컨을 들일 맘은 눈곱만치도 없다.

 

이는 선풍기완 사뭇 달리 에어컨 바람을 쐬면 금세

아랫배가 싸르르~ 아파오면서 설사까지 동반하는 때문이다.

밤새도록 선풍기를 틀고 자도 끄떡없거늘 하지만 에어컨은 다르다!

그것도 전혀.

 

지금과 달리 내가 어렸을 적엔 고작 할머니가

부쳐주시는 부채가 유일한 냉방기(冷房機)였다.

 

예전엔 그렇지만 지금처럼 선풍기와 에어컨은 없었을망정 나름 피서법은 다양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실개천에 가서 탁족을 하면서

천렵(川獵)을 하여 어죽을 쑤어먹으면 그 맛이

가수 박현빈의 노래처럼 ‘아주 그냥 죽여줘요!’였다.

 

깊은 땅속에서 길어 올려진 우물물로 하던 등목은

시원함의 경지를 넘어 몸서리까지를 치게 하는

뜨겁게 익어가던 몸의 급냉(急冷) 노하우였음은 물론이다.

 

이어 찬 물에 담갔다 꺼내 먹는 수박과 참외 따위의

여름 제철 과일은 금상첨화의 압권이었다.

 

해가 지날수록 지구온난화는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에어컨과 같은 문명의 이기가

그러나 실제론 이기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는 연유이다.

 

에어컨을 틀면 도시는, 그리고 지구는 열섬현상으로 인해 더욱 더워진다는 얘기다.

이같은 현실을 뒤늦게나마라도 천착하였지 싶다.

 

은행과 쇼핑센터와 같이 만인이 다 아는 ‘어떤 피서지’도

앞으론 냉방온도의 인위적 조절로 말미암아 옛 말이 될 공산이 농후하다고 하니 말이다.

 

뭐든 마찬가지겠지만 즐기려는 것보다 이기려는 건 퍽이나 힘이 드는 법이다.

고로 올 여름은 이기려기 보다는 그러려니 하고 즐기는 게 상책이다.

 

폭염(暴炎)은 매우 심한 더위를 뜻한다.

여기엔 불 화(火) 자(字)가 위 아래로 포진하고

있음에서 보듯 정말 + 진짜로 그 성깔마저 매우 고약한 녀석이다.

 

그러므로 이놈을 이기려다간 되레 내가 기진맥진하기 일쑤다.

여름은 가을의 진입로라는 긍정적 사관으로 이 여름을 즐기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