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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보약, 온 의류


BY 일필휴지 2010-07-09

 

“저 쇼핑 백 열어 봐.”

어제 퇴근하여 샤워를 마치고 나니 아내가 한 말입니다.


그래서 소파에 놓인 쇼핑백을 열어보니 티셔츠 두 개와 바지가 하나 들어있더군요.

“이게 뭐여?”


“뭐긴 뭐여, 당신 입으라고 내가 사온 거지.”

그래서 우선 알록달록 고운 티셔츠를 하나 입어봤지요.


한데 95 사이즈의 제 체격에 아주 잘 맞는 근사함의 절정이더군요!

“와, 딱 맞네!”


“이번엔 저 것도 입어 봐.”

하여 다른 티셔츠도 입어봤는데 역시도 그 또한 맘에 쏙 드는 겁니다.

이어 바지를 입었더니 이번엔 또 구두를 신어보라네요.


그러더니 핀으로 길게 늘어진 바짓단에 표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일 줄여다 줄 게.”

그런데 잠시 고민이 파도로 출렁였습니다.


티셔츠 두 개가 다 맘에 드는데 그렇담 어떤 걸 선택해야 하나? 하고 말이죠.

그같은 생각을 아내는 이미 ‘부처님 손바닥’으로 간파했습니다.


“고민하지 마, 맘에 들면 다 사 줄게.”

순간 명절날 곱디고운 때때옷을 얻어 입은 어린 아인인 양 기분이 낭창낭창해졌습니다.


“그래도 돼? 근데 한 눈에 보기에도 옷들이 모두 비싸게 보인다! 얼마 준 겨?”

하지만 아내의 입은 닫혀진 성문처럼 무거웠습니다.


“알려고 하지 마, 다쳐.”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습니다.


만성 고삭부리 아내가 눈 수술(백내장)을 한 건 지난달입니다.

이후로 요양을 하느라 만날 집에서만 있는 아내죠.


그래서 어서 건강을 되찾으라는 의미로써 보약을 한 재 지어줬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그같은 ‘감사의 보답’ 차원에서

저에게 옷을 사 준다거다... 뭐, 이런 추측 말입니다.


즉 오는 정이 있었으니 가는 정도 있다는 걸 증표로 보여줬다는 겁니다.

29년 째 한 이불을 덮고 살고 사는 아내에게

보약을 지어주기론 정말이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건 우선 저의 형편이 늘 그렇게 헉헉대는 지경이었거든요.

거기에 두 아이를 대학까지 가르치자니 항상

살림살이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형국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군분투 끝에 마침내 천만다행으로

올 2월엔 두 아이를 모두 머리에 대학의 학사모를 씌워주게 되었지요.


그 덕분으로 이제 학비 부담의 염려는 사라졌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아내에게도 보약을 지어 먹일 여력의 틈새가 보였던 것입니다.


백화점에 나가 알바 주부사원으로 의류를

판매하는 아내는 어제 모처럼 그 일을 나갔답니다.


그러던 중 자신에게 보약을 지어 준 이 남편이 문득 생각나더라나요.

그래서 큰맘 먹고 제 옷을 사 왔다는.


“고마워! 이 웬수(?)는 다음에 꼭 갚을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