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연일 계속되면서 짜증 수은주도 덩달아 상승하는 즈음이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려
잠시 밖에 나갔다만 와도 어찌나 더운지 맥을 못 출 지경이다.
지구온난화가 더욱 심화되기에 해가 갈수록
여름엔 더 덥다는 기상청의 보도가 명명백백한 사실로 체감되는 시절이다.
현재의 사무실로는 지난 5월에 이동했다.
그 전엔 허름한 사무실을 사용하였는데
지금 같은 한여름이면 오후 3시를 넘기지 못 하고 퇴근하여야 했다.
왜냐면 흡사 난로처럼 달구어진 사무실의 온도는
얼추 40도에 육박하는, 가히 살인적인 때문이었다.
‘천만다행’으로 내 직업이 자유업인 비정규직의 세일즈맨이었기 망정이었다.
그렇지 아니하고 정규직이어서 그러한 조건에서도
하루 종일 사장의 눈치를 살피며 근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작년 여름에 필시 열사병에 걸렸을 터였다.
그러함에 작년에 그처럼 마치 죽을 듯 더웠던
폭염을 이겨내기 위해 실천했던 고육책(苦肉策) 중의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한다.
천원코너에 가서 플라스틱 대야를 샀다.
그리고 이튿날 출근하면서는 전날 집의 냉장고
냉동실에서 꽝꽝 얼린 2리터 용량의 생수병에
물(수돗물)을 넣어 얼린 걸 가방에 넣어가지고 나왔다.
집에서만 입는 반바지도 챙겼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발호하는 정오를 넘기면 대야에 물을 담았다.
이어 얼추 반은 녹아내린 생수병을 담고 양말을 벗은 뒤 거기에 발을 담갔다.
그러면 그제야 비로소 사는 것 같았는데 하지만
그처럼 어떤 ‘피서’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불과 한 시간여에 불과했다.
작년도 현재의 올 여름과 별반 차이 없이 무더위가 극성을 부렸는데
하루는 어찌나 그 무더위를 참을 수 없었던지
오후 2시를 갓 넘기자마자 사무실을 탈출(!)하였다.
그리곤 인근의 하천으로 달려가 옷을 홀라당 죄 벗고 물에 뛰어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여간 현재의 사무실은 에어컨과 선풍기를 동시에
가동하기에 딱히 더위로 인한 고통은 못 느끼는 편이다.
그러하기에 작년과는 달리 오후 5시까지는 근무에 충실하는 중이다.
그제는 점심을 먹고 오면서 선배님과 휴가에 대한 화두로써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선배님은 올 휴가를 어디로 거실 거예요?”
“글쎄... 누가 뭐 휴가비를 줘야지 휴가를 가든
피서를 가든 하는 건데 그런 게 당최 없으니 원...”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는 선배님의 모습에서 다시금
휴가철이 되어도 그러나 정작 휴가비 한 푼이 없는
비정규직의 비애를 맛보지 않음 안 되었다.
또한 내 입이 방정맞았다는 후회가 들었다.
물어봤자 빤한 대답이었거늘 괜히 물어봤다 싶은 일종의 자괴감이었다.
그래서 분위기를 일신할 요량으로 예전
직장에서의 에피소드 한 토막을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냈다.
“선배님도 D사(社)의 P 사장님 아시죠?”
"응, 알지! 근데 왜?"
“언젠가 지금처럼 더운 여름 휴가철이 닥쳤어요.
근데 우리처럼 영업사원에겐 당시에도 휴가비라곤 눈곱만큼도 혜택이 없었지요.
그래서 하루는 모종의 꾀를 냈지요.”
“어떻게?”
선배님의 귀가 토끼처럼 커지는 기색으로 역력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사장님께 물었죠.
사장님은 언제 피서가실 거냐고요.
그러자 상황을 봐서 가든가 말든가 하겠다는 겁니다.”
“작심하고 물었을 텐데 김 빠진 맥주가 되었겠구만.”
“네.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기왕지사 칼집서 나온 칼인데 썩은 무라고 베고 봐야죠.
저는 그래서 더욱 당돌하게 굴었지요.”
“어떻게?”
“저도 휴가를 가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휴가비를 주든가?”
“아뇨. 함구한 채 콧방귀만 꾸더군요.”
“괜히 손해만 봤군 그래.”
“하지만 그 뒤 약발이 있었던지 여하튼 효험은 있었지 뭡니까!”
“그래? 어떻게?”
“점심을 먹고 귀사하여 오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겠노라고 인사를 드리니 사장님이
사장실로 잠깐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시더군요.”
“옳거니!”
“그래서 사장실에 들어서니 서둘러
문을 닫곤 봉투를 하나 건네주시지 뭡니까!
비밀로 하라면서 ‘영업사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홍 부장에게만 주는 거니까
이걸로 휴가 기간에 술이나 한 잔 하라’고 말이죠.
순간 참 고맙더군요! 근데...”
“근데?”
“사장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가면서 봉투를 열어보니 딱 10만 원이더라고요.
그러니 그 돈으로 어찌 휴가를 가겠습니까? 그래서 별도로 가불을 10만 원 했지요.”
“어쨌든 10만 원이나 휴가비를 줬다는 건 홍 부장을
평소 그 사장님이 대단히 신뢰했었다는 방증의 제스처였겠는데?”
“그건 맞습니다만...”
그렇게 만든 20만 원을 가지고 동서형님의
차에 편승하여 간 곳은 대천 해수욕장이었다.
‘큰 회사’의 간부인 형님은 연봉도 빵빵하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하계휴양지 또한 전국에 산재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해 여름엔 대천으로 간 것이었다.
그러나 대천 해수욕장에 도착하면서부터
개는 뭐를 보면 못 참는다고 나는 특유의 술에 미쳐 그만 또 사단을 내고 말았다.
이미 예약된 숙소에 짐을 푼 우린 먼저 대천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거닐었다.
땅거미는 뉘엿뉘엿 서산마루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인파는 여전히 득시글했다.
“형님, 시원한 파돗소리도 압권인데 술 한 잔 해야죠?”
“암만~ 근데 동생, 또 과음하지 말아.”
“걱정 마십쇼! 저는 바다에 오면 평소보다 두 배를 마셔도 끄떡 없는 체질이니까요!”
그러나 그같은 허풍은 이튿날 명백한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나타나기에 이르고야 말았다.
횟집에서의 생선회를 안주로 한 소주를 시작으로
2차로는 노래방에서 맥주를 물 마시듯 했다.
비척이며 숙소로 돌아와서도 대전에서 출발할 때
형님의 차 트렁크에 싣고 와 객실의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와 양주를 또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마셔댔으니 말이다.
그 뿐으로만 그쳤다면 그나마 양반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특이한 경향이 있다.
그건 여행을 간다든가 무슨 반가운 모임이 있는
경우엔 여행을 가서도, 또한 모임의 전날 밤엔 도통 잠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당일 날엔 평소보다 이르게 일찍 기상하는 버릇까지 있다.
그 날이 바로 이런 패러다임의 연장일이었다.
다들 잠들어있는 새벽녘에 눈을 뜬 나는
갈증이 바다의 밀물처럼 몰려오기에 냉장고부터 열었다.
그러자 더욱 차갑게 냉동되어 있는 (캔)맥주들이
“어이구, 타관객지인데 어찌 잘 주무셨습니까?”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후훗, 녀석들하곤.
지들도 눈은 있어서 이 주당(酒黨) 당수(黨首)를 한 눈에 알아보는구나!
‘이놈들아, 내가 뭐 여기 대천 해수욕장을 한두 번 와 봤더냐?
더욱이 여기는 나의 고향과 같은 충남지역 소속이라고!’
덜 깬 술김이었음에도 맥주를 더 마시고픈 충동은
춘향이를 품고 싶은 변학도의 심정에 다름 아니었다.
근데 기왕이면 다홍치마가 나은 법이었다.
에라, 코앞이 백사장인데 거기로 나가서 푸른 파도를 마주보며 마시자꾸나.
가수 최백호도 진즉부터 읊조리지 않았던가!
푸른 파도를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으라고.
검은 봉지에 캔 맥주 네 개를 넣었다.
그걸 지니고 숙소를 빠져나와 백사장으로 갔다.
이른 새벽이었는지라 사람들의 발길은 뜸했다.
때로 술은 이처럼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마시는 것도 필요한 법야, 암! 그렇고말고.
새벽까지 나와 같이 술에 ‘미친’ 어떤 사람들이
마시고 일어났음직한 백사장의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은 나는 거기서 가지고 간 맥주를 죄 비웠다.
하지만 일어설 수는 없었다.
해일처럼 들이닥친 잠(수면=睡眠)이 그만 나를 굴복시킨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