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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같은 엄마...


BY 야실이 2011-04-26

엄마, 저 막내에요.

쉰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어머니라도 부르는 것 보다는 엄마라고 부르는 게 더 좋으니 제가 막내는 막내인 것 같아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눈이 시려워져요. 그 밑으로 보이는 야트마한 산은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으로 무성해져가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엄마 생각이 났어요.

기억나세요?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엄마를 따라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구둣방에 가다가 배고프다던 저에게 아카시아 꽃을 따서 먹게 하셨어요. 하얀 아카시아 꽃잎을 입속에 넣고 씹으면 달콤해서 정신없이 먹곤 했었죠. 그 때 제가 나무 이름을 여쭈어 보았었죠. 엄마는 한참동안 그 나무를 보시고는 꿀나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한동안 아카시아 꽃을 먹으며 올망졸망 피어난 꽃들이 모두 꿀단지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야 그 나무가 아카시아 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제 마음 속에는 꿀나무라고 여긴답니다.

엄마, 요즘 들어 자꾸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오른답니다. 단발머리 깡충이며 아무 걱정 없이 지내던 그 때, 엄마는 저에게 숲과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시내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고 계셨죠. 엄마는 성격이 무뚝뚝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물론 간단한 구두수선까지 하셨어요. 서툰 손놀림에 구두가끔 손이 베이기도 하고 망치질에 손가락 마디가 시커멓게 멍이 들어도, 엄마는 단 하루를 쉬지 않으셨어요. 저는 그런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자투리 가죽으로 소꿉장난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답니다. 그리고 철에 따라 구둣방앞에 좌판을 깔아놓고 여름이면 과일이나 옥수수를 쪄서 팔고 겨울이면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파셨어요.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게 된 때가....... 비가 오면 그만큼 손님이 적었기 때문에 엄마는 싫어하셨지만 그날 팔고 남은 것들은 모두 제가 먹을 수 있다는 어린 마음에 저는 비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언제부터인가 옥수수나 군밤 같이 예전에 엄마가 팔았던 것들을 먹지 않늕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또 늦은밤 집으로 돌아올 때면 졸립다고, 다리 아프다고 보채는 저를 달래느라 업어주셨어요. 엄마 등에 업혀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세곤 했었답니다.

작은 몸집에 유난히 바지런하셨던 엄마, 자식 넷을 키우느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새면서도 언제나 괜찮다시던 엄마는 자궁암 수술을 받으시고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셔야했어요.

"그만 울거라. 아기들 놀란다. 나는 괜찮다. 그나저나 나야 이제 다 산 세상이지만 네가 걱정이다. 험난한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단다. 그럴 때면 눈 질끈 감고 죽을만큼 힘을 내서 버티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살 방도가 생 기는 거야. 미안하구나 엄마라는 사람이 힘들 때 도와주지도 못해서......."

 병실에 누워계신 엄마가 제 손을 잡고 하셨던 말씀을 들으며 그제서야 그동안 힘들게 살아오신 엄마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답니다. 그 때는 정서방 사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그야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빚만 잔뜩 지고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몰랐었거든요. 그래도 엄마 말씀을 기억하며 버티어냈던 것 같아요.

 엄마, 엄만는 저에게 많은 것을 물려 주셨어요. 몸집은 작지만 바지런하고 성실해서 늘 변함이 없고, 거짓말 할 줄 모르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잘 버티어 내고.......

 한평생 일을 하시며 자식 넷을 키워주신 엄마의 모습이 이제 나이가 쉰을 넘긴 제 모습이 되어버렸어요. 비록 지금 제가 가진 것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답니다. 하지만 남을 너무 잘 믿어 손해 보는 일도 많아요. 그것도 엄마를 꼭 빼닮았지 뭐예요?

엄마, 희원이 침대 한쪽에는 희원이 돌맞이 선물로 주셨던 분홍빛 코끼리 인형이 자리를 잡고 있어요. 색도 바래고 크기만 한 그 인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 달 동안 일한 품삯대신 그 인형을 받아오신 엄마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가끔 힘들거나 어려울 때면 그 인형을 꺼내놓고 손질을 한답니다.

엄마, 그동안 제가 받은 사랑에 이제는 제가 보답해드려야 하는데 아직도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어서 마음만 갖고 있답니다. 엄마. 언젠가는 엄마 손을 잡고 편한 마음으로 옛날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을 거예요. 그 때는 좀 더 넉넉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기다리며.......

 엄마, 엄마는 언제나 저에게 변함없이 무성한 숲과 같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