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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결혼기념일


BY 마음가기 2011-05-02

젊은농부의 글입니다.
원본은
http://www.ddanzi.com/news/63512.html 입니다.

 

스물한 살에 처음으로 연애란 것을 해보았습니다.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지요. 그 행복한 연애를 7년 이어가고 그녀와 결혼하였습니다. 결혼은 연애와 달라서 또 다른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이더군요. 하지만 싸우기도 엄청 많이 싸웠습니다. 연애할 때엔 전혀 문제라 여기지도 못했던 일들로 얼굴 붉히고 언성 높여가며 많이도 다투었었지요. 결혼하고 처음 일 년은 크고 작은 투닥거림의 연속이었던 기억입니다.

 

저는 그녀를, 그녀는 저를 잘 알고 있었지만...저는 그녀의 가족을, 그녀는 저희 가족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그것이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그 지난한 싸움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둘이 함께 있으면 즐겁다는 사실을 잊은 싸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아내는 많이 직선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호불호에 대한 반응이 명확하며 일절의 숨김이란 것이 없는 사람이랄까요. 저는 그와는 다르게 어지간하면 모든 것이 좋다며 웃어버리는, 아내의 시선으로 보자면 ‘지나치게 두루뭉실’한 사람이었지요. 처음엔 그 차이가 만드는 거리를 확인하며 다투다가, 나중엔 그 차이가 선물하는 새로운 배움 때문에 즐거웠습니다. 저는 아내에게서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고, 아내는 제게서 ‘웃어넘기는 법’을 배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지내다 둘 사이에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아내에게 그렇게 일방적으로 투정부릴 수 있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그 존재를 바라보는 일상이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성격의 아내가 이유 없이 얻어맞고 발로 차여도 입가엔 내내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더군요.

진통이 오고 아홉 시간이 넘게 엄마를 아프게 하다 나온 아이입니다.

 

눈동자의 실핏줄이 죄다 터지도록 고생하며 낳은 아이를 처음 품에 안고 젖을 물리며 아내는 펑펑 울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 말없이 혼자서 속으로 다짐했었나 봅니다. ‘너 만큼은 내가 봐준다’ 뭐 이런 것.

아내는 자신의 일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며 나름의 성공도 이룬 성공적인 사회인이었습니다. 자신의 가게를 꾸려가며 많은 이들과 교류하고 돈도 많이 벌어 씀씀이도 큰 사람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내가 자신의 일을 그만두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스스로 먼저 제게 “나... 일을 그만 두는 것이 좋겠지?” 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저는 그 말이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아내의 일과 생활은 아내의 것이기에 무어라 이야기할 수 없었던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의 그 말은 정말 반갑고 고마운 것이었지요. 세상에서 아이와 함께 즐겁게 놀며 종일을 함께 하는 부모만큼 좋은 부모가 없다고 생각해 왔었으니까 그 마음을 이해하고 같은 생각을 해 준 아내에게 많이도 고마워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오래도록 즐기던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아내는 늘 열심이었습니다. 늘 바쁜 남편이 새벽이슬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면머리맡에 놓인 카메라와 캠코더 가득히 아내와 아이의 즐거운 일상이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껏 웃으며 그것들을 감상하다가도 문득 문득 찾아오는 미안한 마음이 늘 마음 한 쪽에 자리하고 있는 일상이었지요.
 
아내도 그 무렵부터 우리 가족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어느 날 아침.
 
급한 프로젝트를 이유로 밤을 지새고 아침에서야 집에 도착한 저에게 아내가 아침 식사를 챙겨주며 옛날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던 것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미국인이 숲을 지나다 한 인디언 부족과 만나게 되었데.
 
그들이 잘 들지 않는 도구로 어렵게 나무를 베는 것을 본 그 미국인이 호의로 인디언들에게 도끼를 선물했다는 거야. 인디언들이 도끼를 써보니 나무가 잘 베어지는 것이 참으로 좋은 물건인 것 같아 미국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그 미국인은 그곳을 떠났고 훗날 그곳을 다시 지나며 그 인디언들 생각이 나 그들을 찾았데. ‘숲엔 나무가 얼마 남지 않았을 거야.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나무를 베었을 테니까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며.
 
그런데 웬걸.
 
울창한 숲은 그대로였고 인디언들은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고 하더라구.
그 미국인의 생각이 틀렸던 거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미국인에게
그 인디언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이렇게 이야기 하더래.
 
“당신 덕분에 우리는 필요한 만큼의 나무를 더 빨리 마련하고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즐겁게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바로 이해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에게 또다시 고마운 기분을 느꼈었습니다. 참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게끔 멋지게 이야기 해주었으니까 말이지요.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하며, 옷을 갈아입고 다시 출근하는 내내 머릿속에 아내의 이야기가 가득히 메아리쳤습니다.
 
‘귀농’이라는 명제를 처음 제시하고 줄곧 주장한 것이 저의 몫이었다면, ‘귀농’이라는 어려운 선택을 위한 과감한 용기를 선물한 것은 분명 아내였습니다. 그 때의 그 짧은 이야기는 지금껏 아내에게 받은 선물들 중 가장 값지고 고마운 선물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아내가 준 커다란 선물이 말이지요. 이런저런 일들로 저희 부모님에게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저와 한 마디 상의 없이 다짜고짜 아버지 어머니께 “뭐가 걱정이세요? 저희랑 같이 살면 되지요!” 라고 크게 외치는 아내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었습니다.
 
그래도 자식에게 짐 되는 것은 싫다며 고마운 마음만 받겠다는 어머니의 눈엔 고마움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그 고집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며느리의 그 고집도 여전하여 지금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선 툭하면 설득 들어가는 아내입니다. 저희 부모님에게도, 제게도 아이에게도 참으로 선물 같은 존재이지요.
 
아내는 조금 엉뚱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뭐라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얼마 전 누군가에게 “남편이 자상해서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지요?” 라는 질문을 받더니 곧바로 이렇게 반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도와주다니요? 그게 저만의 일인가요?” 보통은 아마 “네~” 하고 넘어갈 일인 것 같은데 말이지요.
 
저에 대한 평가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기는 정말 내 생각에 99.9점짜리 남편이야~ 그런데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5점!" 무슨.술 때문에 95점이나 깎이다니. 아무튼 저는 아내의 그런 점이 저와 많이 다른 모습이라 여기며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은 옆에서 곁눈질 하며 그런 것들을 보고 배우기도 하며 말이지요. 저도 언젠가는 써먹으려고.
 
요즘은 함께 밭일 하는 재미를 만끽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봄이 찾아오니 딱히 대단할 것 없는 조그만 밭뙈기 꾸리면서도 어디 한 번 발걸음 옮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요. 신혼여행을 갔을 때 작은 섬 해변에 놓은 의자에 둘이 앉아 해지는 모습을 감상하며 약속을 했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결혼 5주년 기념일에 꼭 다시 여행오자고 약속 했었지요. 그 약속을 한지 5년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서로가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그 여행을 떠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지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상관없을 만큼 지금이 즐겁고 행복하니까 말이지요.
 
이곳에 정착한 후 어느 날. 아내와 제가 앞으로의 삶을 꾸려나가는 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에 대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동시에 이야기하기로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아내가 했던 이야기는 ‘조금씩’이였습니다.
소유하는 것도 조금씩으로 줄이고, 먼 길도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가자는 이야기였지요.
 
그 때 제가 했던 이야기는 ‘천천히’였습니다. 이 척박한 밭을 풍요로운 생명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천천히 해나가야 지치지 않고, 좌절하지 않으며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후로 저희 가족의 ‘가훈’ 처럼 여기고 늘 명심하는 것이 바로 ‘조금씩 천천히’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행복 누리며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5주년은 아니더라도 50주년 즈음엔 그 섬의 작은 의자에서  또 한 번 그곳의 해지는 광경 감상하며 웃고 있겠지요.

 



‘조금씩 천천히’라는 멋대가리 하나 없는 캐치프레이즈를 함께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선물한 아내와 결혼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쌀쌀맞고, 때로는 부드러운 아내의 변화무쌍한 일상을 함께할 수 있었던 즐거운 결혼생활에 대한 고마움을 짧은 글로 남겨 봅니다.
 
초등학생 때는 같은 반 친구로, 오랜만의 재회 끝엔 사랑스런 연인으로, 결혼에 골인한 후로는 마음 든든한 삶의 동반자로서의 모습으로 곁에서 행복한 웃음 보여주는 아내에게 새삼스런 사랑고백을 해 봅니다.
 
“결혼5주년과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