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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귤


BY 일필휴지 2012-03-11

어제는 토요일이었지만 근무일이라서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오전 10시경부터 관계사 직원 중 한 분의 따님이 서울서 결혼을 한다며 대절한 관광버스를 두 대씩이나 우리 회사 앞 차로에 세웠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느닷없이 홍수처럼 몰려드는 차량들을 정리하는 주차관리원으로 변신하기까지에 이르렀지요. 그러자 혼주 되는 분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번거롭게 해 드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우리 관계사 직원이신데 이 정도야 당연히 해 드려야죠. 그나저나 따님의 결혼식은 어디서 하시기에 버스까지?” “네, 서울대 안에 위치한 라쿠치나 예식장에서 합니다.” “아! 그러세요? 근데 제가 알기로 거기서 결혼식을 하자면 서울대 출신이 아니면 어려울 텐데요?”

 

그러자 그분은 왜 이제야 그걸 묻느냐는 듯 냉큼 마치 준비한 듯한 ‘답변’을 토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아, 제가 오늘 맞을 사위가 서울대를 나왔거든요. 그리고 제 딸은 이화여대를 나왔구요......”

 

대저 이 땅의 부모라고 하면 누구라도 잘 난 자식자랑에 침이 마를 틈이 없는 법이죠. 하여 저도 금세 칭찬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팔불출의 대열에 편승하는 걸 잊지 않았지요. “아이구~ 거듭 축하드립니다! 제 딸도 마침 서울대 나왔거든요.”

 

“그러세요? 이거 참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따님을 그리 잘 키우셨다면 그간에 수고는 오죽하셨겠습니까?” 그러면서 넙죽 내미는 악수에 저도 성큼 손을 맞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경비실로 어떤 어르신 한 분이 다가오시더군요.

 

손에는 커다란 귤을 가득 담은 비닐봉지를 드신 분이셨습니다. “할아버지,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여쭈니 저와 업무 파트너인 분의 부친이라시더군요. “아~! 그러세요? 지금 저 쪽 당직실에서 근무 중이니 그리로 가시겠어요?”

 

하지만 어르신께선 귤이나 잘 전해달라며 서둘러 발걸음을 돌리시더군요. 순간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 선친의 과거 귤과 연관된 편린이 기억의 열차에서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요즘이야 귤 아니라 그 어떤 과일도 돈만 있으면 맘껏 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과거엔 귤조차 결코 흔치 않았지요.

 

그랬던 시절에 하루는 아버지께서 퇴근길에 귤을 한 봉지나 가득 사오셨지 뭡니까! “우리 아들, 이것 좀 먹어봐라!” “와~ 이게 말로만 듣던 귤이란 거지유?” “그렇단다. 너 먹으라고 아버지가 사온 겨.” “고마워유!”

 

물레방아와는 달리 우리네의 지나간 인생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렇긴 하더라도 지금껏 아버지께서 생존해 계셨더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요! 그랬다면 그 ‘잘난’ 손녀자랑에 입이 쉴 틈이 없으셨을 것이고, 또한 귤 그 이상의 맛난 과일 또한 제가 무시로 사다드렸을 터인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