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을 다시 찾은 건 지금과 같은 화풍난양의 봄이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은 울울창창의 만추(晩秋)무렵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결혼 30주년을 맞아 다시 찾은 속리산은 그 ‘브랜드’에 걸맞게 여전히 십승지지(十勝之地)의 위상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더군요. 당초 효자인 아들은 다른 날도 아니고 결혼 30주년이란, 꽤 기념비적인 날이고 하니 저 멀리 남해안으로 가 2박 3일 정도 묵고 오시라며 돈을 두둑하게 준 터였습니다.
하지만 돈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는 전형적인 아낙이고 보니, 더욱이 늘상 쥐꼬리만큼만 겨우 벌어다 주는 경제적 허릅숭이인 저의 무능함으로 말미암아 아내는 그처럼 겨우 당일치기의 여행을 하는 것으로 물꼬를 틀었던 것이죠.
“자고 오면 뭐할 껴? 괜히 돈만 낭비지!” “......!” 대전을 떠난 시외버스는 약 2시간 후에 우리 부부를 속리산 초입의 정류장에 내려놓았습니다. 때는 보은의 명산인 대추 축제를 불과 일주일 여 앞두고 있던 터여서 하늘은 꽤 높고 바람 또한 싹싹하기가 마치 갓 시집온 며느리인 양 그렇게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우린 먼저 법주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30년 전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와서 제가 발원한 바 있었던 바의 감사함과 또 다른 염원을 담아 정중히 절을 하며 빌었습니다.
‘부처님, 지난 30년 동안 저희 부부의 뒷배를 봐 주시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30년 전 여기에 와서 부처님께 약속했던, 당초의 결심 토로처럼 저는 그동안 제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내의 건강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렇게 완전 고삭부리입니다. 그러니 기왕지사 봐 주신 거, 제 아내의 건강을 예전처럼 좋아지게끔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선 특유의 그 인자한 미소로써 그러마고 동의하시는 듯 하더군요. 속리산과 법주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박고 오솔길을 손잡고 걸어 나오자니 어느새 배에선 뭐든 집어넣으라며 ‘난리 부루스’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뭘 먹을까?” 아들이 준 돈도 있겠다 하여 한껏 호기를 부렸으나 하지만 자린고비의 전형적 모델주부인 아내에겐 택도 없는 수작이었지요. “그전에 먹었던 산채백반이면 됐지 뭐!” “......”
하는 수 없이 왈짜 아내에게 코가 꿰인 저는 근처의 식당으로 가 산채백반 2인분을 주문했습니다. “소주도 한 병 주세요.” 30년 전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왔을 당시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적수공권(赤手空拳)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매사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었을까요...... 세월은 결코 무심하기만 하고 아울러 내내 무정하기만 하진 않았지요. 효심이 장강처럼 깊은 직장인 아들에 더하여 자타공인의 재원(才媛)인 딸이 그 결과이자 방증이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실로 30년 만에 맛보는 속리산의 정갈한 산채백반은 삭막한 도시의 인스턴트 식품문화에 시나브로 길들여진 우리 부부의 입에도 딱 걸맞는 아주 근사한 맛에 다름 아니었지요. 그럴 즈음 서울의 대학원생(서울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재학 중)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이 아빠 결혼 30주년이신데 돈도 못 보내드려 죄송해요.” “아니다, 네 오빠가 넉넉하게 준 돈으로 지금 속리산에 와서 맛있는 산채백반 먹고 있다. 아무튼 전화 주어 고맙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서로 격이 어울리는 것끼리 짝이 되었을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이죠. 반면 이 속담은 변화가 없이 고루하고 진부한 경우에도 통용됩니다. 그래서 말인데 작년 가을에 먹은 속리산의 그 산채백반은 그렇다면 분명 전자(前者)에 해당되는 셈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