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빅터 프랭클린--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나를 죽이기까진 못한 고통은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해야 할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촉매일 터...
뻥~뚫린 듯한 허전함과 우울,그리고 울적함,절망감,분노 등으로 괴로울 수 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고통을 겪어왔잖은가 ?
하지만 겪는 당시엔 세상을 다 잃기라도 한듯 울분을 터뜨리지만,
심지어는 비슷한 고통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매번 그러기도 하지만,
어떤가?지나고 보면 그로 인해 부쩍 커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았는지?
어느 정도는 고통쯤에 초연해질 필요가 있다.
아~나를 또 더욱 강하게 만들려는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하는구나~하면서 기쁘게 받아들이자고 한다면 가식일까?
그렇지...그럴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거의 매번 고통을 겪을 때마다 엄살을 피워댔던 것 같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초연하자고 말 할 수 있지만...
하지만 분명한 건 고통은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피하려면 피하렬 수록 더욱 도를 높여가며 다가와 위협을 가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겁내지 않고 맞부딪히려고 대들면 오히려 작아지면서 꼬리를 내리고 도망을 가는 것 같다.
육체적으로나,정신적으로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린 늘 크고 작은 고통과 싸워가며 강해지고 커가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
주변에 좋은 친구 하나가 아주 큰 결심을 하고 고통의 나락으로 뛰어들었다.
늘 자신을 약하다고만 생각하고 ,고통으로부터 피하려고만 하던 친구였는데,
그래서 아주 많이 답답했었고,화를 내면서까지 떠밀어 왔는데,
최근에 이를 악물고 그 고통을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참 고맙다.나의 권유를 처음엔 서운해하더니 ,이제사 진심을 알아준 것 같아서 장하다고 토닥여주고 싶어진다.
잘 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을 실감하길 바라며 그 친구의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픈가?고통스러운가?
그런데 그런 나를 감싸주며 위로해주는 대신 ,맞부딪혀 싸우라고 재촉하며 떠밀어대는 친구가 있는가?
그래서 서운한지?
그래서 내치고 말았던 기억은 없는지?
하지만 먼 훗날 그의 진심을 느끼고 그리워했던 기억은 없는지?
부쩍 강해진 그 친구의 모습을 멀지 않은 언젠가 꼭 봤으면 좋겠다!
다음 블로그 '미개인의 세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