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덜어주거나 부드럽게 해주지 않는 슬픔이란 하나도 없다.
--키케로--`
나에겐 큰 슬픔이 있었다.
아주 어려서 어머님이 아버지와 이혼을 하시고 떠나셨으며,이후 2년 만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이들의 어머니인 아내를 고생시키지 않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려 무진 애를 썼건만,
나의 아내는 그것이 지나쳤다며 나를 편집증 환자로 몰아 세우며 이혼을 하고 딸들과 함께 떠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를 하면서 절망적인 슬픔을 맛 봤다.
죽어버렸으면 슬프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운명을 안긴 세상의 모든 신을 원망할 정도로...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슬픔은 줄어들었고,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을 증명해주고 있다.
거의 혼자만의 착각이긴 하지만,도통이라도 한듯 마냥 행복해하며 유유자적을 할 정도가 돼 있으니...
시간은 슬픔의 치료엔 최고의 명약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러나,정작 슬픔을 당하게 되는 그 순간엔 절망하고,죽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우울해진다.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거나 괴로움을 잊기 위한 방편으로 음주 등을 하면서 잊어보려하지만 그럴 경우엔 시간의 치료효과가 없어진다.
그 슬픔은 약해질 수 있겠으나 다른 슬픔이 꼬리를 물고 달려들어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에 처해있는가?
미친듯 일에 몰두하고 운동이라도 열심히 하면서 땀을 흘리고,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슬픔을 곱씹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위의 명언처럼 슬픔이 덜어지고,부드러워진다.
그리고 아픈만큼 성숙해지는 기적까지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리 해서 극복을 해냈고,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성숙해져 있으며 ,여유까지 찾게 됐다.
아둥바둥 살 필요도 없고,남들과 비교하려거나 경쟁을 할 필요도 없다는 ,예전에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예전엔 남들과 비교를 해가며 왜 이것밖에 못하느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미워하고 쓰러질 때까지 혹사시켰더랬는데,
지금은 이만큼이라도 살아 준 나를 대견해하며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슬픔을 안긴 그들까지도 이해하게 되고,모든 것에 감사하게 됐다.
사사로운 이익에 부합하여 호불호를 결정짓던 가치관도 많이 객관화되어 ,
불의에 저항하는 1인시위도 하게 됐고,공무원들의 뻔뻔스런 도둑질도 과감히 고발하게 됐다.
적반하장으로 그들의 저항을 받고 있지만,그래서 몹시도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지만,과도기적 부작용이라고 생각하며 감수할 수 있다.
따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따로 수양을 한 것도 아니건만,이만큼이나 자라있다니...
결국은 나는 나만이 사랑해줄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이 가르쳐줬다.
내가 나를 사랑함으로써 타인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는 것을 시간이 가르쳐준 셈이다.
힘들다고,슬프다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지 말자.
그럴수록 더욱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위해 해야할 바른 일을 열심히 찾아가보자!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세상은 항상 옳은 사람 편이란 말을 믿고 부지런히 살다가 가자.
설사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의 마음만은 편안하고 행복할지니...